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3일 일요일 맑았다 흐렸다

 

엊그제 저녁기도 시간에 이층서재로 올라온 진이엄마가 하던 말. "뭐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전에도 온 적이 있는 사람 같아서 인사를 했더니 본척만척 먼산보기를 하더니만 딴 사람들에게도 자기 얘기만 하더군요."  평소에 좀처럼 노여워하지 않는 진이엄마가 어지간히 마음을 상한 것 같다. 그 사람 그런그런 점도 있지만 이런이런 점도 있다고 변명하면서 동의를 구하는데 한 참 애를 먹었다.

 

나는 20년 가까이 그 사람을 안다. 남의 눈이나 말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섬세하게 남을 살피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이번에도 그가 어딜 가겠다고 하길래 누가 나도 함께 가느냐고 묻자 대뜸 "전선생이 우리하고 함께 갈만큼 그렇게 친해?"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일박이일 동안 그래도 정성으로 대접한 사람이 "또 오셔요." 하니까 하는 말.  "이젠 안 와요. 그렇게 깔끔을 떠니 불편해서 어디 오겠어요?" 이런 식으로 주변사람들에게 앙금으로 남은 그의 어록은 무궁하다.

 

그래서 그의 말투를 보면, 사람이 꼭 칼을 손에 만 드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칼을 입에 물고도 자유자재로 남에게 칼질을 해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더구나 혀라는 이 칼을 휘두르는데는 힘도 들지 않고 남의 심장을 내 멋대로 저며댈 수 있지 않던가? 내 자신도 때때로 혀칼로 끔찍하게 칼질을 하다가 스스로 아연할 때가 자주 있다. 보스코의 지적을 받을 적마다 부끄러워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는 적이 한두번 아니다. 

 

하루 종일 부은 다리를 끌고 끙끙대는데 뒷집에서 머우대를 끊어가지고 와서 약재로 내놓았다. 그리고는 내 다리를 침으로 콕콕 쪼아서 피를 한 되박은 나오게 부황을 떠주고 갔다. 피를 뽑히고서 시원하다는 말을 했다. 고맙다고도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덕분에 가려움증이 덜하고 붓기도 멈춘 것 같다. 새벽 공소예절중 어찌나 가려운지 내내 다리를 문지르다 보스코의 눈총을 실컷 받기도 했는데...

 

다리에 구멍을 실컷 내놓고서 그 위에다 머우대즙을 바르기는 겁이 났다. 그래서 뒷집에서 약이라고 가져온 머우대를 볶아 나물무쳐 점심때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