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21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아침. 고 작고 어린 눈개승마모종을 두 줄 이랑에 심고나서 멀칭을 안 하는 대신, 하루에 10분씩 내려가 풀을 뽑기로 한 첫날. 일곱 시에 모기망 모자, 긴 옷, 토시, 물것들을 피하는 비닐바지에 장화로 차림을 하고서, 몸과 옷에는 모기기피제를 실컷 뿌렸다. 그러나 10분으로는 텃밭 풀들과 씨름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두 시간이 후딱 흘렀고 몸은 땀으로 목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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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뭐를 잘못 먹었는지 속이 좋지 않다고 해서 녹두죽을 쑤워 주고서 나는 비오는 하루 종일을 지리산과 집앞 계곡에 장대비 쏟아지는 광경에 멍때리다오디오 책방의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늙은이 눈이 나빠지면 귀로라도 듣는다고 빵고 신부가 생일 선물로 오디오 책방 USB’를 사주었는데 서울을 오가거나 장거리 여행에도 보스코가 래디오 켜는 걸 싫어해서 음악이나 오디오 책방마저 못 듣는다. 둘이서 가끔 이야기를 나누거나 워낙 말수가 적은 그 남자의 취미에 맞춰 스쳐가는 자연 경치를 보는 게 전부다.


1979년의 보스코:  한 살 된 빵고를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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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집에서 자기가 공부할 때 즐겨듣는 일정한 클래식 외에는 어떤 소리도 그에게는 소음으로 간주된다. 내가 그의 사정을 존중해 주기에 그가 번역일에 몰두할 수 있다. ‘남자의 횡포를 어찌 그리 맞춰줄 수 있냐?’고 핀잔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왠지 그와 결혼하자마자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지 50년이 넘었다. 아마 그도 나한테 참아주는 일들이 많을 테지만 그게 뭔지 통 얘기를 안 하니 나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항상 책 쓰는 장난을 하고 계십니다.

내가 어쩌다 아버지 방에 놀러 들어가면

엄마는 당장 와서 나를 불러내십니다.

내가 조금만 시끄럽게 굴어도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것을 모르니?’

밤낮 글만 쓰고 또 쓰다니 무엇이 그리 재미있습니까? (타골. “초승달에서)


빵기와 빵고 둘은 이런 분위기에서 조용조용 자랐으니 하릴없이 자기들도 책을 갖고 놀면서 자랐고, 그 내림인지 시아 시우 두 손주도 집에서 노는 놀이는 거의 종일 책이다. 휴가 때 고국에 들렀다 돌아가면서 메고 가는 짐 속에 든 것은 늘 새로 산 책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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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쯤 지나면 빵기네 식구들이 지리산에 와서 며칠을 보낸다는데 살인적인 무더위가 예보되어 고장난 에어컨을 내어 놓고 새 걸 사야겠는데 통 감이 안 잡힌다. 한 개 짜리를 마루와 서재에 각각 설치할지 투윈 원으로 마루와 서재에 할지 몰라 빵고신부에게 물었더니 투윈원 100만원 짜리가 있단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배달도 설치도 안 해주고 실외기도 없고 선이나 설치 냉매가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란다. ‘무슨 장사가 이래?’ 한참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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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보스코의 여름옷을 챙기러 3층 다락에 잠시 올라갔는데, 미친 듯 장대비가 지붕을 두드린다. 도저히 층계를 내려올 수 없을 정도의 폭우여서 서쪽 창가에 앉아 저 호우를 고스란히 맞고 서 있는 산천초목을 본다. 감동 옆 도랑 물이 격렬하게 용트림을 하며 물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움켜쥐고서 끌고 가거나 훑어간다.


진이네 트럭 밑에서 두꺼비가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함께 비를 피하던 새끼 고양이가 자꾸 두꺼비를 건든다. 빗살에 워낙 혼이 났거나 두꺼비가 꿈쩍도 안해 재미가 없던지 고양이가 장난을 멈춘다. 잔디밭 앞 꽃밭에서 새끼 두 마리가 내가 심어 놓은 이탈리아 봉숭아를 짓이겨도 지금까지 봐주었지만 냥이네 가정교육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점심 후 먹을 것을 주면 어미가 새끼를 데리러 가고 두 마리 새끼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감격스럽다. 둘이 자못 흡족한 듯 물러서야 어미도 밥그릇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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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오늘도 오전에 비가 내린다고 예보되어 둘이서 텃밭 배나무에 EM 물비료를 주었다. 200배의 물에 희석시켜 나무 밑에 뿌려주라고 적혀있는데 그냥 원액을 뿌리고서 물타서 희석시키는 일은 하느님께 맡겨드렸다. 그런데 요며칠 그렇게나 흔하게 쏟으시던 비를 오늘 따라 아끼고 계셔서 안타까워 했더니 진이엄마가 단방 처방을 내린다. “그것도 운명이예요. 살면 살고 죽으면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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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03

7월 셋째 주일이어서 7시에 본당신부님이 미사를 드리러 읍에서 오셨다. 날씨는 덥고 습하다. 이런 날은 미사 오신 신부님께 뭐라도 한 말씀 건져야 한다. 복음 말씀을 읽고 강론에서 "나보다는 필요가 절실한 남을 먼저 헤아리고 챙겨라!“ 하셨다. 미사후 식당에서 다과를 하며 유쾌한 환담을 하다 떠나셨다.


한길가 문정식당 아저씨가 쓰러져 119에 실려 진주 경상대병원에 실려가신지 여러 날 되었단다. 뇌사상태여서 인공호홉기를 안 달겠다는 가족에게 "사흘 지나서 떼어드릴 게요." 하던 의사가 사흘이 넘었는데도 "이젠 법적으로 못 떼요!"라도 버티는 바람에 가족이 어쩔줄 모른다는 소식이 동네에 퍼졌다. 그분이 돌아가시면 남자가 귀한 동네에 아까운 남자가 하나 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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