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6일 화요일. 장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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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하면 해가 나고, '해가 났군!' 하면 소나기가 쏟아진다. 사람이나 날씨나 일관성이 있어야 믿음이 가는데 무엇을 입을지 먹을지 가늠이 안 선다비가 멈추었다 싶어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갔다가 축대 밑에 심었던 연산홍들이 지난 가뭄에 말라 죽었다고 포기를 했는데 참깨 싹 만한 새싹들을 조르라니 올리고 있다. 힘겹게라도 새 생명의 기운을 싹 터 올리는 것들 주변에서 거친 기세로 자라는 도깨비방망이, 나팔꽃, 개망초, 개고사리, 환삼덩쿨들을 사정없이 뽑아주었다.


그 새를 못 참고 빗줄기가 좌악 쏟아지고 풀 이파리 뒤에 숨어 있던 모기와 각다귀들이 와르르 일어나 내 다리와 엉덩이, 어깨와 잔등을 사정없이 물어뜯는다. 축대밑 스무 포기 가까운 연산홍 주변이 홀가분해졌을 무렵 나도 허리를 펴고 일어섰더니 옴 걸린 환자처럼 온 몸이 가려워 시멘트 벽에라도 등을 벅벅 문지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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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마운 우리 엄마! 아무리 가려워도 긁지 않고 수분만 버티면 가려움이 가라앉고 사라지는 피부를 물려주셔서 큰딸의 시골 밭농사가 가능하다. 나는 살성 좋은 피부를 엄마가 낳아 주셨다면, 보스코나 큰손주 시아는 모기의 한 방에 온몸을 미칠 듯이 긁어대고 물린 자국마다 동전만큼 커다랗게 벌겋게 부어오른다. 작은손주 시우는 살성이 어떤지 잘 모르겠다.  


이번 8월에 시아네 식구가 여름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하여 지리산 휴천재에서 한 주간쯤 지낸다는데  동병상린의 할아버지는 온갖 해충 퇴치 기구와 약품들을 갖추어 놓고 손주들을 기다리지만 할머니로서는 대책이 막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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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초복(初伏). 마을 할메들이 각자 만원씩 추렴하여 읍내에서 양념통닭 10마리를 주문했다면서 나더러 (돈 안 내도 되니 통닭 먹으러) 마을 회관으로 내려오라지만 내게는 딸린 혹이 있어 집에서 옻닭을 준비했다. 작년에 베어 말려 놓은 옻 껍질들에 마늘 대추 당귀를 넣고 폭 고아 노랗게 물이 울어 나자 그물에 토종닭을 통째로 넣고 한 두어 시간 푹 삶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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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4월 보스코가 남원의료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오고 나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준 '전태평씨 부부'(전용식-고미자)의 사진이 환경운동가 최세현씨의 동네장터에 올라온 것을 본 터라 태평씨 부부를 점심에 초대했다. 다행히 그 부부도 옻을 타지 않는다고 해서 불렀지 소담정이나 스.선생네는 옻을 타서 부를 수가 없었다. 다음엔 보통 사람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을 만들어 복나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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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요일 아침.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왠지 심사가 처량해진다. 헌집 지붕에서 비가 새서 하늘로 뚫린 구멍마다 물받이를 대야 하는 처량한 신세도 아닌데, 그 긴 가뭄에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불과 며칠 만에 하느님을 원망하는 핑계가 됐다


시장은 멀기만 하고, 우리집 뒤꼍에 통통한 머우대를 꺾어다 껍질을 벗기고 삶아서 들기름에 볶다가 들깨 간 물을 걸러 넣어 들깨탕을 끓였다. '장마철에 물외 크듯'이라는 속담도 있지만 빗속에 열려 하루 한뼘씩 자라는 오이는 소금에 절여 꼭 짜서 들기름에 살짝 볶아내고, 부추와 상춧대는 겉절이로 안성맞춤이다. 모든 게 지척으로 텃밭과 주변 언덕에 깔려 있으니 이리도 고마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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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읍내 미생물생산공장에 가서 미생물을 30봉지나 받아 차에 실었다. 나간 길에 수동에 사는 이정남씨를 만나러 갔다장뇌삼과 곶감으로 든든한 터를 잡은 그미에게는 어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여, 옆에서 보는 이에게도 귀농생활의 안정감을 준다. ‘눈개승마’의 모종을 세 판이나 얻었다. 내년부턴 휴천재 텃밭엔 감자농사나 배추농사를 줄이고 이런 류의 다년생 나물류로 경작물을 바꿔야겠다읍내에 나온 길에 슈퍼에 들러 올 들어 처음 햇옥수수를 사다 저녁상에 삶아냈다드디어 제대로 여름을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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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바퀴에 총 맞은 덕택에 차기 대통령 당선을 5개월이나 앞당겼노라고 자축하는 트럼프를 두고 엊그제 건국 이래 미국 대통령들의 암살과 저격사건들을 흉 봤더니, 우리나라 건국 80년 역대 대통령들의 종말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범죄자 명단처럼 기억에 떠올라 정태춘의 노랫가락을 부르며 탄식하게 만든다. 아아아~~ 대한민국, 우리의 공화국!”


초대 이승만은 독재와 선거부정으로 타도되어 하와이로 망명했고군사반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장기독재하다 술자리에서 부하에게 총 맞아 죽고전두환과 노태우는 또 다른 군사반란과 광주시민학살로 역사적 단죄를 받았고이명박 박근혜는 부정축재로 옥살이 했고, 금년 7월은 스트레스 쌓인 국민이 술자리에서 윤가가 V1이냐 V2?”는 실없는 얘기나 토로하게 만드니... 도도한 민족의 역사에 수시로 흙탕물이 여울지는 암담한 시국을 대면하는 답답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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