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일 화요일. 흐림
전년에는 3월 20일 전후하여 감자를 심었다. 석달쯤 지나 하지 무렵에 감자를 캐니 ‘하지감자’라고도 불러 가을에 거두는 ‘단감자’(고구마)와 구분한다. 초가을에 잉구씨가 휴천재 텃밭을 기계로 갈고 멀칭해주면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고, 최근 몇해는 꾀가 늘어, 김장이 끝나고서도 멀칭된 배추밭 이랑에서 비닐을 걷어내지 않고 두었다 이듬해 춘분이면 그 이랑 그대로 감자를 심어왔다.
‘씨감자’ 한 상자에 4만원. 우리 부부야 하지감자 2만원에 한 상자 사면 1년을 먹는다. ‘제발 두 노친네 고생하며 감자 심지 말라!’고 큰딸이 뭐라지만, 땅이 있는데 놀릴 수도 없고 시골 살며 농사일도 안 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 내 손으로 농사지어 식탁에 올라오는 푸성귀들을 보는 뿌듯함이며, 도회지 사는 지인들과 나누는 흐뭇함은 밭일 해본 사람만 안다.
손은 부지런하고 눈은 게으르다고 몇 날 며칠 텃밭을 내려다 보며 걱정만 하다가 새벽부터 일어나 어제 오늘 텃밭을 손질하여 감자를 놓았다. 어제는 이랑들을 손질하여 비닐을 씌웠다. 여름에 먹을 채소 심을 작은 이랑도 여섯 개 일구고 보스코가 퇴비를 끌어다 깔았다. 오후에는 둘이서 일하니 비닐 씌우는 일도 한결 수월했다. 보스코가 비닐을 끌어 펴서 이랑에 맞춰놓고 고랑에 뾰쪽 괭이로 작은 골을 내면 내가 호미질하여 비닐 끝자락을 흙으로 덮는다.
재작년에 남편(구장)을 여읜 한남댁이 지나가며 “둘이 하니까 훨씬 수월치요?” 부러운 한 마디를 건넨다. 휴천재 바로 옆의 고추밭에 겨우내 고춧대를 세워둔 채 넘기고선 고춧대를 뽑으러 올라온 길이다. 혼자 하는 밭일이 재미 없는지 두어 고랑 뽑다가는 내려가버린다, ‘동네아짐들이 마을회관에서 커피 먹으러 오란다’며.
남편 구장이 살아 있을 때는 일밖에 모르던 아낙인데 그 부지런이 남편의 채근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남편 없어 혼자가 되자 논일도 밭일도 흥미를 잃었나보다. 우리 집 옆논에 벌려 놓은 일이 단박에 끝내지 않아 지켜보는 내가 도리어 애가 탄다. 작년에 그 비싼 전동 소독기를 새로 사서 쓰고나서도 겨우내 밭에 버려두어 오지랖 넓은 내가 깨끗이 씻고 손질하여 집에까지 끌어다 줘야 했다. "혼자 사는 게 재미가 없고, 무얼 해도 재미가 없다"는 그미의 탄식을 듣노라면 내가 텃밭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다 남편의 옆구리에서 나오는 기운임을 알라는 깨우침 같다.
하던 일 잠시 멈추고 허리를 펴고 앉아 둘이서 간식을 한다. 서로 더 먹으라며 마주 보고 웃는다. 낮 온도가 23도가 넘어가니 하루 이틀에 텃밭 자두나무가 화안하게 꽃을 만개했고 두 그루 벚나무도 밭 가장에서 화려하게 핀데다 화단의 수선화도 만개하였으니 휴천재는 봄.봄,봄, 봄기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꽃보다 더 고운 게 마주 보며 웃는 부부의 정이다.
점심 국거리로 이장네 논둑에서 쑥을 뜯어 감자를 넣고 국을 끓였다. 뒤꼍에서 울릉도 취를 꺾어서 나물을 무치고, 곰취는 쌈으로 먹는다. 한 주간 내내 장보러 안 가도 지천에 먹거리다.
오후에는 씨감자를 쪼개는데 세 시간 넘어 걸렸다. 심으려면 세 배의 시간이 들 게다. 감자에 군데군데 올라오는 눈을 살려가면서 너댓 조각으로 갈라야 한다. 소독을 겸해서 잘라낸 면에는 재를 발라서 썩지 않게 손써야 한다.
오늘도 아침을 먹자마자 텃밭으로 내려가 8시부터 감자를 심기 시작했는데 저녁 6시에 끝났으니 점심시간 한 시간을 포함, 예상한 대로 10시간이 걸렸다. 보스코는 배나무 밑에서 자라 오르는 부추가 배나무 소독약 영향을 받을까 꺼림칙하던 터라서 부추밭을 옆에 새로 만들고 부추를 옮겨 심었다. 이어서 작은 이랑들에 어제 뿌린 퇴비를 괭이질하여 흙에 섞어 여름 푸성귀 심을 자리를 다 마련했다. 밭일이 끝났을 때는 너무 지쳐 밭고랑에 길게 눕고 싶었다.
어제 드물댁 큰딸이 전화를 하여 4월 4일에 수술 받으러 대구에 오신 엄마가 우리 텃밭 감자 심는데 도와주지도 못하고, 걷지 말라던 비닐을 걷어버렸으니 내 고생이 많을 거라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더란다. 오늘 텃밭 사진을 찍어서 오늘 하루에 밭일을 말끔히 끝냈으니 걱정 말고 수술 잘 받고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조금 뒤 드물댁이 전화를 해서 “꺽정했고만 매꼬롬하게 잘 혔고마.”는 칭찬을 했다. 내 걱정 않고 편히 맘먹고 수술받고 갈 테니 기다리라는 격려도 보내왔다.
둘이 일손을 놓고 간식할 때는 어디서 왔는지 고양이가 우리 둘을 쳐다 본다. 주부가 밭일로 바쁘다 보니 고양이 밥을 제대로 챙기질 못했다. 작년에 태어난 네 마리 새끼 중 둘만 살아남아 세 가족이 점심 무렵이면 부엌 뒷문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곤 한다. 우리 집 밭일 끝난 것을 반길 길냥이 가족이 하나 더 있다는 얘기다.
오늘 심은 감자를 하지에 캐고 나면 가을 김장 농사가 기다린다. 나도 밭도 다 삶에 계획이 있다. 어제 오늘 가지런히 다듬어져 감자가 심겨진 텃밭이 흐뭇하기만 한다. 저녁에 비가 온다니 새로 심은 감자도 옮겨심은 부추도 여유 있게 싹을 내고 뿌리를 내릴 게다. 역시 농사는 하느님이 지으신다는 이치를 새삼 깨닫게 만드는 곳도 시골 논밭이다. 마트에서 사다 먹는 푸성귀로는 하느님께도 농부에게도 고마울 게 도무지 없을 게다, 다 내 돈 내고 내가 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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