202486일 화요일. 맑았다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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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얼굴도 못 본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마치 노숙을 한 기분이다. 새집이고 넓어서 달리기를 해도 될만한 공간이지만 웬지 조심스러워 침실 하나와 마루 두 공간만 썼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도 사용한 일이 없다는 듯이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했다.


1997~1998년 만2년을 우리가 안식년으로 로마엘 다녀온 일 있다. 우리 대모님 가브리엘 수녀님이 여름휴가를 지리산 휴천재에서 지내러 오신 적 있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쓰고 간 자리가 너무 어지러워 "우리 대녀가 돌아오면 속상할까 봐" 정리를 해 주기로 마음 먹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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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내가 돌아왔을 때는 부엌에 짝이 맞고 쓸만한 그릇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 되어 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좋은 그릇들은 모조리 신문지에 싸서 손 안 닿는 그릇장 제일 위에 넣어두었다."고 대답하셨다. "세상에!" 우리로서는 2년간을 '오픈 하우스'로 열어놓아 우리가 아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와서 사용하도록 했었는데, 쪽 떨어진 그릇이나 이빨 나간 그릇 만을 꺼내 쓰느라 '주인 참 야박하다!'며 서운했거나 '이 집 참 가난하다!' 탄식했을 게다. 그래도 대녀를 생각해주신 대모 가브리엘수녀님께는 고마웠다. 그 일이 생각나서 그제 밤을 센 그댁에는 모든 게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지만 손대기가 미안해서 컵 한 개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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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8시까지 신부님댁에 가서 미사를 드리기로 약속했는데, 그 집 지하 4층에 둔 차를 찾느라 반 시간은 걸렸다. 그러다 차 열쇠에 우리 자동차 호출하는 기능이 있다는 게 생각나 그것을 이용해 아우성치는 우리 차를 찾아냈다. 6.25때 헤어진 혈육을 찾은 기분이었달까지리산 속에서도 서울에서도 '땅층' 단독주택에서 살다 보니 26층이나 되는 고층아파트는 문화적응이 안돼 일어난 현상이리라. 드물댁처럼 한글과 숫자까지 문맹이라면 이런 경우 얼마나 암담할까? 대구 고층 아파트에 사는 딸네집에 가기 싫다는 드물댁 심경 알 만했다.


신부님 댁에서 데레사님이 정성스레 마련한 아침을 먹고 육신의 양식과 더불어 미사로 영육의 양식을 충분히 챙겼다. 그래도 삼척까지 왔으니 바다를 한 번쯤은 봐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우선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갔다. 널따란 창을 통해 바다를 보니 그림처럼 고요한 바다가 정물화 같아 실감이 안 간다. 모래사장을 걷고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물도 먹고 먹이며 놀던 날이 벌써 몇 해 전 일이었던가? 그런 날이 있기는 했던가?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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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부님이 삼척에 왔으니 유적지 하나와 순교성지 한 곳은 보아야 한다는 숙제를 주시고 손수 가이드도 해주셨다. 신부님이 어려서 물놀이를 하던 강을 끼고 내려다 보던 곳, 놀고 공부하던 정자 '죽서루(竹西樓)'에 올라 '관동 8경' 하나를 보았다. 우리가 알만한 관리나 문인들이 쓴 한시들이 현판으로 붙여 있었다. 송강 정철이 원주 부사로 왔다 이곳을 방문하고 지은 시를 우리말로 풀어놓은 글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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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지방의 신선 세계로 이름난 삼척의 누각

빈 난간에 아슬히 기대니 여름인데 가을 같네

하늘나라의 서울은 북쪽 왼편에 인접해 있으니

꿈은 은하수 물이 서편으로 흐르는 소리 들리네

성긴 주렴 걷으려는데 영롱한 이슬에 젖어 있고

새 한 마리 날지 않으니 강물 빛은 수심에 잠겼네

난간 아래 흘러가는 외로운 배는 동해로 향하고

낚싯대 던지니 놀란 갈매기 울릉도로 날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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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성내동 성당은 순교성지였다. 한국 전쟁 순교자 진야고보 신부님이 피난을 않고 성당에 남았다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성지였다. "요한, 우리 천국에서 만납시다. 절대로 신앙을 버리지 마시오." 당부하고 죽음에 길로 나간 그분은 당시 39세의 젊은 나이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믿음과 용기가 내게도 있을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박신부님이 태어나고 자라서 뛰놀고 복사하고 신앙을 익혀 사제가 된 성내동 성당, 뒤이어 이 땅에 정의가 구현되기를, 저 맑고 아름다운 동해안이 일본의 후쿠시마같은 비극을 겪지 않게 핵발전소 반대 환경운동에 몰두하는 투사로 키워진 성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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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점심을 들고 130분에 삼척을 떠나 울진, 봉화, 영주, 안동, 군위, 대구를 거쳐 400km를 달려 휴천재로 돌아오는데, 그 지긋지긋한 불볕 더위가 대구 논공에서 고령까지는 완전히 양동이로 퍼붓는 폭우로 변했다. 핸들이 휘청거리는 강풍 속을 "하느님, 물 좀 아끼셔요. 앞도 안 보이니 가도 서도 못하고 어쩌라구요?!"라고 큰소릴치면서 시속 30Km로 앞차의 깜빡이를 바싹 뒤따라 시간 반을 기다시피 했다거창 즈음에 날이 개이고 저녁 7시가 넘어 휴천재에 도착하니 휴천재도 소나기로 시원하니 식혀 놓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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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요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텃밭에서 남새밭을 손보고, 보스코가 베어온 오죽들을 오이밭과 토마토밭에 꽂아서 지주를 보충했다. 커다란 오이만도 서른 개 넘게 따고 아이들 머리통 만한 호박도 두 개나 따서 주변에 나누었다.


한전 직원들이 찾아와 계량기를 교체 신설하고 나니 휴천재 태양광 설치가 완료되었고 전기세 절약이 확정되었다. 오늘도 오후에 폭우가 한바탕 쓸고 간 뒤 왕산에 뜬 무지개가 화려하였다. 지리산 사는 사람들에게 특전적으로 베푸는 대자연의 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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