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8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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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보스코를 자주 병원엘 데려가다보니 그 반작용으로 내 일로 내가 병원 가기가 꺼려진다. 복용하는 약도 아침 저녁 대여섯 알씩 먹으며 날마다 약을 한 한주먹씩 먹어야 하는신세타령을 듣다보니 내가 그동안 간간이 먹어오던 비타민이나 영양제까지도 안 먹게 된다. 부부는 일심동체니 한 사람 병원출입에 한 사람 투약으로 둘다 낫겠다는 착각일까?


지난번 휴천재 3층 다락에서 내려오다 심하게 접질린 내 무릎과 발뒷굼치도 버티고 버티다 그제는 읍내 통증 클리닉에 갔다. 큰비가 내려 마당 텃밭 지심맬 일도 없어 한가한 틈을 내어...


시골에 아예 없거나 극히 드문 병의원이 하나 있는데 산부인과말하자면 인구의 70%가 여자인 시골에 산과(産科)는 물론 부인과(婦人科)도 없다니, 따져 말하자면 시골 여자는 여자도 아니란 말인가? 여기서 여자는 그냥 -사람(NO-man)‘이고 할마시‘(어느 영화제목처럼 헬머니‘거나) 란 말인가? 거기다 우리 사는 휴천면은 지난 3년간 신생아가 한 명도 없는,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어느 생명 하나 거미줄 같은 여인의 자궁에 걸려들지 못한 불모지의 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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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할마시들도 전성시대엔 애들을 토끼처럼 많이 낳았지만 이제 더는 산부(産婦) 노릇을 못할 7, 80대이니 산부인과 열었다간 그 의사 굶어죽기 참한 곳그래서 여자들도 병적(病的)으로남자와 평등해져서 아파도 부인병(婦人病)보다는 남자사람들이 앓는 부위, 곧 심장, , 위장이나 시골여자에게 제일 많은, ’아이고 허리 다리 무릎이야!‘ 하는 통증이다 보니 이곳 함양읍에서는 통증클리닉이 의료계의 떠오르는 별!


아무튼 문정공소 신자들 사이에 ()의 여인으로 통하는 전순란마저 그날은 읍내 통증클리닉 문을 들어섰는데, 들어서자마자 늙은 간호사가 먼저 민증 내쇼!’하고 나섰다. 언제부턴가 병원에 가면 신분증 제출이 최우선 진료행위가 되었다. 윤가가 민증 없거든 아프지도 말라!’는 훈령을 내렸나?


그제처럼 비오는 날이어서 온 삭신들이 쑤셔선지 대기실에는 환자가 가득하다, 모두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 빼고는 모조리 나보다 연상으로 보였다. 시골에선 가끔 나보다 연하로 보이는 아낙들이 손윗사람 행세를 하고 싶어선지 나더러 몇 살이냐?’ 종종 물어온다. ‘몇 살로 보이냐?’고 되묻고 그 사람이 몇 살을 대든 딱 맞혔네요!’ 칭찬하고서 그친다. 대부분은 내 실제 나이보다 어린데 자기보다 연하로 봐 주니 은근히 이득을 본 기분도 들고, 논농사 밭농사로 꽃 같은 용모가 검게 타버린아낙들에게 도회지 살아온 내가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다.


그날 아짐 환자들 가운데 허리에서 신경이 눌려 무릎으로 내려오고 종아리가 아프며 발바닥에 쥐가 난 듯 먹먹하니 남의 발바닥같다는 나의 자가진단에 동조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시골 논밭에서 같은 일하고 같이 망가져가니 증세도 같고 병명도 비슷하다. 말하자면 병이라기보다 이곳에서 살려면 반드시 거치는 통과의례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나도 뭔가 설명하려다 의사도 같은 호소 듣고 같은 진단 내리기에 지쳤겠다 싶어 슬그머니 일어나 담에 MRㅣ 찍은 것 갖고 다시 올 게요.”하고선 병원을 나왔다.


어제 토요일 아침. 아픈 다리한테 일렀다. “너나 나나 쓸만큼 썼고 살만큼 살았으니 그만 받아들이자꾸나!” 계단 위에 서서 아픈 다리를 힘차게 몇번 흔들어 토닥여주고서 아싸!” 하며 내려디뎠더니 제법 말을 잘 듣는다. 훨씬 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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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군청 주도로 ‘3KW 태양광발전 파넬’’을 설치해준다. 비용이 600만원인데, 20% 만 집주인이 내면 나머지 경비를 국가에서 부담하여 설치를 장려한단다. 나 없을 때 태양광 설치하세요, 태양광!“ 하고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 및 결정을 한 당사자는 보스코였다. 태양광 설치 회사 직원은 보스코를 뭘 모르는 뒷방 할배로 보고 4월에 바로 설치해준다 확약했는데 공사를 미루고 미루다 그 남자 뒤에 나처럼 독하고 끈질긴 마누라가 있는 걸 파악하고서야 오늘처럼 비가 예보되고 공일인 일요일을 골라서까지 공사하러 왔다, 나한테 열 번쯤 독촉 전화를 받고서! 보스코처럼 순한 남자는 필히 쌈닭 같은 마누라를 등 뒤에 세워야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휴천재는 전기 계량기를 여럿 달고 있는데 (1층 가정용, 2층 가정용, 진이네 가정용, 1층과 2층 심야전기, 감동 저온창고)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2층 가정용 계량기 요금이 항상 제일 많아 신설 태양광 발전소는 그곳에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보스코 서재의 에어컨을 좀 마음 편히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에는 근검절약이 뼛속 깊이 자리잡고 있어서겠지만, 내가 엄마, 이젠 제발 그렇게 살지 말아요!“하던 소리가 이젠 내 아이들이 내게 하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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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나는 전동잔디깎기로 3주만에 휴천재 마당 잔디를 깎고 보스코는 내가 면사무소에서 얻어온 유인평탄트랩‘(벌레잡이끈끈이)을 마당 초목과 텃밭 여름 채소들 사이사이에 걸었다. 인간들 참 인색하다, 저것들로 살자고 태어났고, 먹이가 풀꽃에 오르는 즙액뿐인데 그것마저 아깝다고....


제네바에서는 빵기네가 지난 10여년 살아온 셋집을 떠나서 방 한 칸이 더 있어 시아와 시우가 각방을 쓸 수 있게 된 셋집으로 이사했단다. 2004년 빵기네 부부가 신혼 살림을 차린 집은 PAX 활동을 하던 이성훈 선배가 물려준 9평 단간방 아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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