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9일 화요일. 맑다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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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벽 왕산 오른쪽으로 해가 떠오른다. 춘분이 지나면 해는 왕산의 오른쪽으로 자꾸 움직이다 하지면 이억년 묘가 있는 휴천재 왼편 솔밭으로 옮긴다. 거기서 다시 해뜰녘이 남쪽으로 옮겨 왕산 위를 지나고 문정리 주산인 와불산 상봉에 걸리면 동지다해는 휴천재 마루에서 내다보는 남쪽 하늘 거의 절반을 오가면서 한 해를 보낸다우리가 휴천재를 지은 게 30년, 이곳에 정착한지 18년 저렇게 해가 오갔다. 


해가 빛나고 날씨가 맑으면 휴천재 유리창에 낀 먼지는 선명해진다. 꽃이 피고 산이 푸르러질수록 창은 깨끗해야 하는데, 아무리 창을 맑게 닦아도 비 한 번만 들이쳐도, 더구나 요즘은 중국이 날려보내는 황사비여서 유리창이 자칫 뿌옇다. 머잖아 송화가루가 날기 시작하면 더 심하다. 아무리 닦아도 비온 후엔 '언제 닦아 준 일 있어?' 유리창이 시침을 뚝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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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배나무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해 꽃구경이라도 하자고, 오늘 아침 잠옷도 미처 안 갈아입은 채 유리창을 닦았다. 대야에 비눗물을 풀어 창닦게로 문질러 닦고 훑어낸 뒤, 걸레로 물기를 닦고나서 신문지로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문지르면 푸른 하늘이며 산벛 핀 앞산까지 어느 새 창 안에 들어와 있다.


기왕 나선 김에 계단이랑 복도, 현관과 식당채 바닥까지 말끔히 물걸레질을 했다. 내가 아침마다 휴천재 이층을 방방이 걸레질하노라면 깨끗한데 청소는 왜 또 하냐?”며 주부로서 남편한테서 좋은 소리 못 들으니 그가 늦잠 자는 시간에 청소하는 게 마음 편하다. ‘우렁이 색씨가 밤새 하고 간 집안일은 남편이 눈치를 못 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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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그제 아침 공소 미사 후 커피를 마셔선지 일요일 밤도 월요일 밤도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새벽 서너 시까지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그가 밤새워 깨어 있으면 학문적 업적에는 일조하겠지만, '노인 불면증은 치매의 지름길'임을 걱정하는  아내한테서는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당신이 무슨 수험생이에요, 밤 패서 공부하게?” 라며 반강제로 침대로 모셔 갔더니 오늘은 아침 8시가 넘도록 잠에 떨어져 있었다. “모이 안 쪼는 닭, 이미 쪼아먹었거나 배고프면 쪼아먹게 마련(Gallina che non becca, ha già beccato o beccherà)”라는 이탈리아 속담처럼, 보스코 나이에 아무리 밤잠을 설쳐도 하루 이틀 못 자면 결국엔 잘 만큼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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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상주에서 오는 길에 소담정 도메니카가 거창 화원에서 이탈리아 봉숭아 두 판을 사다주었다. 보스코가 휴천재 화단에 땅을 파주면 나는 거기다 퇴비 섞은 흙을 넣고 간격을 두어 심어준다. 일을 두고 보다가도 한번 시작하면 발동이 걸려 주변 일도 계속하는 전순란! 내친 김에 화단과 휴천재 올라오는 한길가 잡초까지 다 뽑고  소담정에서 나눠준 국화도 마을 길에 고루 나누어 심었다. 나는 봄이면 꽃을 욕심껏 심어야 기분이 좋다.


오늘 화요일 한남마을 용환이가 각시랑 트랙터를 몰고 올라와 휴천대 옆 구장네 논을 갈았다. 벼농사의 시작이다. 용환이 각시가 유난히 말랐기에 잘 좀 먹이고 일 좀 적게 시켜요!”꾸지람 했더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데 당뇨여서 저래요!한다. “울 아부지 살아 계셨을 때는 아침에 며느리 좀 더 자라고 아부지가 밥도 해주었는데, 시압씨 돌아가시고 며느리 혼자 집안일 챙기랴 논일하랴 힘들어요.” ‘남자루 태어난 게 벼슬로 통하는 경상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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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도메니카가 종일 소담정 화분갈이를 하고 있었다. 그집에는 분갈이 해야 하는 화분이 어림잡아 100개는 실이 된다. 그래서 동네에서, 제일 화려한 꽃밭을 둔 흙집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니 남편 챙기거나 애보는 일 없으니 (반려동물도 없으니) 꽃일이라도 해야 덜 심심할 게다


일손을 도우러 내려갔다가 “보스코의 치통으로 이번 금요일에 신경치료하러 서울 데려 가야 해요. 두 아이 키우기는 그리도 수월했는데 남편이 막내 노릇을 톡톡히 하니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했더니만 대뜸하는 소리가 둘이 살며 그것도 안 하면 뭐할 꺼에요? 그리 거둘 남편이라도 있는 걸 고마워 하라구요!” 핀잔이다(그미는 독신여성이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다, 내 주변에 그 새 홀어미 된 그 숱한 여인들을 떠올리면서...


소담정 감자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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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감자싹 "영치가 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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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싹 셋이 저 흙덩이를 들어올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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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정 축대 밑 감자밭을 가꾸는 가동댁이 감자밭 심은 감자씨가 몽땅 썩었어.”라며 속상해한다. 감자는 밑거름이 좋아야 알이 든다 해서 거름을 너무 많이 해 몽땅 썩은 것 같단다. 화산댁도, 목포댁도 심은 감자가 싹을 안 올려 씨감자마저 떨어졌으니 올 감자 농사는 손 놓았단다. 나도 덜컥 우리 감자밭이 걱정이 되었다. 눈도 뜨지 않은 감자를 심었고 남들보다 두 주일은 늦게 심은 터라 '씨감자네 땅속사정'이 궁금해서 손으로 파보니 그 무거운 흙덩이를 게딱지처럼 여리디여린 새싹들이 영치기 영차!” 힘껏 들어올리고들 있었다. 자연 사물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위대한 생명력이 새삼스러웠다.


데크 밑 화단에 루콜라씨를 심었는데, 고양이가 정식 화장실로 삼고서 흙을 파고 똥을 싸고서 다시 흙을 덮는 통에 내가 양파망으로 덮어 접근 못하게 조처하였다. 밥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저것들이 심술을 부리는지, 반려동물을 절대 안 키우는 우리 식구들이 길냥이들한테마저 호감을 안 보이는 것도 저것들이 느끼나 보다. 산골 삶이라는 게 식물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걸 고양이가 일러주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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