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6일 목요일. 맑음


거의 해마다 석탄일에 실상사에 아기부처님 목욕시켜드리러 갔었는데(2015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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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부처님 오신 날’. 왕산을 한참 동쪽으로 지나 휴천재의 왼편 소나무밭으로 해님이 잘생기고 건장한 청년처럼 불끈 솟아오른다. 다른 해 같으면 우리 부부도 당연히 부처님을 맞으러 실상사에 갔어야 했다. 거기서 음정과 박자는 안 맞지만 스님, 교무님, 목사님, 수녀님과 수사님들로 구성된 합창단(그래서 코럴choral 이라기보다 비쥬얼visual 합창단이라고 불린다) 지리산 종교연대 합창단에 끼어 축하노래도 부르고 아기 부처님 목욕도 시켜드리고 넉넉한 점심공양도 얻어먹었어야 한다. 그러나 수술 한달이 지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자리에 눕는 보스코더러 노래하러 절에 가자는 말은 차마 못했다. 부처님께 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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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보스코가 즐기는 일이란 침실 창가에 우두커니 앉아 휴천재 감동에 둥지를 마련한 찌르레기 두 부부의 부지런한 육아활동을 보는 일이다. 책상에서도 10분을 계속 앉아있지 못하니 늘 서성이는 모습이어서 누웠다, 일어났다, 걸었다, 앉았다를 거듭한다. 지난 50여년 의자에 본드 붙혔냐고 물을 정도로 끈질기게 앉아 있던 그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행태다. 지난 월요일 남원의료원에 가서 한달전 보스코를 수술한 정형외과 선생님이 엊그제 보여준 뇌 CT 사진에서 보스코의 두개골에 뇌경색이나 뇌출혈의 흔적이 하나도 없는 것에 그나마 가슴을 쓸어내렸다.


보스코의 찌르레기 관찰 덕분에 어제는 요즘 이 동네 숲에 와서 새끼를 기르는 뻐꾸기를 사진 찍는데 성공했다. 몇해 만에 이 숲을 찾아온 자태다. 그 샛노란 모습이 너무도 곱다. 참새도 뱁새도, 물까치도 개똥지빠귀도 요즘은 번식기로 바빠 서로 싸우고 견제하는 광경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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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지팡이를 짚은 보스코와 휴천강변을 산보했다. 길가에 참으아리와 찔레꽃이 유난히 고왔다. 소박한 감꽃은 누가 볼까 수줍게 꽃을 열고 있다. 휴천강 물은 요즘 유난히 진한 초록색. 강 건너 오래된 시멘트 기둥뿌리가 하나 있다. “여보, 수십년 전에는 우리가 선 이 편에서 저 쪽 기둥까지 밧줄을 매어놓고 쪽배를 당기면서 강을 건넜데.”라고 알려준다. 문정리는 강 이쪽에 있고 논밭은 강너에 있는 집들은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나룻배에 몸을 실었단다. 논농사 철이면 머리에 새참이나 점심을 이고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었을 우리 아짐들의 폭폭한 젊은 시절을 생각한다.


만삭으로 양수가 터졌는데도 못밥을 이고 강을 건너 갔고, 집에 돌아와서는 여섯째 딸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눕혀놓고서 오후 새참을 해서 이고 배를 타고 건너간 한동댁의 얘기가 서려 있는 자리다. 모를 심다 새참이 늦다고 욕하던 아짐들은 그미의 검정 고무신 속에 아직도 선혈이 허벅다리에서 흘러 질퍼덕거리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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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보스코의 걸음을 따라 돌아오는 길에 보니 재작년까지만 해도 예초기로 풀을 말끔히 깎고 논가에 검정콩을 심던 임실댁 논두럭에 아랫마을 용환이댁이 ‘타는약(제초제)'을 뿌리고 있다. 그 부지런한 임실댁이 세상을 떠나자 이장댁이 밭을 맡았다는데 누렇게 죽어가는 논두럭 풀이 사그라드는 농촌의 모습 같아 슬프다. 주인 없는 집, 허물어져 내리는 집, 그래도 대처로 간 자식들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 집... 이게 농촌 마을의 10년 안 풍경이다.


보스코 몸에 딱 맞는 의자를 구해주고 싶다던 내 소원을 수녀님들이 들어주셨다. 광주에 있는 멘퍼스라는 업체를 소개해 주시고 보스코 체형과 키에 딱 맞는 의자를 구해주셨다. 오늘 광주에 가서 그 의자를 싣고 왔다.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남은 여생도 보스코는 교회에 뜻있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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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실으러 간 길에 광주 ‘KS병원에 들러 둘째 동서를 방문했다. 서울 보훈병원에서 두상이 서방님에게 폐암 수술을 받고나서 체력을 회복 못해 두달 넘겨 집으로 못 가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처지다. 식사를 못해 체중이 엄청 빠져 보기에도 안쓰러운데, 오히려 보스코 건강을 염려해주는 마음이라니! 보스코가 폐암 수술 후 두 달 반은 나도 이미 까마득히 잊혀졌는데... 그는 수술 후 사흘 만에 간병인안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병원에서 쫓겨나다시피해서 오래 병원 신세를 안 졌다


우리 텃밭 밑에 자라는 '곤약'이라는 초목은 색깔도 모양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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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가면 깜짝 놀라게 기발한 현수막을 자주 보게 된다. 오늘 송정 어느 주택가에 "윤을 위한 퇴진곡... 앞서서 나가니...로 새겨진 진보당 현수막이 걸려 있고 그 앞을 초딩 꼬마가 자전거를 타고 땀 흘리며 지나간다. 5.18이 낼모레인 광주 답다.


윤가의 아내사랑이 검사조직을 박살냈다며 “T(탄핵)-엑스프레스를 탔다!”는 세평이 도는 오늘만 해도 야당이 새 국회의장에 추장군(秋將軍)을 뽑지 않은 사건을 이재명에 대한 (통쾌한) 반란이라며 흐뭇해하는 보수 언론의 박수갈채가 뜨다가, 의사 증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반란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보수언론들이 어리둥절 표정관리를 못하는 둥, 대한민국의 정치는 오늘 하루만도 정말 생동하며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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