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30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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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휴천재 마당 잔디를 깎느라 내 다리와 어깨는 모기들한테 벌집이 됐다. 그렇게 고생해서 깎여나간 잔디 잎을 갈퀴로 긁어 삼태기에 담아다 버린다고 버렸는데, 아침에 내려다본 잔디밭은 일을 하다 만 듯하다. 새벽 450. 진이 엄마 아빠도 블루베리 밭에 가는지 낡은 트럭 요란한 엔진소리가 내 새벽잠을 깨운다. 나도 서둘러 일어나 어제 땀에 푹 젖은 옷을 다시 입는다. 10분 안에 흠뻑 젖을 테니 굳이 새 옷이 필요 없다. 전동가위와 낫, 묵직한 두손가위를 들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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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잔디깎이가 도달 못한 구석진 곳이나 구불구불 돌로 박아세운 꽃밭 울타리 가까이에 미처 안 깎인 잔디를 낫으로 쳐낸다. 염치없이 웃자란 화초도 꽃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잎과 줄기를 잘라서 인위적으로 '영토 표시'를 해 준다. 꽃에 따라 유난히 까칠한 것은 아무리 옆을 터줘도 몸집을 불리지 않는다. 단추 꽃이 특히 그렇다. 보라색 단추를 목까지 꼬옥 끼고서도 더는 크지를 않는다. 얄밉다. 베어낸 잔디잎과 뽑아낸 화초들을 삼태기에 담아다 버렸다.


가지런한 잔디밭은 보기에 참 시원하다. 휴천재 잔디밭이 잘 가꿔져 있었는데, 진이네 트럭과 승용차, 택배 트럭들이 잔디밭을 망쳤다. 보다 못해 서쪽에 감동 옆 감나무를 베어내고 자갈을 깔아 진이네 주차장을 따로 만들게 하고, 택배차량은 마당에 들어서지 말고 집 입구에 세우고 짐을 내리게 당부하자 잔디밭이 제 꼴을 되찾아간다. 귀촌(歸村) 아닌 귀농(歸農)을 하는 사람들에게 농업대학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게 마당에 잔디 키우지 말라는 당부였다. 너무 사치스럽고 일손을 많이 요구한다는 이유다. 차라리 마당을 시멘트로 깔고 나락 말리거나 콩타작하거나 붉은고추 말리라고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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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보스코가 마당과 텃밭 곳곳에 노랑색 끈끈이 트랩을 매달았는데 트랩 설치 목적물로 화초들에 가득 매달린 매미충들이 와서 붙지를 않는다. 면사무소에선 끈끈이 종이를 나눠주면서 페르몬이 뿌려져 있어 벌레들이 몰려든다 했는데, 페르몬이 작년 거라 다 휘발했는지 벌레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제 설치한 태양광 판넬이 해가 떠 있는 한 전기를 생산하고 한전에 등록되려면 열흘은 걸리므로 당분간 공짜라는 말에 어제 오늘은 마음 놓고 보스코 서재의 에어컨을 켰다. 삼복더위에 유난히 힘들어하던 보스코의 허리가 무더위 스트레스를 좀 덜 받았으면 좋겠다.


아래층 진이네는 눈뜨면 TV를 켜고 농장에서 돌아오면 일단 TV를 켤 정도로 TV를 좋아한다. 고된 일에다 특별한 재밌는 일이 안 일어나는 산속 생활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일요일 태양광을 설치하면서 전선들을 손댔는지 그집 TV가 아예 안 나온다. 파리 올림픽에 한창 재미를 보는 중이라 TV가 안 나오자 그 집에선 멘붕이리라. 내가 A/S를 신청하고 이 지역 담당 기사에게 사정사정했더니 오늘 오전 중으로 기사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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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기사가 어려 보이기는 했지만 평범하고 무난한 호칭인 아저씨!”로 불렀더니 , 장가도 안 갔는데, 아저씨가 뭐에요!” 정색을 한다. “그렇구나, ’-아저씨구나. 미안해요 총각!” 이라니 자기 안전모를 벗어 보이면서 보세요. 제 얼굴 보면 고3이라고도 하거든요.”라면서 무더위 짜증을 그 말에 얹어서 푼다. 초면의 남자들은 한 살이라도 더 먹어보이려 행세하고 여자는 한 살이라도 적어 보이려고 화장을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예외적인 반응이다.


독신녀가 유난히 많은 이탈리아에서 나이든 독신녀에게 '아줌마(Signora)'라고 했다가는 큰코다친다. “결혼도 안한 처녀에게 아줌마가 뭐에요?”라는 대꾸가 나온다. '아가씨(Signorina)'라고 바꿔 불러야 이맛주름을 편다. 나이 6, 70이 넘어도 아가씨는 아가씨지만 얼굴 어디에 나 처녀요!’라고 광고할 표지가 없어서 알음알음으로 짐작해내야 한다. 그곳에서는 나이든 여자에게 Signorina 호칭은 사회가 보내는 점잖은 존칭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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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텃밭에 내려가 풀을 맸다. 잉구는 트랙터로 갈아엎을 테니 그냥 두라지만, 소담정 말대로, 잡초가 꽃을 피우고 씨를 맺으면 두고두고 지심 땜에 고생이어서 힘들어도 뽑았다. 5시부터 9시까지 풀을 뽑고 나니 기운이 싸악 빠져 집에 돌아오는 대로 부엌 바닥에 누워 버렸다. 누운 채 선풍기를 쏘이며 빨대를 꽂아 두유 2개를 연거푸 마시고 나니 제정신이 돌아 온다. 동네 아짐들 신새벽이 다 그럴 게다. 이렇게 밭일이라도 해내야 자기가 살아 있다고 느껴지겠지만 이 나이에는 일종의 자기 학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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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팔자 좋게, 에어컨이 펑펑 켜진 서재에서, 차인표씨가 쓴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해결책, 2021)을 읽었다. 동화 같은 얘기지만 아픈 민족사가 녹아있고 그러면서도 각박하지 않은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읽힌다. 아름답고 가슴 아린 이야기라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겠다.


그가 소설을 쓰는 작가인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언제가 보스코가 새길교회’(교회당 없고 목사 없고 헌금 없다는)라는 교회에 설교자로 초대 받아 간 일 있었는데 차인표씨가 초대손님인 보스코에게 자기 이름을 밝히며 인사를 건네자 잘생긴 그의 외모에도 그의 연예 활동을 몰라보고 무슨 활동을 하시냐 묻던 광경이 생각난다. 미남배우, 탈렌트 차인표를 못 알아볼 만큼 보스코의 연예계 눈은 어둡고 연속극 등엔 저엉말 까막눈이다.


연예인이 희곡작가일 수는 있겠는데 소설가라니, 더구나 민족문제를 다루는 작가라니 각별히 신선해 보인다. ‘옥스퍼드대 한국학 필수도서라는 안내문은 더욱 책을 돋보인다. 이 함무이가 읽고 나면 며칠 후 만나는 두 손주에게도 읽혀야겠다. 시아네가 멀리 살면서도 읽는 책들을 통해서, 더구나 주로 사회성을 띤 책들을 통해서 함무이와 교감한다는 사실이 내겐 퍽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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