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11일 목요일


총선날, 수요일 아침 일찍 아래층 진이와 아들 한빈이가 이층으로 인사왔다. 한빈 아빠는 선거일을 맞아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처가집 불루베리 농사를 도우러 남호리 농장으로 갔다. 한빈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더니 너무 으젖해졌다. 평상시에 엄마에게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던지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시면 자신은 물론 옆에 애까지 채근하여 '너희들 선생님이 조용하라고 하시잖아'라고 규율까지 잡는단다.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교실바닥에서 수영을 하는 애들도 있단다. 아기 엄마인 진이의 평가에 의하면, 유아원이나 유치원 선생들이 영업사원이라면 학교선생들은 공무원이더란다. 공무원 특유의 불친절과 자신이 할 일의 한계 안에서 애들을 보더란다. 상황변화에 잘 적응하면 살아남는 거고, 아니면 초딩부터 또래와 어른들로부터 멀어지는거다. 그걸 느끼는 순간 그 아이들의 슬픔과 절망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1030분 꽃구경을 하며 느즈막하게 성삼회수녀님들이 장아찌 담기에 딱 좋은 부드러운 신선초를 뜯으러 휴천재에 오셨다. 올해도 다섯 분. 우선 커피와 간식을 하고 수도복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에 투입됐다. 우리 둘도 밭고랑에 풀을 방지하는 부직포를 깔았다. 꼬마 한빈이도 이층할아버지보스코가 부직포 까는 걸 도우며 농사를 짓다 보면 흙이 귀하다니까 옆논에서  꽃삽으로 흙을 파다가 부직포 끝에 덮고 꼭꼭 밥는다.



걔 엄마의 어린시절, 아빠는 통역하러 가고, 엄마는 벌 치러 산에 가면 막 아장아장 걷던 동생 진호를 돌보던,걔 엄마를 보는 듯하다. 아이의 등교에 강아지 메리와 진호를 데리고 가면 교실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며 수업을 방해하니, 선생님이 뒷산까지 들리게 방송을 했다 진이 어머니, 진호와 메리 좀 데려가세요!” 30년 헐씬 넘는 얘기다.


수녀님들 점심은 평소와 달리집에서 안 먹고, 우리 모두 노동을 했으니 함바집 엄천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점심 먹고 돌아오다가 그 사단이 났다. 내 차에는 세 분수녀님이 타고, 국수녀님이 운전하는 봉고차에는 두 분 수녀님이 앞좌석에 보스코는 조수석 뒤에 탔다


늘 드물댁네 코너를 돌 때면 기억자로 꺾어진 언덕받이가 내게도 두려운데, 익숙하지 못한 수녀님이 돌다가 차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면서 돌진하더란다. 차는 소담정 밭을 일직선으로 지나 1.5미터 쯤 되는 축대 밑으로, 또 거기 있는 작은 축대를 지나 정은네 옆마당으로 꼻아박았다. 내가 달려 갔을 때는 두 분 수녀님은 벌벌 떨며 당황하여 울고 있었고 정신을 잠깐 잃었던 보스코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허리를 다쳤단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이고 119구급차가 달려오고, 늙은이 허리 꺾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구급차에 싣고 차는 윙윙 남원으로 달렸다. 오늘도 김경일 선생님이 내 급한 연락을 받고 임실에서 남원으로 나오셔서 돌봐주시며 병원과의 모든 접촉과 주치의로서의 책임을 도맡아주셨다.



의료원 응급실로 실려온 보스코에게 담당의는 복잡한 엑스레이로 촬영하여 1번 척추가 압축골절됐고 금이 갔다는 판정을 내렸고 한달은 입원해서 누워있어야 한단다. 금요일에 서울 가려던 모든 약속은 취소했다.



마고할메가 우리에 서울행이 마뜩치 않았나보다. 주변사람들은 우리더러 어서 서울로 가던지 도시로 나오란다. 말하자면 마고할메의 치마폭을 벗어나라는 말이다. 글쎄 그게 보스코가 푹 빠진 지리산 사랑에 가능한 일일까? 나는 그가 있는 곳에 함께 하려고 운명지어진 숙명의 여인이다.



의사들이 파업을 해서 환자들이 적게 오는지, 아니면 아예 사람들이 아프지 않은지, 남원의료원은 깨끗하고 조용하다. 밤새 보스코는 아픈 허리를 감당하지 못해 비명을 지르고 끙끙앓는다. 나 역시 그와 같이 깨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데 우리 방엔 기적을 울리는 기차 아저씨, 화통을 끌고가는 시끄러운 남자 하나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을 포기하는 쪽으로 발을 내닫는 듯한 남자 하나가 건너편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조용한 사람은 걱정스러워서, 기차 화통님은 시끄러워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도 아침은 왔다.목요일 아침. 우리 입원실은 휴게실 가까운데 밤새 개표 방송을 들은 아짐들의 총평이 '200석이 넘었어야 하는디... 디지게 아깝다.' 말하자면 여기는 호남이다. 내게는 심증적으로 더 호감이 간다여기는 함양 경상도가 아니고 남원 전라도로구나그야말로 해방구로구나!



12시 이전에 MR를 찍었다. 망가진 척추 1번에 시멘트 콩크리트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나왔다. 그 망가진 척추를 벽돌을 굳혀 몸을 버티시란다. 1시 반에 수술실에 들어가 30분간 걸려 나오니 보스코의 그 엄청난 허리통증이 중단되고 걸을 수도 있게 되였다. 기적이다. 남해 형부가 패혈증으로 입원했다해서 언니에게 위로의 전화를 했더니 "나도 고생이지만 너도 욕본다내보다 더 하다."


오후에 ;꼬맹이가 멀리서 다녀와 위문을 하고 갔다보스코가 근년에 거듭거듭 사고를 치고 그때마다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한빈이가 할아버지 소식을 들었다면 진이가 어렸을 적에 보스코가 가르친 장난노래를 불럿을 게다 "싼타클로스  할아버지 선물주러 썰매를 타고서 오시다가 절둑발이 사슴들이 코방아를 찧는통에 선물들은 망가지고 할아버진 허리가 부러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