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4년 6월 2일 일요일. 맑음
금요일, 지인이 보스코의 건강을 염려하여 폐-CT를 어디서든 빨리 찍게 하려고 백방으로 애를 쓴다. 지난 3월에 찍었어야 했는데 어쩌다 CT촬영을 빠뜨리고 석 달을 넘겼다. 보스코의 주치의는 교통사고의 충격이 폐에도 충격을 줬을 수 있다며 이번에는 폐-CT 검사를 처방했는데, 예약이 밀려 9월에나 가능하다는 검사실 답변이 나온 터였다.
찬성이 서방님 말대로,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 네 마디로 간추려진다며, ‘그래도 형님은 병에 떨어질 때마다 오뚜기처럼 일어나시니 대단한 요행이거나 하늘의 손길이 있으시다’는 평이다. 요즘은 제법 입맛도 돌아왔고 책상에 앉는 집필작업은 10여분 지나면 일어나서 허리를 펴고 걷기를 하지만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다시 자리에 앉는다.
한일병원에서 CT를 앞당겨 찍을 수 있나 주선하던 지인은 보훈병원에서 예약을 취소한 환자가 있어 급한 연락을 해왔다고 알려줘서 다음주 월요일에 가기로 정했다. 이렇게 옆에서 뒤에서 염려해주는 분들 덕택에 보스코도 나도 건강을 쉽게 회복하는 듯하다. 은총의 손길이다.
그동안 보스코에게 옷을 안 사 입히다 보니 외출하는 차림이 여간 엉성하여 금요일에 남대문시장엘 갔다. 캐논 카메라도 20년이란 세월을 넘기다 보니 고장이 잦아 시장 안에 있는 ‘캐논 AS센타’엘 갔다. 기사는 워낙 오래된 제품이라 부속이 없어 고칠 수가 없다고 난감해 한다. 보스코가 워낙 ‘애정하는’ 기계라 큰맘 먹고 새것(Canon SX70HS)으로 바꿔 샀다.
어제 토요일. 빵기가 귀국한 길에 외삼촌들에게 식사 대접도 하고, 지난번 외할머니 유해를 미리내에서 모셔와 탄현의 외할아버지 산소에 합장하는 자리에 참석 못해 외갓집 가족묘에 성묘도 할 겸 시간을 마련하였다. 세 분의 외삼촌과 둘째 숙모가 우리와 자리를 같이 했다. 점심은 돌아가신 엄마와 각별한 사이였던 장로님댁에서 두부 요리를 먹었다.
집뒤가 마을공원이어선지 이층 테라스에 장수하늘소가 날아와 있었다
우리 차로 오빠도 같이 가면서 여든이 다 된 오빠가 요즘 어지럽기도 하고 속이 메슥거리기도 한다니 혹시 뇌경색이 지나갔는지 걱정스러워 병원에 가 보라고 채근하는데 오가는 길 두어 시간을 온통 할애했다. 워낙 한 고집하는 사람이지만 ‘혼자 살다 보니 혹시 고독사(孤獨死)할까 두렵다’는 본인 실토를 듣고서 우리는 오빠를 설득하는 실마리를 찾았다.
몇 해의 돌싱생활에 익숙해진 오빠는 자기집 냉장고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냉동식품들이 산적되어 있는지를 자랑하면서 “식사준비에 관한 한 여자는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려 ‘의식주에 관한 한, 여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보스코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누워 계신 탄현 ‘하늘공원’(원래 기독교 묘지) 묘지는 호천이가 올케랑 자주 오가며 손을 봐서 아주 말끔했다. 벌초를 하고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호천이가 가져온 다알리아도 심고 잔디에 물을 주었다. 자식들이 가까이 있으며 이렇게 들여다보는 묘지는 말끔하고 정돈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집은 봉분 위에 잡초가 한 길은 된다.
우리 부부야 말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큰아들, 사제로 살아가는 작은아들 둘에게 부모산소 돌보는 짐까지 지우지 않으려면 어디에도 흔적 없이 사라져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며 돌아왔다. 전에 이 묘지에 커다란 간판에 쓰여 있던 ‘無덤’이라는 두 글자가 내 머리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공동묘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 산소 갈 적마다 엄마가 들려 ‘빵빠래’를 드시며 흡족해 하시던 편의점에서 우리 일행도 빵빠래를 하나씩 들고 엄마를 추억했다. 달콤한 엄마 맛이 너무 그립다. 큰아들이 외삼촌들께 점심과 후식까지 사자 어미의 마음이 흐뭇하다. 애들은 크며 어른들의 위안이 된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49
오늘 ‘성체성혈 대축일’에 우이성당 9시 미사에 갔다. 전에는 이 시간이 어린이미사여서 좀 시끄럽고 바시락바스락 생동감이 있었는데 토요일로 어린이 미사를 옮기고 9시 미사가 어른미사가 되고 나니 애들의 장난이 사라져 너무 조용하고 허전하다.
주임 신부님 공지시간 짧은 교리에서 열두 사도들의 역할, 베드로와 교황의 역사적 위상, 새 교황대사의 엊그제 한국 부임을 설명하던 신부님은 “이 자리에는 우리 정부에서 교황청에 대사로 파견했던 분이 앉아 계신다”며 보스코를 일으켜 세워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게 하셨다. 2003년의 주교황청 대사 임명, 부임, 활약, 이임과 귀국 전체를 통틀어 우리 본당에서 처음 있는 언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