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일요일. 맑음
여자들의 만남을 ‘수다를 떤다’고들한다. 그런데 이 ‘수다’가 얼마나 여자들을 건강하게 만드는지 모른다. 실제 만나는 목적은 적당히 치르고나서, 각자가 가슴에 담아 놓고 얘기하지 못했던 허-스토리를 털어놓는 재미는 즐거운 고해(告解: 말로 푸는) 성사가 된다.
그미의 시아버지는 자기가 갓 시집 와서부터 어지간히 까탈스러워 그 스트레스로 잠을 이를 수도 없더란다. 잠들기 위해서는, 남편이 박스로 사다 놓은 소주를 하루에 한 병씩 축내야 했는데 그걸 아무도 눈치 못 채더란다. 시아버지는 자기가 설거지하는 물소리도 못 참으시는 등, 며느리가 하는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탈 잡고 못마땅해 하시더란다.
하루는 제사 음식을 다 마련했는데 어찌나 타박이 심한지 시아버지 앞에서 해 놓은 음식을 싹 쏟아버리고 집을 나왔단다. 친정도, 친구도, 남편도 다 싫어 자기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단다!
서너 달 후 짐 정리를 하러 시집으로 들어갔더니 시아버지가 불러서 “그만하면 됐다. 이젠 어디 가지 말아라.” 하시더니 며느리더러 운전면허를 따게 하시고 차도 사주시며 어디 가시려면 꼭 자기를 불러 운전을 시켜 시아버지의 모든 모임에 의도치 않게 수행하게 됐단다. 그때부터 시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시집살이를 했다나?
그게 몇 해 안 가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시어머님을 모신 게 40년! 90을넘기신 어머니를 모시다 며느리인 자기가 아파서 드러눕자 시동생이 모셔갔는데 얼마 뒤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렸고 거기서 두 달 만에 돌아가시더란다. “그럴 줄 알았으면 내 몸이 아파도 집에서 모실 걸...” 후회가 크더란다.
이번엔 친정엄마! 홀로 계신 엄마가 밤늦게까지 밭일을 하시고, 늦은 밤 홀로 부엌일하시는 모습을 CCTV로 지켜보는 게 너무 안타까워 여동생들에게 돌아가며 모시게 했더니 두 달 만에 그들의 불평불만이 심해서 자기 집으로 모셔왔단다. 이번엔 엄마가 “가까운 내 집 두고 사위한테 신세지며 왜 내 집 못 가게 하냐?”고 서운해 하시는데 어찌할까 모르겠단다. 얘기를 들은 우리는 일제히 “엄마가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는 게 효도다. 당신 집에 혼자라도 계시게 하라.”고 조언했다.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에게 짐이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여자들 모두 지금부터 궁리하고 연구하고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도정 사는 친구가 딸에게 “우리 부부가 늙으면 (두 딸 중) 어디로 갈까?” 했더니 “엄마도 할머니처럼 저렇게 오래 살라꼬?” 하더란다. 아무리 모녀 사이 얘기지만 ‘디게 기분 나쁜’ 대꾸더라나?
하기야 요즘 젊은이들에게 ‘부모가 살아있어도 될 나이가 63세’라는 각박한 조사가 나왔다는데? 자기들 낳아 키워주고 공부시키고 시집장가갈 해까지만 살아주십사는 주문 같다. 그렇담 100세 시대 부모의 40년은 '잉여 생존'이겠고 자녀들의 부담없고 행복한 삶에 얼마나 짐스러운 노친네들로 보이겠는가! 우리 일행은 "그래, 애들에게 짐 지우지 말고 우리끼리 재밌게 살자!"로 다짐은 했는데....
토요일 새벽. 소담정 감자 캐는 날. 5시 30분에 내려갔는데 도정 체칠리아 부부도 6시에 내려왔다. 구장네 감자밭은 한남댁 혼자서 어제 오후부터 캐기 시작한 감자를 오늘 아침에 박스로 크기대로 나눠 정리한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묵묵히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혼자된 이웃 동호댁이 참을 내와서 허리를 펴고 사람 냄새를 맡는다.
그래도 소담정 도메니카는 놉이 셋이나 자원하여 1시 이전에 감자 추수가 다 끝냈다. 본인은 일년내 한 박스도 안 먹는데 스무 박스 넘는 감자는 모두 나눠주기 위해서 저렇게 거창하게 감자 농사를 짓는다.
점심 먹으러(놉꾼 전순란은 남편까지 데리고) 엄천식당에 들어서자 시원한 식혜가 더위를 식혀준다. 귀촌한 우리가 농사짓는 것은 ‘소일꺼리’라지만 갈수록 힘에 부쳐 나도 양을 줄여나가야겠다. 아무튼 땡볕에 감자 캐기는 갈수록 힘이 든다.
어제 오후는 올해 첫 번 말렸던 민트잎을 작두질해서 그늘에 말리고, 마지막 햇볕을 쏘이고, 포장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텃밭에서 민트를 보기만 하면 착실히 차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그 정열도 식었다. 대신 무차나 작두콩차를 만든다.
오늘은 6월 세번째 주일이어서 본당신부님이 공소미사를 오셨다. 신부님은 강론에서 “공짜는 없다! 쉬이 들어오면 쉬이 나간다. 공들여 힘들게 일궈낸 것만 진짜 내 것이다. 힘들여 얻어진 것만이 귀하게 여겨져 고이 간직하게 된다.” 하셨다. 인생을 최선을 다해 정성껏 살자는 훈계였다. 자기 손으로 농사지어본 사람들이 곡식이나 채소나 과일의 값어치를 피부로 깨닫는다.
미사가 끝나고 오랫동안 해오던 아가페 나눔은, 본당신부님이 공소신자들에게 부담이 될 테니 일년에 두 번만 하자는 제안을 하신 터였다. 그날 참석 안 했던 스.선생이 맥주(딸네가 생산하는 수제 맥주)를 어름에 쟁여 짊어지고 왔는데, 그냥 되가져가려니 어찌나 서운해하던지, 여덟 명 교우가 우리집으로 올라와 ‘벙개팅 저녁’을 했다. 보스코의 허리 사고로 손님 대접에 소홀하던 참이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오늘 몸 좀 풀었다. 이웃과의 만남과 나눔은 언제라도 기분 좋은 일이다.
아, 감자 캐는 모습과 캐어놓은 사진 넘 좋아 복사해가도 되죠?
저희도 곧 수확해야하는 때 시원찮아도 제 손 하나 더해야겠습니다.
더워지는 날씨 대사님 얼론 쾌복하시고 사모님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