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9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새벽. 밤새 잠 못 이루던 보스코가 3시가 넘어 잠들었다. 요즘은 사흘에 한번씩 이런다. 낮잠이라도 자고서 이러면 좋겠는데 낮잠도 못 잔다.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며, 죽으면 영원히 잘 테니까 살아 있는 시간이 아까워 잠을 못 이루나 보다.
나는 살짝 일어나 뒷계단에 오일스텐을 칠했다. 오일스텐 칠한 위에 페인트를 칠하면 별문제가 없는데, 페인트칠 위에 오일스텐을 칠하면 잘 먹지 않아 얼룩덜룩 색이 떠서 보기에 곱지 않다. 그래도 박사장이 놓고 간 공짜니까 칠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계단 전부를 한번 칠하고 칠이 남기에 거친 부분은 한번씩 더 칠했다. 뒷계단을 자기 집처럼 오르내리던 고양이들이 어떻게 알고 계단에 가까이 오지 않는다. 확실히 영물이다.
제라늄을 손질하고 마당에 아직 남겨두었던 천리향과 포인세티아의 분갈이를 했다. 제라늄이 올여름에는 밖에서 너무 잘 자라고 꽃은 화려해 자르고 분갈이하기가 아까워 위에 흙만 좀 바꿔주고 거름만 넣어주었다. 포인세티아 붉은 잎은 따내고 거름 흙으로 채웠다. 지난 해 3천원 짜리 화분이 이렇게 여름 한 철 잘 키우면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꽃집에서 만오천원 짜리 포인세티아가 된다. 가격을 떠나, 나랑 같이 보낸 시간이 대견하고 고맙다.
그제 제10회 ‘성심어울림축제’(산청 성심원 개원 65주년 기념)가 있어 참석했다. 실은 전날부터 이어지는 축제였는데 보스코의 건강상태를 이유로 참석을 안 했다, 미루만 대표로 가고. 어제는 미루네도 임신부님 오누이까지 선약이 있어 빠지기에 우리 둘이 ‘은빛나래단’을 대표한 셈이다. ‘지리산종교연대’의 소위 ‘비쥬얼 합창단’이 공연 중에 무대에 나가 '지리산'과 '모두가 꽃이야'를 불렀다.
합창단 본 이름은 ‘길동무’ 합창단인데 노래는 되게 못하고 스님, 수녀님과 수사님, 교무님, 목사님이 함께 무대에 서는 그림만으로 갈채를 받는다(아마도 세계 유일한 종교간 환경운동 단체일 게다). “노래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들어야 은혜롭다”는 노재화 목사님 변명까지 깃들어 청중의 ‘따뜻한’ 박수를 받았다. 물론 이날의 주인공은 80년대부터 활약해온 보컬 '동물원'이었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오신 오상선 신부님(전전임원장)과 반갑게 인사하고 강릉에 가서 십여년 ‘장애우 각집에서 살기’ 활동을 전개하다 성심원 원장으로 돌아오신 엄수사님 등 반가운 이들이 많았다. 올리베타노 아빠스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제도 어제도 아침 일찍 보스코가 배봉지를 싸러 내려간다. 나는 배봉지 싸는 일에 손을 보태면서 텃밭 고추나무에서 잎을 솎아다 점심에 나물로 먹었다. 보스코의 어림짐작으로는 금년에도 한 500장 쌀 것 같다는데, 그 중 절반이라도(물까치떼가 봐주면) 온전히 익으면 풍년이 될 게다.
어제 오후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새로 만든 테라스에 내리는 비는 깨끗하고 상큼하다. 난간으로 비 내리는 산이 보이는 풍경은 정말 싱그럽다. 텃밭 감자도, 마당의 잔디도 하도 가문 날씨에 애탔었는데, 비에 촉촉이 젖은 흙에다 자리를 찾아 이쪽저쪽으로 꽃들을 옮겨심으니 산속에서 꽃과 사는 생활이 여유로운 기쁨을 준다.
배나무밭 옆에 체리나무 네 그루를 심었는데 5년이 지난 금년에 단 한 개가 익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임보 시인이 보내주신 시집 『월주국月舟國』(건강신문사 2024)을 읽었다. 「폐농廢農」이라는 거창한 제목에 시인의 유모어가 담겨 옮겨본다. 쉽고 짧고 독자가 알아먹는 시를 쓰자는, ‘우리詩 운동’을 채희문 시인과 전개하시면서 우리 부부의 45년 우이동 계곡의 삶에 맑은 샘물을 마시게 해주시는 분이다.
금년 들어/ 농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허리도 아프고/ 걸음도 시원치 않아
구청으로부터 임대 받은 / 세 평의 밭에
씨 뿌리고 가꾸는 일을 / 그만 멈추기로 했다
이번 여름엔
상추며 가지며 고추며/싱싱한 푸성귀 먹기는
다 글렀다!
오늘 주일 공소 예절에는 식구가 겨우 4명. 목자가 삯꾼을 하며 마치 양을 다 잡아먹었거나 양들이 흩어진 목장 같달까? 주님이 오시면 많은 꾸중을 듣겠다. 비록 글을 못 읽지만 동네에서 세례 받은 할머니 여섯 분을 도대체 나 몰라라 하는 분위기도 안타깝다.
오늘 오후 내내 지난번 서울 가는 길에 남대문에서 사온 보스코의 옷들을 고쳤다. 팔은 잘라서 박고, 바지는 단을 줄였다. 짜리몽땅한 남편을 만나 50년 내내 해온 일이다.
강 건너 장로님 댁 쪽으로 저녁 산보를 하다 우리가 잘 아는 처자의 병상 소식을 들었다. 54세의 나이에 대학 3학년, 고3 딸을 둔 엄마인데 췌장암 수술 6개월만에 재발하여 간, 폐, 임파선까지 전이 됐고 혈번이 멈추지 않아 수혈 중이란다. 로사리오 기도로 크리스티나를 성모님께 간절히 부탁드렸다.
호천이가 엄마 3년상을 맞아 추도예배 올린다고 전화를 했다. 2021년 6월 9일 우리 부부와 호천네 부부 넷이서 엄마 임종을 지켜서 이날이 더 애틋하다. 오빠는 엄마 무덤(부모님 무덤)에 가서 예배를 보고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먹자지만 엽렵한 둘째네 부부는 그럴 수 없다고 자기 집에서 추도예배를 보고 저녁대접을 하는 참이란다. 오로지 둘째 올케의 순하고 착한 심성에서나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올케가 고맙다. 엄마 돌아가신지 벌써 3년 되는 밤이어서 엄마가 몹시 보고 싶다. “엄마! 그곳에선 평안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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