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4일 일요일. 오전 비, 오후 개임


금요일 아침. 휴천재 마당 전화줄에 앉아 있던 물까치가 거리낌 없이 배밭으로 직행한다. 한 마리가 배나무에 앉아 뭔가를 쪼아대더니 다른 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는 같은 짓을 이어간다. 저 가지라면 내가 배봉지를 싼 나무이니 저 높은 곳까지 내가 봉지를 싼 기억도 없고... 혹시 봉지로 싼 배를 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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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쫓아 내려가니 보스코도 따라 내려와 봉지 주변을 살핀다. 높이 있어 보이지 않았거나 눈에 뜨이지 않은 배알이 봉지 없이 남겨져 있는지 살피고 배알이 발각되면 나는 고추대를 휘둘러 털어내고 보스코는 사다리를 타고 전지가위로 잘라냈다


주변에 모여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물까치들이 항의 조로 엄청나게 짹짹거리며 보스코의 어깨 위로 위협적으로 날기도 한다. 내가 걔들이 음식물 쓰레기 장에서 모이를 먹을 때 쓰레기를 비우고 돌아서면 내 어깨를 날개로 탁 치면서 식사를 방해했다는 듯  덤벼들기도 했었다. 포악하고 겁 없는 새다.


서울집 근처에서도, 휴천재 근방에서도 까마귀, 까치를 사정 없이 공격하고 위협하여 그 새들이 새끼 칠 틈을 안 준다. 어제도 까마귀 한 마리가 휴천재 전봇대에 내려앉자 물까치가 한 마리, 두 마리, 네 마리가 옆으로 모여들더니만 도합 일곱 마리가 한꺼번에 까마귀를 공격하는 사나운 광경을 내 눈으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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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 전체가 선녀나방과 유충의 확산으로 초목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뉴스. '선녀나방'이라는 이름이야 예쁜데, 하는 짓이나 번식은 누구 말대로 백여시나방이라함이 맞겠다. 견디다 못해 농약을 사다가 물에 타서 금요일 저녁나절에 20리터 농약통으로 두 통을 치고, 토요일 새벽에 한 통을 또 쳤다. 작년 같으면, 우리 마당의 목백일홍이 벌써 만발할 무렵인데 선녀나방이 가지마다 허옇게 끼는 등살에 꽃이 벙긋도 못한다.


토요일 아침. 나는 약통 줄을 끌고 휴천재 마당과 뒤안 전체를 헤매고, 보스코는 아직도 물까치가 쪼아먹을 배가 남아 있나 높다란 사다리에 올라 배알을 찾아내서 딴다. 멀리서 보면, 아직도 덜 딴 배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까치가 배나무 위로 내려앉으면 나는 냄비를 국자로 두드려 쫓기도 하는데, 새는 잠시 날아올랐던 그 속도로 다시 배밭에 돌아온다. 오늘까진 아직 배봉지까지 뜯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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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강 건너 운서마을에서 곶감을 생산하는 유진국 선생이 잘 익힌 반건시 한 상자를 선물로 갖고 휴천재를 방문했다. 다과를 들면서 그래도 당신 아들이 부친의 귀농사업을 잇겠다고 시골로 내려온 데 저으기 안도하는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집 외에는,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이 일대의 귀농 귀촌인 중 수십년 일군 농촌사업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아낸 사람을 못 본 듯하다. 한국의 농업과 농촌 인구가  급속하게 기울어가는 현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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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이면 우리 은빛나래단은 바쁘다. 75일엔 이사야 생일, 11일은 보스코 생일, 13일은 귀요미 미루 생일. 그래서 세 사람을 퉁쳐서 중간에 해당하는 11일 보스코 생일에 한데 축하했는데, 13일 미루 생일을 그냥 지나치기가 섭해서 동의보감촌에서 만나 육회비빔밥이라도 먹기로 했다. 나는 티라미수를 만들어 갔고 미루는 커피와 과일을 가져와 약식 축하식을 했다. 미루가 일년 내내 가까이에서 우리 노친네들을 알뜰살뜰 챙겨주는 게 고마워서다.


5년전엔 세 여자 꽤 젊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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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미루 생일에 남해의 피자피네를 갔던 사진을 미루가 보여주는데, 5년 전만 해도 우리 '나래단' 여인들 얼마나 젊고 싱싱했는지 보여준다. 세월의 흐름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당하는 젊음임을 사진첩 또한 너무 생생하게 보여준다.


점심 후 집에 돌아와 보스코는 허리 땜에 누웠다 일어나 다시 책상을 지키고, 나는 낫과 전동가위를 들고 집 뒤꼍으로 갔다. 작년에 꽃을 피우고는 죽은 채 서 있는 오죽을 타고 환삼덩쿨이제 세상을 만났다. 까맣게 죽은 대나무들을 베어내야 하는지 그대로 놔두면 죽순으로 올라올지 모른다나? 단지 대나무밭 하나는 같은 뿌리에 연결된 대나무 한 그루나 마찬가지요 나이도 같다니 잘라내는 게 답일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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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앞 화단에 무성하게 자라 오른 가시덩쿨, 뽕나무, 밥티나무, 매화나무 등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식물들을 손으로, 낫으로, 전동가위로 쳐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빗물과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4시간 동안 낫을 휘둘러 잡초를 뽑아내는 일도 시골살이 스트레스 해소에 일조를 한다. 선녀나방과의 전쟁, 물까치떼와의 전쟁, 잡초와의 전쟁을 못 이기면 시골에서 못산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07

오늘 일요일 공소예절에 가니 우리집 위아래층 사는 두 식구 네 사람이 전부다. 이렇게라도 공소를 이어가느니 차라리 공소를 닫았으면 하는데, 보스코는 나와 생각이 또 다르다. 세계적으로 신구교들이 다 개장휴업’으로 가는 사태여서 교회 뉴스를 보면 독일의 예로, 해마다 가톨릭 신자 50여만명이 구청을 찾아가 나 안 믿으니 내 주민등록에서 가톨릭을 지우고서 나에게 종교세(宗敎稅) 부과하지 마시오!”라고 선언한단다. 그 추세로 앞으로 20년 가면 현재 2500만 독일 가톨릭 교회는 반감된다나? 개신교 사정도 비슷하고...


트럼프의 암살미수가 모든 언론을 도배한다. 150년된 국가에서 대통령 4명이 암살당하고 11명에게 암살미수로 그친 나라 미국. 트럼프가 대북한 외교를 상식적으로 풀듯 했는데 기대를 저버렸고,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무슨 정치적 악이든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미국은 할 수 있으니까 한다!”는 선언으로 전세계 지성인들을 아연하게 만든 자에게 인류의 운명이 다시 맡겨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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