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1일 목요일. 비오다 맑다 흐리다 다시 비오는 날씨
수요일 아침. 며칠 간 억세게 내리던 빗속에서 하루쯤 맑은 날씨를 슬쩍 끼워 넣으시는 재치라니! 휴천강에서 피워 오르는 물안개가 골짜기 사이로 감아 돌며 산의 볼륨을 한껏 육감적으로 살린다. 저 멋진 산을 구비구비 끌어안고 당겼다 놓았다 노는 안개는 참 좋겠다. 형태를 맘대로 바꾸고 맘대로 오르내리다 맘대로 사라지는 묘기는 대자연의 '갓 탈렌트 쇼'다.
물까치가 전깃줄에 앉아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다가 ‘미루집’(휴천재 텃밭 연장 창고) 앞 배나무 꼭대기로 날아내린다. 배밭에서 뭔가 열심히 찾기도 하고 부리로 쪼아 대는데, 미처 봉지 싸지 않은 배를 그렇게 하지 않나 걱정된다. 일단 배맛을 보면 봉지를 뜯고 입질을 할 테고, 한번 시작하면 서른 그루 배나무 열매를 모조리 작살 내고선 추석 무렵이면 저희들 먹고 남은 것 몇 알 남겨주던데...
해거름에 보스코가 텃밭에 내려가 엊그제 수리해 놓은 독수리도 대나무 꼭대기에 매달아 세우고, 그동안 잎새 뒤에 숨어 있다 제법 굵어지면서 눈에 띠는 배를, 새들 눈에 안 띄게 따버렸다.
그가 사다리에 오르는 걸 혼자 두어서는 안될 것 같아 나도 따라 내려가 밭 입구에 가득한 바랭이를 캤다. 고양이가 장난하다 분지른 고추대는 거둬 고추를 따고, 토마토도 땄다. 노린재가 입질을 해서 모조리 썩어간다. 붉어진 건 내가 농사지은 것이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따다 상한 자리만 도려내고 설탕을 쳐서 오늘 아침에 먹었다.
그런데 보스코가 물까치떼 쫓는다고 기다란 대나무 장대에 비닐 독수리를 달아 올리는 광경을, 지척에 있는 이장네 감나무 위에 물까치들이 모여 구경들 하고 있다. 영악한 것들이 커다란 독수리 모습에 놀라 도망하기는커녕, “영감님. 뭐하러 수고스럽게 그 고생하세요? 우리한테 달린 게 새대가리라지만 우리도 알 것은 다 아는데" 놀리는 듯하다. 작년에 겉을 한자로 프린트한 회색 봉지로 배를 싸서 오랜만에 배수확을 보고서 피톤치드 처리했다는 그 봉지 덕이라고 믿지만 추석무렵이면 누가 새대가린지 알갰다, 사람인지 물까치인지...
땀으로 목욕을 한 터라 보스코는 물로 샤워를 하고서 허리가 아프다며 침대에 눕기에 나도 남편 곁에 누워서 옅은 노을이 낀 서쪽 하늘을 내다보니 우리집 지붕에서 나온 박쥐가 열댓 마리 떼지어 서쪽 하늘로 날아간다. 우리집 지붕 밑에 박쥐가 떼로 산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수일 전 방충망에 매달려 있던 새끼 박쥐들이 그 무리에 섞여 튼튼히 살아남기를 바랬다.
오늘은 보스코의 생일(만 82세). 7월 5일은 이사야의 생일, 오늘은 보스코, 모레 13일은 미루의 생일이니 ‘은빛나래단’에서 세 사람이 7월에 한더위에 태어나 어머니를 고생시킨 불효자들인 셈. 더구나 지난 일년은 노장 멤버(42년생) 셋 다 삶과 죽음의 다리를 오갔던 한 해였다! 설암을 앓는 데다 작년엔 패혈증으로 저승의 문을 반쯤 열고 들어갔다 반쯤 열어놓고 되돌아온 남해 형부, 장출혈에 교통사고까지 당한 보스코, 정신이 아뜩해지는데도 오늘은 거듭 화안한 미소를 보내주는 봉재언니...
귀요미 미루와 이사야 부부는 우리 은빛 인생들을 웃게 해주는 활력소다
아무튼 오늘 미루의 주선으로 사천까지 달려가서 우리 딸네들 후원으로 전원이 장수를 비는 국수(냉면)도 먹고, 작은아들이 선물한 케이크도 잘랐다. 하지만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라는 축하인사를 풀이하자면 (울 엄마 생전에 내가 입버릇처럼 말씀드린대로) "안 아프고 건강하시면 오래오래 사세요. 그대신 아프면 빨리 돌아가세요!" 라는 소리로도 들린다. 모임을 마치고 헤어지면서 데레사 언니가 "올해 안 죽으면 내년에도 잔치합시다!" 라던 축원에서 세월이 가면서 우리 작별인사도 크게 달려져감을 느꼈다.
7월 둘째 목요일이어서 저녁에는 ‘느티나무독서회’ 모임.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날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머리를 살짝 들자 둥글게 부풀어 오른 복부에 시선이 갔다. 불안하게 꿈틀거리는 다리는 여러 개였지만 몸통에 비해 비참할 정도로 가늘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혼신을 기울이던 그레고르처럼, 우리가 어느 날 아침 악몽처럼 찾아온 현실을 두고 이번 고비만 넘기면 좀더 나은 자리로 갈 수 있다는 희망조차도 무참히 짓밟힌 처지를 맞는다면?
사실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이의 ‘현실’은 그레고르 처지를 연상시킨다. 폭우 속에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물속에 잠기면서 택배 물건을 나르다 죽은 노동자에게 코웃음치는 사람들이라든가, 서민들의 삶을 다루어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을 '좌파영화'로 단정한 여자를 방송통신위원장(후보)으로 뽑는 윤정권이라든가, 가자지역 팔레스타인 아녀자들이 당하는 수만명의 대학살을 묵살하거나 두둔하는 미국과 소위 '기독교 국가들' 언론을 지켜보며 소설의 주인공이 벌레 채로 버려지자 각자 자기 갈 길을 찾아 나서는 가족들 태도를 놓고 "나의 희생이 꼭 필요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한편으로는 낮 끼니마다 식당채 뒤로 새끼들(넷을 낳았는데 요즘 둘 밖에 어미 곁에 안 보인다. 두 마리는 아비인 수컷에게 물려 죽었나보다)을 거느리고 찾아오는 어미 고양이를 보며, 어느 처지에도 자녀들에게 말없이 보내는, "나 여기 있다!"는 한 마디, 벌레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어미된 생명체들의 가장 아름다운 언어를 떠올리기도 한다.
모임을 마치고 깜깜한 산길을 빗속으로 달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이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깨달으려면 인간에서 벌레가 돼봐야 하는가?'를 혼자 되물었다.
"엄마 여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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