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3 일요일. 비 개이고 맑은 날씨 


[크기변환]IMG_9279.JPG


보스코가 요며칠 밤새 잠을 안 자고 한길사에서 보내온 고백록의 교정쇄를 다듬고 있다. 자기 저서의 발간에 완벽을 기하는 성미여서 (그래서 2004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번역 주해로 서우철학상’, 재작년엔 아우구스티누스의 삼위일체론의 번역 주해로 가톨릭학술상이 주어졌겠지만), 억지로 자라고 하더라도, 전등을 켜고서 명상에 떠오른 단상들을 메모하니까 일이 있으면 아예 잠을 못 이루는 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대입 수험생이 저렇게 밤 새워서 공부 한다면 엄마야 뿌듯하겠지만, 80노인이 밤을 꼬박 새우며 책상을 지키면 아내는 애간장이 탄다.


그의 행동을 보면 요즘 두어 달 허리 아팠다는 게 거짓말 같다. 의자에 10여분만 앉아 있어도 허리 통증이 되살아나 집안 복도를 서성이면서 허리를 풀어야 했었다. 아무튼 금요일 아침에, 고백록 전반부(1~10) 초교쇄 손질을 끝내고 포장하여 내게 건네면서, 출판사에 등기로 보내달라는 말로 그의 작업은 마감됐다


혹시 포장을 뜯어 다시 확인해야겠다는 말이 나올까 봐 나는 9시 우체국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찾아가 얼른 부쳐버렸다며칠내 고백록에서도 어렵고 사변적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 사상을 담은 후반부(11~13) 초교쇄가 도착할 게고 밤패는 몇날이 또 오겠지.


[크기변환]IMG_9259.JPG

작은 알의 절반만큼도 안 되던 씨감자가 이렇게 많은 햇감자를 냈으니

[크기변환]IMG_9263.JPG


[크기변환]IMG_9271.JPG


그제는 날이 제일 길고 더운 하지(夏至)였으니 하지감자라 이름이 붙은 텃밭 감자를 캤다. 그토록 가물던 한 달이 지나고 이틀 후면 장마가 시작한다니 그 틈새에 했다. 장마를 지나면서 하지감자들이 땅속에서 썩기 시작하는 까닭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여름 내내 가물고 장마는 초겨울에야 닥치므로 늦가을까지 감자를 밭에 심어 둔채로 조금씩 캐다 먹는 광경을 보았다.)


금년에는 나 혼자 심었고 드물댁과 감자는 함께 캤다. 콘테이너 박스로 4개가 나왔다. 작년에 같은 양의 감자씨를 심어서 12박스를 거뒀는데... 올해는 늦게 심고, 날은 가물고, 감자 순 나올 때 비닐멀칭 밖으로 싹을 꺼내주지 않아서 감자 농사는 망칠 게 뻔했다. 더구나 보스코의 교통사고 입원으로 감자밭 신경을 전혀 못 쓴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크기변환]IMG_9283.JPG


다리는 아프지요, 보스코도 못 도와주는데 캐낸 감자를 창고까지 실어 올릴 고생이 줄자, 감자밭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심으론 되레 고마웠다. ‘운림원영숙씨가 벌 농사로 바빠 죽겠는데, 돈도 안 되는 배 농사를 지으려니 너무 힘들고 싫더란다. 그러던 중 지난 3월에 서리가 내려 배꽃이 싹 떨어져 버렸는데, 배나무에게는 미안했지만, 속으로는 고맙더라나? 이해가 간다.


금요일 저녁에는 티라미수(tira-mi-su: ’기분 좋게 나를 북돋는음식)를 만들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에도 구체적인 이름을 붙인다. 짤막하고 가느다랗게 손바닥으로 빚어 치즈와 푸른 콩깍지 등으로 맵게 익히는 국수에 스트로짜프레티(strozzapreti: ‘신부들 목을 졸라라!’)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교황국에 반발하던 볼로냐 일대의 음식이니 쌀국수를 빚으며 본당신부들 목졸라 죽이고 싶은 욕심이 생겼나 보다. 티라미수는, 지난번 귀국길에 빵기가 마스카르포네를 사와서 읍내에서 사온 카스테라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다.


토요일에는 읍내 병원엘 갔다. 보스코 허리 수술 결과를 확인하려고, 또 내가 엊그제 3층 다락을 정리하며 무거운 짐들을 끌고서 층계를 내려오다 !‘ 하고 접지른 내 무릎을 치료받기 위해서였다. 친절한 튼튼정형외과 의원의사는 보스코의 허리를 자세히 찍어 수술 결과가 좋다면서 허리 통증에는 물리치료와 진통제 처방을 해 주었다. 내게도 엑스레이 촬영과 물리치료를 해주며 한 주간 후에 보잔다.


CASA DI BOSCO 그리고 '빵기네집' 

[크기변환]20240621_193615.jpg


어제 저녁나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세 여인이 휴천재 옆을 지나 올라가다 !, 빵기네 집이네?”라고 한다. 식당채 앞에서 꽃을 만지고 있던 참이라 그 말이 들렸다. “, 맞아요. ’빵기네집지리산 휴천재예요.”라고 알은 체를 했더니, 하나가 “, 선생님 페친 산청의 홍바울라예요.”라고 인사를 한다. 내 칠순 잔치에도 참석한 구면인데... 나이가 드니 내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반가워 차라도 들고 가라니까 윗동네에 일행이 있단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17)

오늘 주일 아침 공소예절에 홍바울라씨와 친구가 내려왔기에 예절이 끝나고 그미를 따라 문상에 올라갔다 아침까지 얻어먹었다. 말처럼 밥상에 숟갈 하나 얹어올갱이국에 시골인심으로 대접받았다. 푸짐한 시골밥상이었다.


[크기변환]20240623_090245.jpg


[크기변환]20240623_081724.jpg


어제 가랑비가 오후부터는 장마비로 쏟아졌다. 읍내 사람들도 비 하나 자알~ 온다!” 고하니 오래 기다린 반가움이다. 휴천재 입구에 쏟아져내린 능소화 꽃잎 등을 아침에 깨끗이 쓸고 장마를 준비한 터. 보스코는 어제 튼튼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진통제 덕분인지 오늘 아침나절 마당의 시든 장미들의 무성한 덩쿨을 쳐냈다


[크기변환]20240623_132424.jpg


지리산을 온통 덮은 비구름을 건너다 보며, 내일 할 일이 또 있겠지만, 아침기도에 낭독한 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라는 예수님 말씀(마태 6,34)이 반가웠다. 하루 종일 방방 뛰는 주부에게는 참 적절한 교훈 같다. 좀 쉽게 풀이한다면 어제는 하느님 자비에 맡기고 내일은 하느님 섭리에 맡기고서” 주어진 오늘만 충실히 채워가라는 얘기겠다.


휴천재의 측우기 

[크기변환]20240622_17565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