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312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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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무릎 수술을 받고 한 주간이 지나자 다리를 움직이는 게 어느 정도 자유롭다. 상처 때문에 거의 열흘 목욕을 못 했으니 찝찝하련만 내가 뜨거운 물수건으로 머리만 닦아주는 것으로 우선 해결해왔다. 어제는 세면대 앞으로 데려가 앉히고 머리를 감겨주었다. 


이발소처럼 뒷목에 수건을 걸치고 세면대에서 샴푸를 뿌려 거품을 냈다. 총각 때 그렇게 숱이 많던 머리카락이 이젠 정수리에는 텅 비고 양 옆으로만 하얀 머리털이 좀 남아있을 뿐. 문질러 씻어내도 한 줌밖에 안 되는 머리칼... 마치 엄마 떠난 차부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서글펐다. 오늘 아침에는 의사가 일러준 요량으로 스스로 샤워를 하고는 그도 기분이 한결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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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바람이 차지만 무릎이 괜찮은지 보스코도 어제는 텃밭 감나무를 잔동가위로 전지하였다. 오늘은 내가 택배 부치러 간 틈에 지팡이 짚은 세 발 걸음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이 아짐 저 아짐 고샅에서 만나는 여인들과 봄인사를 나누며 얘기하다 돌아왔단다. 남정네가 외간여자에게 말 거는 게 퍽 생소한 경상도이지만 보스코가 이 동네 20년 넘게 살며 인사를 나눠온 터여서 아짐들도 스스럼없이 대꾸를 한다어느덧 보스코가 문하마을에서 젤 나이 많은 영감이 되어 있다니! 또래로는 한두 살 적게 홀아비 허영감과 문정식당 김영감 뿐.


어제 간 '튼튼정형외과' 선생님은 보스코의 무릎수술과 회복이 잘 마무리되어 목요일쯤 실밥을 빼잔다. 80 넘은 나이에도 예상 외로 상처가 빨리 회복되었으니, 의사가 명의이거나, 환자가 잘했거나, 보호자가 정성이었거나, 이 셋 다거나 아무튼 마음 놓이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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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에서 돌아오는 길에 목현면사무소 앞에서 드물댁을 보았다. 아침 일찍 먹고 '노인일자리' 노동에 나섰으니 배가 고플 시간이라 지쳐 보였다. 군내버스를 기다리다 내가 차를 세우고 타라니까 흐뭇한 표정. 엄천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나니 화색이 더 돈다. 때마침 걸려온 딸의 전화에 드물댁의 의젓한 세 마디가 묵직하다. "나 아줌마 차 타고 온다, 아줌마가 점심 사줘 묵었다, 아줌마가 나 집에 데려다 준다."


호천이네에 보내려 오후엔 쑥과 나물을 뜯겠다니 그미도 따라나섰다. 한남댁네 논두럭은 제초제를 안 뿌려 안심하고 쑥을 뜯을 수 있다. 바위 사이에 소복히 올라오는 달래는 덤이다. 민들레가 오글오글 꽃송이를 품고 있어도, 잎이 부드러워 요즘은 살짝 데쳐 초장에 무쳐 먹으면 상큼하게 입맛이 돈다텃밭에 실하게 자란 쪽파도 한 단 뽑아 깨끗이 다듬어 깠다나와 드물댁 두 여자가 오후 나절에 사과박스 하나에 가득차게 봄을 챙겼다.


함양군에서 3KW 발전되는 '태양광'을 신청하라고 작년에 공지했기에 친환경적 시설이라 신청을 했더니, 정부지원 마지막 기회라면서 금년에 채택되었다. 600만원 공사비에 나는 120만원을 부담한단다. 그런데 전날 시공회사에서 사람이 와서 기둥 세우는 기초를 하고 갔는데 파낸 흙과 콘트리트 조각을 수북이 쌓아 놓은 채 돌아갔다. 보통은 공사비에 폐기물 처리비가 포함되기에 흙을 치워달라고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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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셨겠지만 젊은이 둘이 폐기물을 치워주러 어제 왔다. "이런 것 치워달란 사람 첨이요." 라더니 대뜸 그 흙더미를 아래 밭에다 버리겠단다. '내가 싫어 버리는 폐기물을 이웃집 밭에다 버리겠다'는 말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젊은이들은 트럭에 실어 갔다. 건축물 폐기장까지 갔으면 좋겠다. 태양광 설치장 밑에는 전면에 콩크리트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해 인터넷 어디를 찾아봐도 '태양광 관급공사 매뉴얼'은 안 보인다. 군청에 가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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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캔 봄나물들을 손질하여 포장하고 말려둔 시레기, 고사리, 피마자, 토란대들도 물을 뿌려가며 박스에 담았다.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되지만 봄과 함께 부치는 마음이다. 달래 한 뿌리를 캐도 그 가느다란 줄기, 달랑 붙은 구슬 뿌리, 그 밑에 소담한 수염까지 어느 것 하나 안 상하게 공들여 캐내는 정성만으로도 부자 되는 기분이다.


오늘 오후 목현 농협에 가서 택배를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노인일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려던 드물댁과 함께 일을 마친 동호마을 아짐 셋도 태워드렸다. 여든 살 안팎으로 모두 홀몸 된 할매들이다일본의 어느 사회조사에서 남자는 아내가 살아 있어야 평균수명보다 오래 살고여자는 남편이 죽고 없어야 오래 산다는 통계가 나왔다는데...


할매들이 얘기론 '그래도 면에 나와 함께 움직이며 숨도 쉬고 돈이라도 받으면 사람 사는 맘이 든다. 종일 누워 있다 보면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감이 안 온다.' 그래서 드물댁도 성치 않은 몸으로 일터에 나가는데, 딴 아짐들이 번갈아 그미의 머릴 쓰다듬기도 한단다. 가엽다고, 힘내라고 노파들끼리 나누는 삶의 기운 곧 생기이겠.


내가 이번 주말에 서울 간다는 얘기를 들은 드물댁이 오늘 오후에도 쑥을 캐왔다. 날씨도 을씨년스러워 나는 서울 나들이 전에 으레 하는 홑이불 빨래, 집안청소, 냉장고 비우기, 쓰레기 분류로 바빴는데 드물댁이 입술이 파래져서 앞치마 가득 담긴 쑥을 보여주었다. "요곤 나 밥 사준 큰딸 꼭 주소!" 이건 그미가 띄우는 봄 소식이자 배달사고 내지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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