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4일 화요일, 맑음
비가 사라진 자리엔 무더위가 찾아와 떠억 버티고 섰다. 아침 아홉 시 기온이 29도. 이제 시작이다. 더우면 선풍기 틀고, 대야에 찬물 떠다 발 담그면서 여름은 버티는 거다. 한 달만 눈 딱 감고 넘기다 보면 낮에는 미루나무 높이 매미가 맴맴 울고, 저녁나절엔 고추잠자리 떼가 휴천재 마당을 가득 날며 모기를 쫓고, 밤에는 댓돌 밑에서 귀뚜라미가 가을을 알리는 노래가 곧 들려 올 게다.
우리 늙은이들이야 추위가 무섭지 더위는 견딜 만하다. 다만 올여름은 별나게 더울 것이라는 예보에 모처럼 손주들이 휴천재에도 온다니 '만년 손님' 겸 '해외 동포'라는 손주들 접대용으로라도 에어컨을 새로 설치하려는 중.
어제 낮12시 반쯤 '투원 원 에어컨'을 싣고 삼성기사가 조수 한 명을 데리고 휴천재에 왔다. 몸체가 통통한 조수는 어찌나 땀을 흘리는지 곁에 있는 내가 덩달아 더 덥다. 얼음 물을 연신 대령하는데도 목구멍 넘어간 물이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듯 그의 전신에서 땀으로 쏟아져 나온다.
설치 기사는 '우리 세대'에 가까운 노동정신을 갖추었고, 조수는 요즘 흔히 보는 MZ 세대로 보였다. 말하자면, 남의 눈치 안 보고 자기쪼로 하는 젊은이였다. 일과 장사를 가르치러 그를 데리고 다니나 본데 일시키는 기사가 집주인인 나보다 더 속 터지는 표정이다.
설치를 마치고 기사일행이 떠나고 에어컨을 작동시켜 보니 서재에 새로 설치한 벽걸이 에어컨에서 물이 줄줄 흐른다. 연락을 받은 기사는 가던 길을 돌아와서 고치는데도 조수는 '6시가 넘었는데.' '아, 여섯 시가 넘었는데.'를 연발한다.
지난 18년 써온 에어컨도 한 여름 두세 번이나 켰는데 18년만에 고장나 들려나가는 모습이 서운하다. 18년 전에는 동으로 배관을 했는데 요즘은 알미늄으로 해서 더 약하다는 기사 말에 옛날 배관을 그냥 쓰기로 했다. 회사에서 단가를 낮추려다 보니 그리 됐나 본데 '모든게 새것이 좋다'는 세상에서도 낡은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겠으니 늙은 나도 그렇다. (자뻑일까)
’우리 젊은 날의 기수‘ 김민기가 쓰러졌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그를 기리며 부엌에서 생전에 그가 들려주던 노래들을 듣고 또 들었다. 특히 "작은 연못"은 '내 칭고 리따'가 자주 부르던 곡이어서 더 사무친다, 그미의 삶의 궤적이 담긴 노래이기도 하지만... 부부 같은 인간관계나 지금의 한국사회의 정치상을 '죽은 물'로 변질시켜온 아픔을 후회하며 우리의 젊은 꿈과 이상을 회상한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사람은 관 뚜껑 덮을 때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지만 시대를 풍미하며 우리를 감동시켰던 김지하와 김민기를 비교해 본다. 갑자기 극우 언론인으로 둔갑한듯 민주화 운동을 조선일보 지면에서 “죽음의 굿판”으로 매도하던 김지하가 로마에 왔을 적이었다. 그를 손님으로 대접했어야 할 다른 대사가 부탁하여 보스코가 대신 시인을 관저로 초대하여 저녁을 대접하면서 몇 마디 주고받은 대담에서 보스코와 동갑이던 그 지성의 퇴락을 본인에게서 직접 본다는 것은 참 힘겨운 일이었다. 그와 달리 김민기는 오늘 어느 인사가 평한 대로 “김민기 선생은 예술 선비였다.”
치매가 걸렸다는 바이든은 오바마의 설득에 깜짝 사퇴하고 '늙은, 남자, 백인,'과 '젊은, 여자, 유색인'이 한판 붙게 되었으니 미국 집안 쌈 한번 볼 만 하겠다. 전세계의 구경꺼리 앞에 그자들은 누구를 뽑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가 좀 더 나을 것 같다. 그 여자도 한반도와 주변에 바이든이나 트럼프 못지 않게 모진 정치인이지만...
엊저녁 피곤해서 눈이 감기는데 이웃에 사는 사람이 들렀다. "비타민을 하루에 15g을 먹으면 만병통치하고 무병장수한다,"는 인술을 펴면서 (1000mg 두 알 먹는 것도 죽어라 싫어하는) 보스코에게 열다섯 알을 먹으라고 설득한다. 약은 약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다량 복용이 절대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약(藥)은 독(毒)이라고 하는데도 80대 보스코가 '콜레스테롤', '심장 스턴트', '폐암 수술', '척추파열'을 이유 삼아 아침 저녁 한 주먹씩 약물을 복용하는 모습은 그의 몸 전체가 제약회사들의 소비처 같아서 여간 안타까운 터에...
요즘 텃밭에 나가 보면 파리 만한 크기에 나방 모양의 해충이 가지나 고추, 토마토 줄기에 잔뜩 붙어 있다. 진을 빨린 작물들은 꽃잎마저 오그라들고 이미 열린 열매도 지루 떨어지고 만다. 소나기가 온다고 예보되었는데도 한남댁은 고추밭에 약을 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흰가루병, 선녀나방 등이 더 극성을 부리고 이에 대응해 농약은 갈수록 더 독해진다. 인간과 해충이 서로 영역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한 집이 농약을 치면 벌레들은 그걸 피해 약을 덜 친 밭으로 피해왔다가 뜸해지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오늘 오후에는 도정 체칠리아가 그간에 빌려다 읽은 책들을 가져왔다. “요즘 내가 읽은 책들 가운데 지성호 작가의 『아버지는 14세 징용자였다』라는 책이 무척 감명깊었어. 그 작가는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글을 쓴 것 같아. 전에도 그가 쓴 『클래식 음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를 읽고 좋았는데, 이번 책이야말로 지성호라는 사람 냄새가 전체 책 속에서 물씬 풍기더라구.” 내 주변에서 지성호 작가에 대한 최고의 호평 같다. 대서(大暑)가 낼모레인 한더위, 안하무인 정당 대표로 윤가에게 뒤지지 않은 모사꾼이 뽑히는 짜증 나는 오후일수록, 좋은 책은 시원한 선풍기 바람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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