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4일 일요일
침대 시트 걷어 빠는 날. 내가 시트를 걷어 내고 새 시트를 깔려면 이쪽저쪽 오가지 않고 부부가 침대 양편에 서서 작업을 하면 퍽 효율적이다. 그러다 보스코가 허리를 다치고 보니 허리를 구부려 시트를 당기고 매트 밑으로 시트를 밀어 넣는 게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지 안쓰럽다. 빨래한 시트를 널기 편하게 두 사람이 네 귀를 붙잡고 당기는 작업은 부부가 오래 해 온 일과로 정말 두 사람이 손발이 맞아야 한다.
오랜만에 병상에 계신 백교장님이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다가 감동하셨다면서 시 한 편을 보내주셨다. 병원에 오래 계시다 보니 당신 곁에서 병간하던 아내의 모습, 정작 본인이 자리에 눕자 혼자 집에서 누워 있을 아내의 처지를 그린 시인데 한번 읽어보라신다. 남편이 큰 병에 걸려 회생이 힘들다는 말에 낙담하는 아내를 보고 하느님께 떼쓰듯 아내의 이름을 빌어 부탁드리는 기도 한 구절.
“저이를 다시 아프게 하지 마시고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나는 이 기도문에 깜짝 놀랐다. 나로서는 하느님께 "제가 대신 아플 게요."라고 부탁드릴 수 없는 사정임을 실감했다. 첫째로, 하느님께 자기한테 고통을 주십사 기도하면 제깎 들어주신다는 경고를 들은 터였고, 둘째로, 우리 집에 그런 일이 생기면 두 사람 다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보스코가 성한 몸이더라도 실생활에 아무것도 못하는 그를 내가 도저히 감당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밥을 해 먹는다거나, 나를 병간한다던가 하는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까닭이다.
아래숯꾸지 마을에서도 할배들은 모조리 앞산에 눕고 집집이 할메들만 남아서 '미처 못 죽은 삶'(미망인)을 유지하고 있는 게 2:8의 비율인데 그나마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날마다 하는 터에. 남자가 혼자서 삶을 건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 너무도 보기 안쓰러운 터에.
금요일 11시쯤에 김경일 선생님이 '임실에서 남원으로 나와 있는데 시간 여유가 있어 휴천재를 방문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야 언제 만나도 좋은 사이니까 오시라 했다. 김원장님이 사온 김밥과 우리 오이냉국으로 점심을 떼우고 점심 차리는 내 수고를 덜어주셨다.
우리는 모두 지난날 성장기와 부모로부터 겪은 지난날의 아픔을 안고 산다. 보스코는 자기 어렸을 적, 원장님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얘기로 주고받으며 깊이 박힌 상처는 딱지가 떨어지고서도 뇌리에 새겨진 아픔을 하얀 백지로 영영 지우지는 못함을 한탄하셨다. 500억 광년 저편에서 날아와 우리를 부모라고 부르며 우리 손을 붙잡고 인생을 물은 생명들(타골의 글)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빵기 장인어른이 8순을 맞아 평창에서 잔치를 베풀며 두 아들과 딸 하나를 혼인시킨 사돈들을 부부로 초대하셨다. 사돈의 형제자매(7남매)들과 배우자들, 사부인의 형제자매들(7남매)과 그 배우자들, 두 아들과 사위 하나의 가족들을 한데 모으셨으니 50여 명이었다.
빵기네 가족도 스위스에서 전날 밤에 도착하여 KTX를 타고 평창으로 왔다. 우리는 9시 30분에 휴천재를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 휴가철 피크이면 마(魔)의고속도로가 되는 영동선을 타고 평창 피닉스파크에 도착했다. 다들 소박한 평상복으로 입고 동네잔치처럼 편안한 분위기였다. 사돈이 최근에 펴내신 한시(漢詩)집에 모두 등장시킨 지인들이어서 우리와 첫인사를 나누는 자리인데도 친숙하였다.
사돈네 손주들(+ 손녀 둘)
우리 며느리를 맞던 결혼식(2004년)에서 수인사를 나눴어야 할 친척들인데 보스코가 공직을 지내던 로마의 대사관저 뜰에서 두 집 식구 10명만으로 식을 올려 우리 편에서 좀 미안했던 분들이다. 보스코가, 사돈의 부탁으로, 모든 친척들을 대표하여 축배의 헌사를 하였다.
그 모든 하객들이 콘도에서 잠을 자고 오늘 아침 식사를 그곳 호텔 식당에서 들고 나서 빵기네는 서울로 떠나고 우리 부부는 평창을 떠나 강릉 묵호를 거쳐 삼척으로 왔다. ‘사제단’의 일원으로 동해안에서 오래 동안 반핵운동을 하면서 핵발전소를 저지시켜 오신 박홍표 신부님을 찾아뵈었다. 주일이라 신부님 숙소 아파트에서 우리 부부와 신부님의 식복사를 해 주시는 데레사님과 함께 오붓하게 주일 미사를 드렸다.
바다가 있는 동네답게 삼척항에서 점심으로 회를 사주시기에 만나게 먹었다. 엊저녁은 횡성 한우, 오늘 점심은 삼척 생선으로 우리 입은 대단한 호사를 하였다. 점심 후 읍내에 있는 신부님 누이댁에 숙소를 마련해주셔서 편히 쉬었고, 신부님이 본죽을 사들고 그 숙소로 오셔서 함께 저녁을 들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상 혹서로 동해안이 지리산보다 무더운 기온을 자아내는 요즘에 요즘 유행한다는 ‘호캉스’ 보다 화려한 ‘동해 아캉스(아파트 바캉스)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