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일요일. 무덥고 흐림
보스코가 몇 번의 사고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본 괘도로 돌아왔는데, 이번 교통사고에서는 전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척추라는 게 골격으로 인간의 품위와 활동에 중심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고, 보스코처럼 하루하루 그 많은 시간을 의자에 앉아 보내는 사람으로서는 척추가 탈이 없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빨리 회복을 못 보고 있다. 80 평생을 지내며 운 좋게 ‘허리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앉아서 글을 써 왔으니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복이었다.
이번에 척추에서도 요추 1번이 ‘압축골절’이 되어 소위 ‘콩크리트’를 하고 3개월이 돼가지만 아직도 수시로 ‘아이구, 허리야!’가 절로 나오니 과연 그의 허리가 처음처럼 회복될지, 평생을 지병으로 안고 갈지 지켜봐야 하는 나는 마냥 안타깝다.그러나 이 동네 아짐들도 주변의 지인들도 그의 현재 모습에 격려를 보내고 완전회복을 빌어주는 성의는 고맙다. 오늘 저녁의 산보길에서도 '이엄마'가 보스코에게 (내 또래 시골 아짐들이 외간남자에게 보내는 매우 드문 제스처지만) 허그를 해주며 반기고 그의 회복을 빌어주었다. 그미는 보스코를 오라버니처럼 보는 눈길이다.
최근 몇 해 동안 보스코의 건강회복에 일등공신은 최근 5년간 주치의로서 보스코의 심장, 폐, 장출혈을 진단해내고 수술하고 치료해온 두상이 서방님이고, 그때마다 자문을 해 주고 응급조처와 입원절차와 심지어 호송까지 해주신 임실 김원장님이고, 서울에서는 수십년간 우리 부부의 한일병원 진단예약과 진찰동반 등을 해주는 블란디나씨, 지리산에서는 휴천재 아래 첫 집에 살면서 보스코 건강을 지척에서 챙겨주는 소담정 도메니카씨다.
금요일 아침에도 도메니카씨가 올라와 보스코를 보살피고 있는데 김원장님이 불쑥 찾아오셨다, 임실에서 함양 문정까지! 김원장님은 당신이 온다고 예고하면 내가 음식 장만하느라 부산스러울까 봐 연락을 일부러 안 하신단다. 정말 가까운 친구 사이에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방문 방식이겠다. 다행히 전날 손님이 숙박할 경우를 생각해서 마련했던 음식이 있어 대충 점심을 차렸지만 아니면, 라면을 끓여 나눠먹더라도 서운치 않은 사이다.
점심 후 김원장님이 한참 환담하다 가시고 다섯 시 경에는 '한길사' 김언호 사장님 전화가 왔다. 부인과 따님과 함께 함양에 와서 정여창 선생 고택을 방문 중이라며 휴천재에 들르시겠단다. 그 얘기에 이층 데크 위 테이블에 부지런히 간식상을 차렸는데, 서울 올라가는 길에 차가 밀릴 듯하다면서 다음 기회로 휴천재 방문을 미루자는 전화가 다시 와서 우리가 개평마을에 있는 일두 선생 고택으로 찾아갔다.
전에 원불교 장교무님이 그 동네에 계실 때는 자주 갔었는데 장교무님이 부산으로 떠나고 나서는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고택 앞에 열린 북카페 '지인공간'에서 일행을 만났다. 그 동네 고택들과 격에 맞게 아름다운 한옥카페로 주인의 부친 김진균 교수님은 우리나라 사회학을 군부독재하에 사회운동으로 전개한 사회인사였고, 김교수님과 친구로 지내온 김언오 사장님이 출판한 장서 100여권을 증정하여 알찬 북카페로 자리하고 있었다. 뜰에는 공연장도 있어서 언젠가 공연이 있는 날 다시 와 봐야겠다. 우리 만남에서 그곳이 외가라고 설명하는 김진균교수님의 아들로 출판인 김영진 선생도 만났다.
병곡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둘은 메밀국수로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상림숲과 연꽃밭을 거닐었다. 언제부터가 흙 길을 맨발로 걷는 거국적 건강운동이 일어난 터라 상림숲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숲 길을 걷고 있기에 나도 덩달아 신발을 벗어들었다. 좀 굵은 모래에 발바닥이 아프긴 했지만 요즘 발뒤꿈치도 무릎도 아프던 차에 지압 효과를 바라며 한참 걸었더니 걸을 만했다.
옆을 지나던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구두 신고 걷는 보스코를 불러 세우고는 신발 벗고 걸어보라고, 맨발로 열 달만 걸으면 온갖 속병, 류머티스, 온갖 암이 싸악 낫는다고 '강추'한다. 아예 따라오며 설득을 하는데 안 걷는 남자도 걸으라는 남자도 둘 다 끈질기다. 어둑한 시간 흰 연꽃과 마편초 보라색이 아우러진 상림숲에서라면 맨발이 아니어도 힐링이 절로 될 듯하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09
오늘 일요일 우리는 두 달 만에 임신부님과 공소미사를 드렸다. 우리 '셋째딸' 미루와 이사야가 봉재 언니와 임신부님을 함께 모시고 오니 가족을 만나는 기분에 포근하기만 하다. 임신부님의 정성스런 미사 집전과 따뜻하고 소박한 강론이 우리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미사 후 공소식구들이 공소 식당에 둘러앉아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으면 한 주간 피로와 노동을 위로 받는다. 각자 집에서 한 가지씩 마련해온 음식을 식탁에 펴니 겹치는 일도 없이 풍요로운 식탁이 된다. 나는 빵, 모시송편, 참외와 키위를 준비해갔다. 이렇게 한 달이 또 가고 또 왔다.
휴천재 옆 유영감님네 논 두 마지기는 올해 농사를 짓지 않고 한 해를 넘기나 싶었는데 강건너 진이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소작농으로 나섰다. 서툴게 논을 가는 모습을 보고 함양에 처음 와서 요령 없이 농사 배우느라 애쓰던 내 모습이 떠올라 시원한 캔맥주를 하나 갖다 주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그 처음의 기억이 휴천재 텃밭의 푸성귀들과 배나무들에 열린 열매에 고마운 마음을 더해 준다. 우리 배밭 농사도 해보라고 그에게 내주고 싶은데 보스코의 마음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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