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30일 목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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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집 마당에 윤판나물, 은방울꽃이 어찌나 번지던지 캐서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았다. 내일 이우정 선생님 기일(24주기) 한신 가는 길에 문익환 목사님 기념관’(통일의 집) 뜰에 심으라고 갖다 줄 생각이다. 우리 집은 거의 50년이 다 돼가는 정원. 그동안 눈에 띄는대로 갖다 심었더니 나도 기억 못할 수없는 생명들이 좁은 마당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나름 텃세를 한다. 가끔 너는 누구니? 어디서 왔니? 누가 데려왔니?” 묻지만 빙그레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다. 어느 땐가 꽂아놓은 비밀들이 긍정의 얼굴로 모두 활짝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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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보스코랑 서울대 입구 우정치과엘 갔다. 거의 열 달 전 시작한 두 번째 임플란트를 마무리했다. 보스코에게도 희고 멋진 이가 탄생했다. 또 충치를 앓던 윗사랑니 하나를 뽑아버리지 않고 남원의료원에 입원해 있던 4월 달에 그곳 치과에서 정성껏 신경치료를 해서 계속 쓰게 살려주었다. 치과의사들도 사랑니나 충치는 대책 없이 뽑아버리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연세에 귀찮아도 정성스럽게 손봐 드릴 테니 남겨서 쓰세요.” 하는 의사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좋은 사람들을 친지로 만났고, 의사도 그런 분들만 만났다. 가까운 시간부터 헤아리면 김경일 원장님과 문정주 선생님, 치과의사 곽난희 선생님, 선내과 박경선 선생님, 성남 이민상 선생님, 로마의 오띠나 선생님, 누구보다도 최근 10여년 보스코의 주치의를 해주는 두상이 서방님, 그밖에도 많은 분들의 보살핌과 치료로 오늘까지 삶을 건강하게 지탱해왔다. 고마운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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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산보삼아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전에는 '지구를 지키는 불사신'을 자처하면서 집집에 골목에 잔소리하는 '만년반장'으로서 돌았는데, 개인 주택들은 거의 헐려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고 거주하는 사람들도 낯이 설다. 보스코의 동년배로 이 동네에 남은 유일한 원로 '대풍이 아빠'도 구부정한 허리로 오랜 병상을 이겨내는 중이고 보스코는 복대를 하고 두 지팡이에 의지해 걷고 있으니 두 원로는 이렇게 석양 빛을 얼굴에 띄우고, 국민주택을 가꾸며 고치며 수십 년 살았던 분들은 거의 아파트를 구해 이사 가고 나서 소식도 끊겼다. 


어제 치과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스코가 회냉면을 먹고 싶다 했다. 뭘 먹고 싶다는 주문이 정말 오랜만이어서 쌍문사거리 언덕길에 눈여겨 봐왔던 감포면옥엘 들렀다. 들어가 보니 그 집은 냉면집이 아니고 고기집이었다. 보스코가 퇴원 후에도 고기를 싫어해 냉면만 시키니 쥔이 눈치를 보였다. 불고기 1인분이라도 시키고 싶었지만 남편이 싫어하는 고기를 아내가 혼자 먹기도 그래서 나도 포기했다. 이러다 보면 부부는 입맛도 닮는다. 아니 아내가 남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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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눈을 뜨면 뭔가 할 일을 찾는 게 습관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지리산에서 가져온 작약을 심었다. 참으아리무스카리, 수선화, 분홍달맞이, 향기별꽃, 아래 '코딱지 서점'(본 이름은 '쓸모의 발견')에서 얻은 노랑 달맞이 등을 아침 내내 심었다. 요즘 한창 피어야 할 섬초롱, 수국, 골무꽃, 루드베키아 등도 부지런한 안젤라네 모녀가 잡초로 알고 솎아버렸는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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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이우정 선생님 돌아가신지 24주년 되는 날. 수유리 한신은 언제 가도 추억이 가득한 사랑스런 모교로 나를 맞아주어 기분 좋다. 작년에 이우정 선생님 탄신 100주년 기념으로 행사를 크게 했지만 해마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의미가 크다. 문우 언니. 지선이 언니, 한국염 목사와 내가 제자들을 상징적으로 대표해서 참석했다


모두가 선생님을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는 제자들이다. 살아 생전 22년간 선생님을 모셨던 조카도 왔다. 김상근 목사님도 오셨는데 요추 3.4.5가 망가져 요통으로 거의 걷지를 못하신다. 보스코가 요추 1번 사고로 지금 정도로 움직이고 걷는 것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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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님 양복에 카네이션을 다셨기에 웬 꽃이죠?’ 물으니 부인이 7년간 치매를 앓다가 1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살아 생전 늘 꽃던 것이라 아내를 생각하면서 꽃이 된 그미와 모든 곳을 함께 다닌다.’는 뜻에서 늘 달고 다니신단다. 늘 마음이 따뜻한 분이다. 각자 자기와의 관계에서 이우정 선생님과 있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데, 그분의 부드럽고 착하면서도 사리 분별이 정확하고 따듯하고 정직했던 수많은 미담이 쏟아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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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신부 꼬셔서 가톨릭으로 도망갔지?” 나를 보실 적마다 이우정 선생님이 내 볼을 꼬집으시면서 놀리시던 말씀. 아무리 설명을 해서 내용을 정정해드려도 선생님 기억에서는 수정이 안됐다. 지금도 한신동문들이 같은 질문을 해오면 나는 굳이 길게 설명할 기력도 없어 그래서 아들이 가톨릭 신부됐어요.”라고 간추리고 만다.


아범이 4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귀가하였다. 나도 한신에서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와 에그타르 같은 비싼 불량식품을 사들고 들어와 셋이서 특식 저녁을 먹었다. 큰아들이든 작은아들이든 신세대가 본가방문’(本家訪問: 본래 가톨릭 남녀수도자가 가족을 찾아 부모님 댁에 휴가 오면 이런 이름을 쓴다! 스님들은 속가방문(俗家訪問)’이라고 하나? 장가 시집간 아들 딸이 찾아오면 뭐라고 한담?)을 오면 보스코는 노트북과 태블릿과 핸폰의 프로그램과 앱 깔기와 제반 문제점을 손봐 달라고 내놓고 나도 마찬가지이다. 좀 지나면 시아나 시우 두 손주에게 부탁할 테지만 아무튼 우리 노인성 컴맹을 보완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


휴천재 이층 데크공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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