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4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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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남원의료원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휴천재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또 다르다. 마치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만날 때 표정을 달리하듯 낯설지만 신선하고도 경이롭다. 우리 산은 가까이에서 늘 친근하고 소박한 모습이나, 이곳 남원의 산은 멀리 점잖고 여유있게 흐르는 섬진강처럼 산의 물결로 구비치며 어깨를 서로 기대고 있다. 아름답다. 더구나 해가 떠오르는 시각의 지리산은 결혼식 날 붉은 너울 속에 곱게 단장한 새색시가 사알짝 고개를 든달까. 물안개가 하얗게 구비치는 섬진강이 이 마을 사람들과 지나온 시간을 안고 함께 흘러간다.


우리 부부가 걸어온 반백년의 시간, 특히 최근 몇 년간 우리에게 닥친 일들, 아니 정확히 보스코에 일어난 건강 문제를 생각해본다. 더구나 사고의 빈도가 잦아질수록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오는구나!” 하는 느낌에 가슴은 조여들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필요한 어느 손길이 쉬운 길로 이끌어주심을 절감하면서, 그리고 결과는 늘 가슴 터지는 감사함으로 끝을 맺는다. 이번 자동차 사고로 보스코의 척추가 나갔을 때 관내가 아닌데도 남원의료원으로 데려다 준 젊은 119구급대원들, 임실에서 우리보다 더 빨리 와서 기다려주신 김경일선생님, 입원시켜주시고 하루만에 수술을 해주신 전형외괴 김기남 선생님, 친절한 간호사와 주변분들. 수술후 즉시 일어나 걷는 사진을 보고 시동생 찬성이 서방님은 아주 중후하십니다. 바로 걸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에도 어머님 손길이 잡아주셨나봅니다.”라는 해석으로 보내왔다.


아플 때마다 어떻게 하나 걱정이 태산이지만 지리산에 살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것은 김경일 선생의 구체적인 도움과 소담정 도메니카의 보살핌이 있어서다. 그 밖에 숫한 고마운 분들의 손길은 열거할 수조차 없다.


금요일 오전에 국수녀님과 다른 한 분 수녀님이 병문안을 오셨다 사고 당시 보스코가 정신을 깜빡 잃었을 때 울면서 성모님 도와주셔요, 대사님 살려 주세요!”라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셔서 보스코가 그만했음을 모두가 공감하였다. 보스코가 안전하고 수술까지 받은 모습을 보았으니 이젠 당신네 두 수녀님이 마음 놓고 아플 모양이다. 자동차 사고이니만큼, 나이 많은 여인들의 몸인만큼 어깨가 쑤시고 온몸의 긴장이 풀렸으니 이번엔 당신들을 살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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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김경일 선생님과 문정주 선생님이 우리를 문병오시며 평소 잘 알던 남원의료원 오진규 병원장님과 박연임간호부장님도  모시고 병실로 올라왔다. 특히 병원장님은 평직원에서 동료들의 추천으로 병원장이 되신 대한민국 공립병원 유일한 입지전적인 분이시란다. 그분의 병원운영 기본방침이 환자에게 따듯하게라는데 지난 사흘간 우리가 철저하게 피부로 절감하던 바였다. 병원장의 방침대로 그분 밑에서 일하는 간호사나 직원들 모두가 가족같이 따뜻하게 환자를 보살핀다.


그 덕분에 치통으로 고생하던 보스코는 사랑니의 신경치료도 시작할 수 있었다. 세상은 여러 가지 인연의 형태로 엮여있으며 그 이음고리가 고달푼 인생을 사는데 든든한 가림막이 된다. 보스코도 나도 기독교 교육을 받은 덕분에 하느님의 은총은 타인들의 친절과 도움을 통해서 내린다는 신념으로 살아간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체험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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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에 무슨 종류의 진통제를 맞았던지 쇼크처럼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그의 호소와 묘사는 언어학자답게얼마나 현란하고 적나라한지 통증의 진원지에서 한 덩이의 밀가루 반죽이 솟아 폭발하듯 온몸을 관통하며 쫘악 퍼진다며 그 순간 온 몸의 기능이 혼란에 빠진단다. 의학에서도 통하는 통증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가 묘시하는 그 통증 괴물체는 패치라는 진통제로 수습되어 보스코는 오후의 틍증에서 풀려나 깊은 잠에 빠져든다, 순한 아이처럼.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고 시침 뚝 떼기에 당신 혹시 나에게 안 미안해?” 라고 물으니, “왜 미안해, 엄만데?” 엄마에게 하트 표시 하나만으로 퉁치는 저 아이의 당당함 앞에선 내가 두 손 쳐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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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엔 보스코가 데불고 들어온 딸 미루와 이사야가 병문안을 왔다. 미루를 보자 순간 환해진 보스코는 좀 수척할 뿐 환자 같지 않다. 고맙고 사랑스런 사람들이다. 은빛나래단에서 80둥이 셋이 동시에 아프니 관리의 여왕 미루도 힘겨울 꺼다. 그래도 그녀가 있어 우리 늙은이들이 웃는다.


일요일 1030분 쯤 어떤 아줌마가 병실을 돌며 “11시에 지하 2층 교회에서 주일예배있어요' 추 운 겨울 메밀묵사려~~:“ 찹쌀떠억~~“파는 애절한 목소리다. 남원의료원에가톨릭과 개신교 두 호스피스 도움쎈타도 있다. 이런 단체의 존재는 병원 운영이 매우 선구적임을 드러낸다.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일은 의료인의 기본 의무이지만 자기들의 손이 더 이상 미치지 않을 때는 '인간다운'죽음'을 맞도록  돕는 일은 의료 이상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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