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요일. 비
세 주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삶의 현장 휴천재로 돌아왔다. 병원생활을 잘 마쳤다고 김원장님 부부가 남원 의료원에 찾아와 점심을 마련해 주셨다. "퇴원기념 오찬'이랄까? 보스코는 두 분이 곡성 장까지 가서 사온 추어탕을 보약으로 먹었으니 빨리 회복될 것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김원장님을 성가시게 했으니 우리가 서울로 가야 이 짐을 벗으실 것 같다.
88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며 남원을 지날 때마다 도로변에 보이던 공설운동장과 롤러스케이트장 지붕이며 병원 건물이며 작은 언덕들이 보스코가 잠 못 이루고 고통스러워 하던 긴밤들을 돌아보게 한다.
늘 남을 먼저 생각하고 좋은 일에 자기를 잊는 그를 순진하다고 원망하다가도 그게 참 그리스도인다운 마음가짐임을 알기에 더는 나무랄 수가 없다. 오늘(일요일)도 정영규 신부님 전화해서 17일에 광주를 갔다 와야겠다는 약속을 했단다. 기가 막혀 “당신은 아직 환자라구요!” 상기시키고 내가 정신부님께 직접 전화를 해서, 17일이면 열흘 후인데 교통사고 환자이기에 움직이는 게 무리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러니 선심은 늘 보스코가 쓰고 악역은 늘 내 몫으로 남는다.
금요일 집에 오자 침대에 누워 잠이 든 그는 저녁에 깨어 간단한 저녁을 먹고 또다시 15시간을 내쳐 깊은 잠에 떨어졌다. ‘저렇게 자도 되나?’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살아서 집에 돌아 왔다는 안도감이 그를 깊은 잠 속으로 불러드린다 .
귀가하자마자 작업시작-허리아프면 서서 하고
나는 돌아오자마자 빨래, 정리, 청소를 하고 밭에 내려가 그동안 자주 비가 내려 부쩍 자라버린 풀들을 뽑았다. 한 20일간 노동의 기억을 잃어버린 내 몸은 사방에서 성토를 한다. 토요일 아침을 먹고도 보스코는 계속 잠을 자더니 내가 마당 잔디의 풀을 뽑고 있으니까 내려와 옆에서 말동무를 해준다.
그때 소담정 도메니카가 안부 인사를 왔다. 보스코의 잦은 사고로 많은 사람이 큰 병원 가까운 서울집으로 올라가라고 호소한다니까, ‘지리산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 같아요. 죽음은 병원 가까이에도 있고 심지어 병원 안에도 있어요. 대사님 무릎 부상은 여행 중 사고였고, 이번도 일도 교통사고인데 교통사고로 치면 차가 많은 도시에서 훠얼씬 더 많이 일어나요. 삶과 죽음이 모두 하느님 뜻에 달린 일이니 그런 충고에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라는 조언을 해 준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59
오늘 일요일, 공소 미사후 식탁에서 이기자(프란치스코)는 딸 보러 서울 아파트에 올라가는 일이 있어도 하루 밤도 안 자고 물건만 전해주고 그대로 돌아나온다고 얘기한다. 아래층 진이네도 천안에 사는 딸네집에 가더라도 숨막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울 엄마가 82세에 양로원 ‘유무상통 실버타운’에 들어가셨으니(2002) 나도 그 나이쯤엔 그리 되리라는 생각이다. 지리산 노고할메의 치맛자락이 너무 품이 넓어 도무지 떠날 마음이 안 일어난다.
토요일 오전에 잔디밭 풀매기는 끝내고, 오후에는 (전동)잔디깎기로 잔디밭을 싹 밀었다. 텃밭 쪽파는 뽑을 때를 넘겨서 반은 썩고 반은 시든 쪽파를 뽑아 밭이랑에 말렸다 가위질하여 가을에 심을 ‘쪽파씨’를 마련했다.
수술 후 처음 만난 드물댁이 핼쓱하지만 밝은 모습으로 우리 밭으로 와서 비닐멀칭을 도와주었다. 함양 장날 가서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을 사다가 심으면 올 여름 푸성귀는 풍성하다. 나더러 텃밭 일을 줄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밭농사가 일이 아니고 놀이다. 물론 친구들과 환담하며 노는 것도 좋지만 내게는 ‘밭 놀이’가 훨씬 마음을 풍성하게 해준다.
오늘 일요일.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첫 주여서 산청 임신부님이 오시는 날이다, 한 달에 한번 오시는 이날을 우리 모두가 기다린다. 우리 임신부님의 인간적인 배려와 따듯함이 미사와 그 후에는 아가페로 이어진다. 그분을 보면 ‘진짜 목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제로서 은퇴까지 충실히 사제직을 수행한 분들은 그것만으로도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열무가 알맞게 자라올라 미루에게 물김치 담으라고 한 자루 뽑아주었다. ‘비오는 날이면 미루도 배 깔고 책을 보거나, 낮잠을 자야 하는데 또 일꺼리를 주는구나’ 싶기도 하고 ‘너나 나나 다 팔자다’ 싶기도 하다.
남편이 재작년에 세상을 버리자 일하기 싫어 고추밭 일구기를 미루고 미루던 한남댁의 고추밭에 빗속에 널부러진 퇴비푸대가 유난히 소란한 소리를 내며 비를 맞는다. 남편이 없으면 삶에 중추가 무너져 버린다. 그런데 우리 동네만도 스무 명 가까운 ‘미망인들’이 홀몸들이고 오늘처럼 비오고 어설픈 날이면 ‘깨팔러간’ 남편들의 빈자리가 유난히 허전하게 느껴지리라.
이태만에 휴천재 감동에 찌르레기가 깃들어 알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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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 퇴원 축복합니다. 사모님도 정말 수고하셨어요. 다치시고 일어난 소상한 과정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진한 귀감을 보여주시는 두분 부디 건강하세요!!! 대학자 대사님은 책으로, 사모님은 농사(사람,텃밭)로 귀한 사명 계속하시길요, 어록감인 소담정 도메니카님 말씀 저도 깊이 새길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