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요일. 흐림
휴천재 다락방 서쪽 창문 방충망 바깥 문틀에 번번이 새앙쥐가 똥을 홈빡 싸 놓곤 했다. 요즘 하루에 한번씩 다락방에 올라가 쥐똥을 치웠는데, “쟤들이 여기 3층까지 어떻게 올라왔고 무엇을 먹고 살까? 맛난 냄새가 솔솔 나는 부엌이 따로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다 집안이 궁금해지면 혹시 창문 사이로 들어와 옷이나 책 그 밖에 가재도구를 그 작은 이빨로 갉아대는건 아닌가 걱정도 됐다. 언젠가 드물댁 천장에서 쥐들이 댄스 파티를 벌인다는 말을 듣고서 드물댁한테 쥐 잡으라고 사다 주었던 끈끈이가 마침 두 장 남았기에 창문밖 쥐똥이 잔뜩 쌓인 곳을 청소하고서 끈끈이 한 장을 스카치테이프로 붙여놓았다.
그런데 아뿔싸! 오늘 아침에 올라가 보니, 쥐는 쥔데 새앙쥐도 시궁쥐도 아닌 ‘박쥐’ 세 마리가 끈끈이에 붙어 죽어있었다! 박쥐는 모기 같은 벌레들을 잡아먹는 ‘이론동물’인데 어쩐담? 휴천재 지붕 기와 밑에 박쥐가 살고 있는 것을 이번에사 확인했다.우리집 지붕에 많은 날짐승들이 깃들어 산다는 건 알았지만 박쥐까지는 생각 못했다. 지리산에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면 어디선가 휘익휘익 나르는 박쥐를 보면서 으스스하기도 했지만. 참새와 박새등이 살고 있으니 그것들을 잡아먹으려는 응큼한 구렁이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 아침 다시 올라가 쥐똥을 발견하면 박쥐 몇 마리는 살아 있는 징후로 보고 해치지 말아야겠다.
마을 아짐들이 이른 봄부터 밭일 논일로 고생하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릴 장마철이 왔다. 가동댁이 이장과 노인회 회장을 불러놓고 “관으로부터 나오는 노인회비를 어째 안 쓰냐? 그동안 일하느라 고생한 할메들 몸 보신 시켜달라.” 닥달을 해서 어제 점심 동강횟집에서 오리고기를 먹는다는 새마을방송이 울렸다. 보스코는 전날 먹은 만둣국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는지 속이 안 좋다며 나만 다녀오라 했다. 가급적 마을 모임에 참석키로 작정하고 있었기에 혼자서라도 동강횟집으로 갔다. 할매들 모두가 보스코를 좋아하던 터라, 교통사고를 당한 보스코를 걱정하던 참에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저녁산보에 나서는 그의 모습을 대견해 하며 그의 투병에 대해 치하가 크다.
문하마을 여자들 22명이 참석했는데 남자는 겨우 3명이 참석! 남정네가 어느 새 희소가치있는 귀물(貴物)이 된 터라 한 명이라도 아쉬운 게 시골이다. 오리불고기, 녹두죽, 김치와 오리고기 볶음밥이 차례로 나왔다. ‘이빨도 시원치 않고 입맛도 없다’고 푸념하던 안노인들이 나오는 접시마다 족족 해치운다. 저런 힘으로 그 힘든 논일 밭일을 해냈으려니....
휴천재 데크공사를 한 경희공방 사장님이 큰비 뒤 데크에 이상 없나 들러보러 왔다. 미국여행에서 어제 돌아왔다면서 빗속에도 공사현장을 와보다니 성실한 성품이 돋보인다. 지붕 물받이 홈통의 밑바닥이 아예 떨어져 나간 걸 몰라서 큰비가 쏟아지자 문제가 커졌다. 20년전 차사장이 홈통을 설치하면서 “시골이라 수리가 어려울 테니 한번 돈이 들어도 좋은 것으로 하라”고 청동으로 해주었는데, 20년이 지나도 그 파이프들은 멀쩡하다. 그래서 집을 짓든 수리하든 좋은 업자를 만나는 건 큰 행운이다.
우리 동네 한길 옆에 언제부턴가 국악을 가르치며 점을 친다는 사람이 산다. 바로 그 점술사가 어제 회식 때 내 옆자리에 앉았다. 장난 삼아 “점집을 열고 보니 할만 해요? 내 사주가 보여요?” 물으니 자기는 점 보는 경지를 넘어섰고, 점은 자기 집사람이 본단다. 하얀 상하복에 백구두를 신고 왔던 그는 가동댁에게 “어째 다들 신벗고 들어오는 식당마루에 구두를 신고 들어왔소?”라는 핀잔에 얼른 백구두를 의자 밑에 숨겼다.
손바닥에 임금 王자를 쓰고 다니다 임금으로 뽑히기라도 한듯 혹세무민하는 윤가나, “용산에 내가 용의 꼬리를 깔고 앉아 기다리니 빨리 이곳으로 들어오라”는 무술인의 얘기를 듣고 청와대를 옮겼다는 미신의 시대를 살아가느라 상식대로 사는 사람들은 가슴이 답답할 게다.
20 몇년 전 일이다. 지인의 차를 타고 가다 도가철학을 하고 주역을 공부했다는 그 분이 내게 물어와 우리 부부와 두 아들의 생년월일을 알려준 일 있다. 그분의 주역풀이에 의하면, 큰아들의 사주는 "역마직성(驛馬直星)"으로 나왔다. 작은아들에게는 "손(孫)이 없네요."라고 했다. 지금 보니 큰아들이 '굿네이버스' 라는 외원 단체에 몸담아 전세계 난민 지역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삶을 살아가는 활동이나 작은아들이 수도사제로 살아가는 독신생활을 미리 짐작해낸 사주풀이로 보인다.
우리 부부를 두고서는, 아내는 끝없이 솟아나는 샘이고(그래서 퍼내지 않으면 상한단다) 남편은 그 샘물에 뿌리 하나를 처억 담그고서 만고강산(萬古江山)으로 살아가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갈 난초라고 풀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벌써 4반세기 전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