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4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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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전날밤 내가 보스코의 발톱을 깎아주다가(허리 부상으로 몸을 굽혀 구두끈을 묶는다든가 양말을 신는다든가 발톱을 깎는 일이 힘들다) 가운데 발가락이 손톱깎이에 물려 약간 상처가 났다. 피가 흘러나오자 그가 수년간 복용하고 있는 와파린 때문인지 지혈이 안 된다. 응급조처를 하고서 잠들었는데 새벽에 발가락 끝을 소독해 준다고 거즈를 뜯어내자 멈췄던 피가 다시 흘러나왔다. 심장 스턴트 이후로 아스피린, 폐암 수술 후 와파린을 장기 복용하는 중이므로 모든 수술과 치료에 반드시 이 두 약이 거론되고 수일 전부터 복용을 금하곤 했다


작년 11월의 장출혈 때 지혈할 방법이 없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충격 때문에 나는 빨간 색만 보아도 아찔하다두 번째 거즈 처방 후에도 피가 계속 배어나오자 보스코를 데리고 어제 아침 일찍 가까운 한일병원으로 갔다. 발가락에 피가 멈추지 않는다니까 접수실에서 우리를 외과 과장에게 배당했는데, 그 의사는 발은 발인데, 발톱이 살을 파고들 때 그 발톱을 뽑아주는 고문기술자’(?)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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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의 담당 간호사는 그 정도로는 피부과에나 가보라 했지만 보호자인 내가 보스코의 발가락 상처가 얼마나 위중한 증세임을 거듭 강조하자 겨우 진찰실에 들여 보내주었다. 과장 의사는 발가락 발톱 수술 전문가가 발톱 옆 살이 쬐끔 뜯겨져 나갔다고, 피 좀 나온다고 전문의를 찾아온 우리가 가소로웠겠지만 우리 엄살에 못 이기는 척하며 치료를 해 주었다. "지혈에는 왕도가 없어요."라면서 내가 처치한 거즈를 다 뜯어내고 소독을 다시 하더니 지혈 패드를 붙여주었다. 한 사흘, 아니면 한 주간쯤 떼어내지 말고 두었다 패드를 물에 불려 떨어지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분이 하는 치료를 눈으로 보고 배웠으니 담엔 나도 할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 크든 작든 와파린 투약자의 비상 출혈에 대응할 응급 자료를 모두 샀다. 이젠 보스코에게 출혈 사고가 났을 때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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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의 각별한 배려가 있어서 두 달을 앞당겨 어제 오후에 보훈병원엘 가서 폐-CT를 찍었다. 서울에 올 때마다 그렇지만, 어느 새 남편의 병원 수행이 아내로서의  주요 업무가 되었다. 보훈병원은 열에 열 7, 80대 남자들이고 남편이나 부친을 동반하고 온 여자들의 탄식이 모두 하나 같았다. 심지어 "(월남전 파병 용사인) 남편이 언제부터 '병원 무섭다'며 혼자서는 병원에 안 가겠다 고집 부려 하는 수 없이 보훈병원 올 적마다 따라 다닌다."며 나더러 "당신 남편 비둘기부대냐 맹호부대냐?" 묻기도 한다.


"남편 나이 70대 중반부터 이러니 100세 인생 남은 세월을 어떻게 끌고 가거나 끌려 다닐까 걱정이 태산"이라고들 한다. 다른 아주머니는 "지금이야 여자 건강이 좀 나아 보이지만 나마저 쓰러지면 영 답이 안 나와요."라며 한숨 짓는다.


큰아들이 회의차 귀국한 길에 빵고 신부랑 엊저녁 가족 모임을 갖고 아빠의 최근 '빈발하는 건강사고'로 대책을 강구하자더니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적부터 우리는 여러 사안을 가족 회의로 정하곤 했다. 나이 상관없이 1인 1표) 빵고 신부가 수도회 공무로 너무 바쁘다면서 허리 아픈 아빠에게 좀 말미를 준다며 여름에 빵기네 가족이 휴가차 귀국하기까지 회의를 미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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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보스코는 내게도 두 아들에게도 유순한 편이지만 근자에는 모든 말을 다 듣고 나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수준에서 그친다. 그럴 경우 가족회의에서 내가 나서서 아빠를 변명하다 두 아들에게 반대받는 표적이 되곤 하는데 이번엔 나도 내 잇속 좀 챙겨야겠다김경일 선생님 부부가 조언을 계속하지만 가족 내에서 나에게 솔직한 얘기를 할 사람은 빵고 신부와 셋째딸 미루다


둘 다 내 성격과 많이 닮았고 내게 말할 때 거침이 없어서 내가 간혹은 속도 상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들이 맞는 말이다. 그네들이 우리더러 지리산을 떠나실 때가 온 듯 하옵니다.”라면 결국 따라야 하리라. 이렇게 훌륭한 판단의 조력자가 있다는 것도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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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거창에서 법무 문제가 있어 오늘 우리가 함양에 내려와야 했으므로 빵기는 장모님댁에서 나머지 사흘을 보내고 출국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0시에 우이동을 떠나 청담동 사돈댁에 큰아들과 그의 엄청난 짐을 내려놓고, 사돈네가 대접해 주시는 차를 나누고 한학자이신 사돈 어른이 집필한 한시집(漢詩集)을 선물 받았다. 외손주 시아가 태어났을 때 중국어와 한시 공부를 시작하셨다니 20년 가까운 세월 닦으신 결실이다. 팔순을 앞두고 당신이 살아오신 인생 여정과 가족과 지인들을 칠언율시(七言律詩)로 300수를 엮으셨다


청담동을 떠나 중간에 한번 쉬고 4시간 만에 휴천재에 도착했다. 그동안 모심기가 늦는 함양 일대의 논들도 모두 벼를 심었다. 경희공방 박사장은 우리 없는 한 주간 안에 휴천재 테라스 데크 작업을 끝내가는 중인데 어찌나 꼼꼼히 했는지 우리 둘 다 매우 만족하였다. 2011년에 박사장이 만든 데크여서 자기 손으로 뜯어내기가 아까웠다는데 "내가 만든 작업을 내 손으로 철거하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다음에 이런 일을 시키려면 딴 사람 손에 일단 철거시킨 다음에 나를 불러주시라.”는 당부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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