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1일 화요일. 맑음


날씨가 맑아 어제는 점심을 먹고 윗동네 문상으로 산보를 갔다. 지난 교통사고 이후 처음 가는 길이다. 몇년간 잉구가 일하기 싫어 죽겠다며 돌보지 않던 몇 마지기 논이 갈리고 까맣게 멀칭이 되어 있다. 제일 아랫논에는 옥수수, 땅콩, 고추, 양파 마늘이 정성껏 심겨져 있다. 한 이년 맘이 떠서 고민하더니만 요즘은 마음이 좀 가라앉았나 보다.


[크기변환]20240520_135102.jpg


우리 윗집에 해당하는(1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부산 아짐은 한동안 얼굴을 안 보였는데 축대밑 남새밭에는 고추, 가지, 상추, 토마토, 샐러리, 비트 등 항암채소가 꽤 많이 심겨 있다. 그 집 텃밭에 키우는 채소의 종류로 주인의 건강 상태를 엿볼 수도 있다. 더구나 도회지 사는 사람의 별장이면.


송문교 건너별장에 사는 장로님이 지난 해 겨울을 맞으며 3월이면 돌아오겠다며 떠났는데 5월이 다 가는 지금까지 밤에도 '불꺼진 창'을 보여준다. 겨울 나러 서울 간다’며 떠나기 전 병색 짙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지리산에 내려온 후, 어느 날 동네에서 안 보이면 하느님 나라에서나 보기를 기약해오던 갖가지 이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문상 문하 마을만 해도 세상을 떠난 노인들에게 묵주알 한 알만 추억으로 나눠줘도 두세 단이 훌쩍 넘는다. 


[크기변환]20240520_135035.jpg


잉구네 집 옆의 강영감네 논밭도 금년은 묵히나 보다. 그집 할메한테 치매가 와서 노치원(老稚園)' 다닌다더니 얼마 전엔 아예 대구에 있는 요양원으로 보내졌다는 소식. 강영감마저도 얼마 전 다리가 부러져 함양병원에 있다 대구병원으로 옮겨가 벌써 여러 달째 입원중이란다. 여러해 전 큰돈 들여 다랭이 논들을 번듯하게 합치더니 (아랫집 땅이 자기네 축대위에 들어 있다고 부산댁과 싸우기도 했다) 그 좋은 논을 써레질도 못하고 버려 두었다


잉구네 밑에 있는 폐가는 우리가 지리산 내려오던 90년대에도 빈집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저 집에도 새악시가 시집오고 작은 방에서 아기들이 태어났을 텐데 지금은 그런 흔적도 찾기 어렵다. 남정네가 없어 더 이상 부치지 않는 논이며 1인가구로 할머니 혼자 살다 비워진 빈집들을 보면 엄마 잃고 넋 놓은 아이들 같아 몹시 안타깝다.


산보길 로사리오. 어제는 문상 느티나무(400년) 밑에 앉아서  

[크기변환]20240520_141355.jpg


어제가 음력 413(호적상 1951.4.13.)이 내 생일이라고 함양농협 조합장이 축하 전화를 해왔다(실제로 내 생일은 양력 423일이다). 고맙다는 인사에 덧붙여 이때다 싶어 농협더러 지금 보급하는 20kg짜리 퇴비를 10kg짜리로 줄여서 보급해 달라고 부탁했다. 영감들은 다 죽고 마을에는 주로 80세 전후의 할매들이 남아 밭농사를 짓는데 그 나이 여자들이 20kg 퇴비자루를 드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 요구를 들어준다면 다음 조합장 선거에서 그를 적극 지지하고 구체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주겠다는 약속까지했다. 두고 볼 일이다.


오후 5시가 좀 넘어 텃밭 빈 곳에 잡초 방지 부직포를 깔러 내려갔다. 오랜만에 드물댁이 올라왔다. 부직포 까는 걸 도와주고 남은 열무를 뽑아 열무김치 꺼리와 국거리로도 나누어 함께 다듬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물 찬 논마다 개구리 합창이 대단하다.


[크기변환]20240520_195537.jpg


난 개구리 소리가 너무 좋아. 도시에 가면 이 소리가 그립다.” 했더니 드물댁의 탄식. “말이시 도시는 사람 못 살 데드만. 우리 딸네 가면 구들장 밑에도 사람이 살고 천정 위에도 사람이 산다고, 나더러 살살 걸으라고 신신당부제. 내 발소리 듣고 구들장 밑에 사는 사람이 쫓아올라온다드만. 여그는 천장 위에 쥐새끼나 사는데 거그는 천장에도 사람이 살드라고.” 말하자면 도시, 특히 아파트는 살 곳이 못 된다는 말씀이다.


여보, 아침 먹고는 텃밭에 심은 채소들 지줏대 세워 줍시다. 당신은 아무일도 말아요, 그저 숨만 쉬세요!” 이 말을 한 게 며칠 전인데 나 혼자 밭일을 하는게 안쓰러웠던지 오늘 아침에는 보스코가 먼저 밭에 나가서 내가 심어둔 고추마다 고추대를 박고, 기욱이네 밭에서 대나무를 잘라 오이 지주를 해주었다. 오이밭에는 굵직한 쇠기둥을 박고 가지들에도 기둥을 박아주었다.


[크기변환]20240521_094939.jpg


[크기변환]20240521_100414.jpg


아직도 허리가 약한 보스코에게 고맙다 치하하고 얼른 집으로 올려보냈다. 그가 저만큼이라도 회복된 게 고마울 뿐이다. 어제 마저 뽑은 열무는 소금에 절여놓고 열무 뽑은 자리에 거름을 뿌리고 갈아서 자그마한 밭이랑을 일쿠었다. 그 자리에 다시 열무와 바질, 파슬리, 루콜라를 심었다. 저 흙이 무슨 재주로 깜깜하게 잠든 씨앗마다 여린 생명들의 잠을 깨우고 꼴로 갖추어 흙밖으로 내보내는지 신기하고 기특하다. 오후에는 어제 뽑아 다듬은 열무로 김치를 담고 서너 집으로 나누고 나니 오랜만에 부자 된 기분이다.


막 익어가는 매실나무 밑에는 방 좀 내주라며 울콩을 심었다. 울콩 줄기가 칭칭 감고 올라가면 좀 성가시겠지만 시골 삶이라는 게 내 것 좀 내주고 나눠가며 사는 거라고 훈수를 두며 호박에도 거름을 더 해줬다. 이렇게 해서 여름 밥상은 다 준비됐다. 휴천재 기와 밑에는 참새와 뱁새들이 여런 군데, 원경으로 사진은 찍었지만 아직 이름은 모르는 새가 벽난로 기둥 꼭대기에 둥지를 틀 틀었다.  


[크기변환]IMG_887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