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5일 목요일. 맑음


수요일 오전 930. 큰딸 이엘리가 전화를 했다. 혜지랑 휴천재로 내려오는 중인데 점심은 동네 함바집 '엄천식당'에서 먹자고, 그리로 나오란다. 대식구를 거느리고 얼마나 밥하는 일이 힘에 부쳤으면 "나 뭐 먹고 싶은데 해 주세요." 라고 안하고 "1130분까지 그 함바집으도 나오세요." 라고 할까? 나를 많이 봐주는 셈이다.


그 식당엔 오늘 따라 우리 넷이 전부였다. "왜 이렇게 평상시와 달리 사람이 없어요?" "날씨가 하도 더워 일 시키는 사람이나 일 하는 사람이나 여름 일은 서로 안 하려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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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아보니 한여름 한낮에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처(도시)에서 막 들어온 맹탕농부다. 오늘 아침에도 아래층 진이네는, 요즘 블루베리 가지치기를 하는데, 새벽 5시에 나갔다가 아침 9시면 돌아온다. 나 역시 5시에 나가 텃밭에 풀을 뽑다 '눈개승마' 옮긴 이랑에 물을 주고 집으로 올라오니 8시가 좀 넘었다.


'엄천식당'의 밥이나 반찬은 늘 비슷하다.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생선 두어 토막에 늘 집에서 먹는 그런 반찬이어서 손님들이 친숙해 한다. 보스코와 혜지는 된장에 땡초 찍어 먹는 걸 경쟁한다. 둘이 의논해가며 맵기를 가늠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친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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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휴천재에 올라와서 다과를 들고 뱀사골로 가서 데크길을 걸었다. 삼복더위에도 뱀사골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바람이 물결에 실려온다. 넷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는 길, 자연은 인간을 더 가깝게 만든다. 세 시간쯤 산길을 걷고 골짜기 물에 발도 담갔다. 골짜기 물은 어제 같은 찌는 더위에도 얼음물처럼 차가웠다.


그 찬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보스코가 일어나겠다면서도 몸을 추스르지 못하자 큰딸이 '완죤 노인' 돌보듯 보스코의 젖은 발을 닦아주고 양말과 신을 신기고 몸을 부축하여 일으켜 주기까지 한다. 저래서 늙을수록 딸이 필요하다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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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사골에서 내려와 익일 중복을 앞당겨 '뱀사골 산채식당'(입담 좋은 운봉성당 교우 체칠리아씨가 주인이어서 특히 교우들에게는 서비스가 좋다)에서 능이버섯백숙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지 얼마 안됐다는 핑계로 엘리가 백숙의 반절은 따로 싸서 이튿날 두 노인네 복날 음식으로 내놓고 넷이서 반 마리만 먹었다. 고기를 먹는데도 보스코는 닭껍질을 달라하고(물론 안 주었지만) 혜지는 우리 모두의 비선호 부위인 닭가슴살을 먹는다.


휴천재 돌아오니 날이 이미 기울었지만 텃밭에서 푸성귀를 좀 거두어 엘리는 혜지랑 서둘러 서울로 떠났다. 커다란 집에 다시 둘만 남으니 노는 일도 기운이 있을 때 할 일이라고, 우리도 눈에 띄게 늙어가고 있음이 오후 한나절 뱀사골 산행에서 여실하더라고 둘이서 도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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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보스코가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시 한 편을 읽어 주었다. 잠자리에 들어 눈이 가물가물한 아내에게 시 몇 편(주로 '우이동 시인들')을 읽어주는 게 보스코의 취미다.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10여년전 우이동집을 방문해주신 '우이동시인들'

(왼편에서부터 채희문, 홍해리, 이생진, 임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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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와 내가 서로를 몰라보는 사이가 되면 어쩌나최소한 모든 걸 잊었던 문혜린 여사가 마지막 병상에서 남편 문동환 목사님을 보고 했다는 마지막 말처럼, "누군진 잘 모르겠는데 나를 사랑했던 남자는 틀림없어요." 라고 나도 보스코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 어둑한 산봇길에서 만난 한길가 우동댁이 법화산 위로 스러지는 노을을 멀거니 올려다 보며 대처 큰병원 중환자실에 '코뚫고' 입원해 있는 남편이 발부터 차디차더라는 소식을 전해주며 "아랫도리는 죽어삐릿고 윗도리만 살아 오늘낼 하더구먼" 덤덤하게 말해주었다. 늘 자기 집 앞으로 지나가는 우리 둘의 저녁산보를 지켜보던 아짐은 내 등 뒤로 "살았을 적 꼬옥 손잡고 다니쇼. 살아 생전 난 한번도 못해 봤다오." 한 마디로 우리 둘에게도 '남은 날이 적음을' 긴 여운으로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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