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30일 일요일. 가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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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꼭두새벽부터 책상에서 책과 씨름하는 보스코를 텃밭으로 불러냈다. 노린재 트랩을 설치하려면 쇠기둥을 박아야 하는데 그 기둥이 영 성에 차지 않는다, 낮고 가늘고. 작년에 설치했던 노린재 트랩을 겨우내 텃밭 창고('미루네집')에 보관하려면 자루 안에 잡혀 죽은 노린재나 버리고 창고에 넣어 둘 일이지... 남자들은 여자가 생각해내고서 말로 시켜야 겨우 그 일을 해낼까 말까 한다. 집안일 치고 미리 생각해서 자발적으로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내 남편에게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씩씩하게 가지를 뻗어 올리던 오이 덩쿨이 어제 보니 진딧물로 초토화 됐다. 밭에 개미굴이 있으면 진딧물을 물어 날라 오이 넝쿨 전체가 저렇게 시들고 가뭄에는 그 피해가 더 크다. 게다가 노린재까지 붙어 즙액을 빨아 먹으면 잎도 오이도 기형으로 오그라든다. 진작 노린재 트랩을 설치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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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피일 날짜만 보내고 망가진 오이 줄기를 망연하게 바라본다.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빠른 시간!’ 오이밭에 진딧물 약을 뿌리고 토마토 잎 사이에 순을 치고 고추도 올려서 한 줄 더 묶어 주었다. 가지는 밑둥에 나오는 잔 싹들을 모조리 잘라 주었다.


보스코는 자두나무와 배나무에 쓸모없이 도장지로 자란 가지들을 전동가위로 쳐준다. 밭에 나가 노린재 트랩 매달 기둥 세개만 박아 달라 부탁했지만, 나도 그도 일단 밭에 나오면 두세 시간이 후딱 간다. 우리는 그렇게 얼굴이 빨개져서 아침도 먹기 전에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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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11시에 읍내에 있는 튼튼정형외과엘 갔다. 일주일 만이다. 아침에도 통증이 여전한 보스코는 허리를 치료하는데 의사 선생의 가까운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아 거리상으로 먼 남원 대신 함양을 택했다.


병원에서 노재화 목사님 부부를 만났다. 보스코가 아파 내가 보호자로 따라갔듯이, 아내 여목사님의 어깨 수술과 후속치료에 보호자로 남편 노목사님이 따라 온 것을 보니 신선했다. 나는 맹장수술 할 때도 백내장 수술 할 때도 나 혼자 운전해 오가며 입원하고 수술받고 치료를 받았기에 저 부부는 마치 신인류(新人類)를 보는 듯 신기했다. “다들 나같이 하는 것 아니었나?” 의심이 들기도. 부부목사님은 가난 속에서도 시골 목회와 환경운동에 올인하며 '지리산종교연대'를 이끌어가고 있어 그 삶이 참 고고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12시가 넘자 비가 후두둑 내리기 시작하더니 집중 오후로 변하여 오후 내내, 이어서 밤새도록 퍼부었다. 하도 오랫동안 비 온다는 예보와 불발 사이에서 불신만 키워오던 참이었는데 드뎌 비 다운 비가 풍성하게 쏟아진다. 여름장마가 시작됐다는 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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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경 아래층 식당채에 내려가니 안채로 이어진 식당채 입구에 비가 샌다. 흥부네 지붕처럼 주룩주룩 샌다. 식당채 건축 후 큰비를 여러 번 맞고도 새는 걸 못 보았는데... 새 집 지붕에 설치한 홈통에서 동쪽만 청소하고 서쪽을 안 했는데 지붕의 쓰레기와 흙먼지가 쌓여 물길이 막히고 막힌 물길에 갇힌 물이 집안으로 새내려간 거다. 비를 맞으며 지붕 위 홈통을 청소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비였던가! 박사장이 공사한 자리도 큰비에 몇 군데 작은 하자를 보여준다. 집짓거나 고칠 땐 큰비가 와야 공사가 얼마나 완벽했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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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도록 빗소리를 들으며 김민환 작가의 장편소설 등대』(솔출판사, 2024)를 읽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소설을 읽는 기분은 노년의 여유이자 낭만이다. 역사의 폭우 속에 흔들리는 소안도민중들의 모습이 세찬 빗속에 흠뻑 젖은 모습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보스코의 복음단상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15

오늘 연중 제13주일베드로 성인 축일교황주일’로 지냈. 우리 본당신부님 세례명이 '베드로'여서 본당교우들이 축하를 걸게 해드린다. 처자식 없이 평생을 교회를 위해서 사니 그만한 인사를 받을 만하다. 빵고 신부의 영명 축일은 56(도메니코 사비오). 영명축일 축하한다고 맨입으로 말하면 새벽미사 때 형제들과 미사드리며 축하받았어요. 나 바빠서 끊어요.’ 그래서 수도회 신부다. 내년에는 어미인 나라도 아들 영명축일에 신경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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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미사가 끝나고 스.선생님과 마천 교우팀이 점심을 함께 하러 인월로 가는 길가의 만두집에 갔다. 보스코는 스.선생님 차로 가고 체칠리아는 내 차로 슈퍼에 함께 들렀다. 장마가 길어지면 과일이 값은 올라가고 맛은 떨어지니 미리 사서 저온창고에 넣어두면 장마가 끝날 때까지, 장마 후에도 신선하고 싼 과일을 먹을 수 있다. 도시보다 불편하고 문화 혜택은 떨어지지만 그 밖에 많은 혜택이 있다


집에 와서 보스코는 과일나무에 유박비료를 뿌려줘 생기를 돕고 나는 친환경 EM을 물에 타서 채소와 배나무에 뿌려주었다. 오늘로 2024년 절반 6월이 다 갔다.


비가 많이 내려 휴천강 물이 엄청 불었다. 하기야 우리가 지리산에 처음 왔던 1994년에는 평상시에도 지금의 홍수진 저 물보다 수량이 많았는데... 그 많던 강물은 어디로 갔을까? 아무도 대답을 모른다. 심층수를 뽑아내어 음료로 팔고 비닐 농사에 물을 마구 뽑아 쓴 결과라는 말도 있고.... 울 엄마도 평생 ‘물도 있을 때 아껴라하셨는데 노인이 하는 말은 거의 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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