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6일 목요일. 맑음


일꾼들이 집일을 하고 나면 그 두 배의 잔일이 주인을 기다린다. 박사장이 내 부탁대로 3층 올라가는 바깥계단의 망가진 난간과 층계 일부를 뜯어내고 고친 자리엔 오일스텐까지 칠하고 나니 층계 나머지 부분이 어디선가 꼬까신은 얻어 신었는데 몸에 걸친 것은 누더기처럼 보인다. 우선 오늘은 3층부터 층계 구석구석 빗자루질을 했고 솔로 박박 문질러 물청소를 했다. 한 이틀 바짝 말린 뒤 오일스텐을 바르면 3년은 그런대로 쓸 만하다. 나도 이만큼 늙은 터에 내 주변에 낡은 것들을 무시하지 말고 어르고 달래고 잘 고쳐서 가능한 한 잘 지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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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농사도 내 힘만으로는 부치니 올 가을부턴 텃밭 절반은 드물댁에게 나눠주어 심고 싶은 것을 심고 거두게 하고, 나는 평소의 절반만 심고 가꿀 생각이다. 내 딸들이 이구동성으로 호소하는 일이다. 가을배추와 무농사도 우리 먹을 분량이나 심고 거두어, 지인들에게 김장해주던 일도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접어야겠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그이들도 크게 서운해하지는 않으려니 한다.


이웃에 사는 친구는 시어머니가 80이 넘어서도 온갖 반찬을 골고루 해서 보내셨고 모든 김장도 도맡아 해오셨는데 그 일을 못하시게 되자 난 재미로 해왔는데 한 재미를 잃었구나.”하시더란다. 가만히 새겨보니 맞는 말씀이다. 받는 사람이야 고맙겠지만, 해보내는 사람 또한 그 재미가 여간 아니다. 다만 모든 게 과하면 병이 되니까 여기까지다할 때 앞당겨 손을 놓아야 할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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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창원법원 거창지원에 볼 일이 있었다. 살면서 송사에 휘말릴 일 없이 무난하게 지내왔는데 지리산에 와서 검찰청이나 법원에 가기는 세 번째다. 두 번은 환경운동하며 발생한 마찰로 (서울 살 적에도 지구를 지키는 불사신을 자처하며 환경운동으로 검경에 여러 번 드나들었다. 그 시절의 동지 말남씨가 그립다.) 검찰에 고발인으로 갔었다.


거창지원의 첫 번 조사는 환경보존의 소임을 소홀히 하던 공무원을 혼내주는 조사였는데 검사의 대질심문이 하도 어리숙해 보스코가 철학교수답게 작심하고 검사를 집중교육시키다 시피했다. 두번째는 진주시와 사천시의 상수원인 휴천강 가에 공장을 짓겠다는 마을 사람과 충돌이 발생하자, 심한 반발이 나오고 보스코와 동갑내기 영감이 보스코에게 상해까지 입혀 법적 시비가 붙었다. 피고가 벌금형을 받자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른 데서도 그렇지만 특히 시골에서는 일단 쌈이 벌어지면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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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울타리에 핑크색 덩쿨 장미가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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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법정에 들어가 판결을 받는 재판이었는데 우리가 이곳을 떠날 적에 휴천재 건물과 부속 토지를 더 유익하게 사용할 이들에게 넘겨주는데 하자 없게 하려는 명도 소송' 문제였다. 정식 재판에 가지 않고 제소 전 화해를 확정받는 자리여선지 10분도 안 되어 "그럼, 명도 소송 제소 전 화해로 통보해 드리죠." 하는 젊은 판사의 선고를 듣고 나왔다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는 말씀도 있지만, 이번처럼 내가 원고이더라도 정식 재판까지 안 가고 '제소 전 화해' 형식을 택하는 일은 인간적으로도 현명하고 또 신앙인다운 처신이겠다, 더구나 지인들 사이라면. 우리가 이곳을 떠날 날짜야 언제일지 모르지만, 죽음이 그렇듯이, 머지않아 그날은 결국 올 테고 이 집을 두고두고 사용할 이들이 있다면 우리야 마음 훌훌 털고 가면 되리라.


목요일 아침. 하지가 가까워지니 5시가 안 돼도 세상이 환하다. 그젯밤을 설치더니 보스코는 새벽잠에 깊이 빠져 있다. 그에게 들키면 "아침부터 웬 수선이냐?"고 일을 말릴 테니 도둑고양이처럼 살짝 빠져나가야 한다. 조용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서재 뒷계단을 청소했다. 박사장이 오일스텐을 주고 가서 계단에 칠을 하려는데 외부 계단이라 너무 더럽다. 나무 층계라 3년에 한번씩 하는 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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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쯤 박사장이 와서 데크 공사 최종 마무리를 했다. 조명등을 단 기둥이 너무 높아서재에서 앞산을 내다보는 시야가 방해받는다는 보스코의 주문으로 기둥을 깎아내리고, 데크 청소용 수도꼭지도 하나 설치해 주었다.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해주는 마음씨가 계속 그를 부르게 한다. 고마워서 마카로니로 점심을 대접해 주었다.


겨울을 나고 데크 밑으로 밀려나왔다가 데크 공사 중 정자 앞으로 자리를 비웠던 화분들을 손질하고 거름 흙도 갈아주면서 제자리로 옮겼다. 제라니움은 땅 힘을 받아 한창 꽃을 피우고, 포인세티아는 요즘 분갈이와 가지 정리를 해야 크리스마스에 빛을 본다. 데크밑에서 자라던 민트는 베어서 씻어다 이층에 걸었다. 마르면 겨울 감기에 좋은 민트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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