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5일 일요일. 밤새 눈 오고 하늘은 잔뜩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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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먼산 지리산은 새하얀 눈을 이고 우리처럼 땅에 가까운 마을은 후두둑 비가 내렸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문정리 앞산 와불산 자락엔 안개 화관을 쓴 성질 급한 봄이 빗물 속에 몸을 담근다. 진이 엄마는 "속절 없는 겨울 장마에 블루베리 뿌리가 썩을까 걱정이고, 양파 농가도 녹아내리는 양파 모종에 애가 탄다."며 한숨짓는다. 시골에 살아 좋기도 하지만 농촌 속사정을 아는 나로서는 그저 낭만에 젖어 즐기기만 할 처지도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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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지리산 종교연대'는 김호열 목사님이 운영하는 '두레마을'에서 2024년 총회를 했다총무 노재화 목사의 희생적인 봉사와 실상사 수지행의 노력으로 모임은 운영되고 우리들은 그저 그들의 수고에 얹혀 흘러간다.


그날 두레 마을은 새벽부터 내린 눈에 하얗게 갇힌 설국이었다. 나무며 바위며 집지붕을 덮은 눈이불이며, 봄꽃을 머금은 가지들 위론 눈꽃이 찬란했다. "오늘 우리를 위해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마련하셨나요?" 라는 내 찬사에 김목사님은 하늘을 가리키며 "하늘의 아버님께서 신경 좀 쓰셨나 봅니다."라고 대답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지리산 일대는 눈만 오면 핸폰에 어느 언덕, 어느 고개가 교통통제 되었다는 문자가 뜨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 눈에 갇혀 설산을 만끽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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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전년도에 '종교연대'가 한 일을 점검하고 금년에 할 일을 의논했는데 구례에서 온 '지리산 사람'의 구심점 윤주옥 선생과 협업을 논의하며 훨씬 수월하게 풀렸다. 산청 성심원 원장으로 9년만에 다시 온 엄수사님의 활약으로 가톨릭의 종교연대 참여가 훨씬 활달해질 전망이다.  점심은 두레마을이 차려준 비빔메밀국수를 먹고 이어서 회원들의 근황을 들었다. 다들 바삐 살지만 의미를 찾는 발걸음이기에 모두 손잡고 갈 수 있다. 모든 회원이 보스코(최고령)의 건강을 염려해준다.


돌아오는 길은 막 통제가 풀린 오도재를 넘었다. 그런데! 201622일 나무가 몽땅 크리스탈 샹데리아로 변한 얼음 궁전을 구경한 후 처음 본 찬란한 눈 얼음 세계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마다 가득 얹힌 눈이 녹다 가지와 잎에 말갛게 얼음으로 얼어붙은 장관이었다. 우리 둘은 탄성을 올리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진주에서 돐 지난 아가를 데리고 눈 구경을 온 부부를 보니 우리 나이에 이리 좋아하는 모습이 철없어 보였지만 아무럼 어떠냐, 이 장관을 꾸며주시는 분 앞에서야 우리 모두 강아지마냥 철없이 뛰며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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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우리 이웃 동네 한남마을 '지리산리조트'에서 개체된 '지리산 사람들'의 연례총회에 들러서 윤주옥, 정재욱, 최세연씨 등 전국에서 모인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저녁을 들며 2010년대 내내 '지리산둘레길'을 걷던 '만인보'의 아련한 추억을 나누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산처럼 든든하다.


24일 토요일 대보름. 금년 대보름은 찰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따로 없어 일단 냉장고에 들여놓았다. 그런데 미루네도 임신부님댁도 보름을 안 먹었다고 해서 이 근방에서 그래도 제일 나물을 잘하는 엄천식당에 모였다. 미루도 인천사제단 피정을 마치고 전날 밤 돌아온 터라 나물 할 시간이 없었고 신부님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 여섯은 식당 여주인이 주는 보름 점심을 뚝딱 비웠다. 식혜도 한 잔 씩 마시고 이사야만 다른 모임이 있어 서둘러 가고 우리 다섯은 어제 우리가 본 오도재 크리스탈 얼음 궁전을 다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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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가꿔 놓은 산과 나무들에, 눈과 얼음으로 꾸민 세계에, 우리 노년에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정신 없이 셔터를 눌렀다. 내려오다 지리산 전망대에 새로 차린 '오도재 카페'에서 멀리 지리산을 건너다 보며 우리가 본 설경을 다시 볼 날을 기대해 본다. 8년전에 보았으니 운수 좋으면 8년후(2032?) 또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우리 욕심에 보스코가 빙그레 웃는다.


대보름이어서 면마다 달집태우기를 하면서 떡국에 돼지 잡고 시루떡을 했다고 우리더러 오라는데, 이젠 나도 하루에 두 탕 뛰기는 힘들어져 집에서 깍뚜기나 담갔다. 낼모레, 보름나물과 찰밥을 못 먹은 이웃 친구들이 휴천재를 예약했다.


사순제2주 보스코의 복음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85

25일 일요일. '서울 빵기네집' 초대 집사(15년전) 송총각, 이제는 송면규 목사님이 어엿하게 김제 백구면 마산리에 있는 '난산(卵山)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전날 24일에 취임했다


얼마나 기쁜 일인지 오늘 김제에 가서 주일 미사 대신 주일 예배를 함께 보았고, 예배 중 신임 송목사님의 초대를 받아 보스코가 강단에 올라가 덕담을 했다. 어찌나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는지, 송목사님이 어쩌면 설교와 사람들과의 대화를 그리 잘 엮어가는지 고맙기만 했다


보스코의 신앙의 뿌리는 개신교다. 그의 할아버지가 1910년대에 장성 소룡리에 장로로서 교회를 세워 목사님을 초빙했고, 1940년대에는 아버님이 논 팔아 집 팔아 내놓은 헌금으로 남원 수지교회가 터를 장만하여 오늘에 이른단다. 우리 친정 부모님도 감리교 장로로서 이곳저곳 이사 다니시며 다섯 군데에 교회를 세우고 신축하신 일을 늘 자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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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후 식사와 차대접을 받으며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과 송목사님의 부목 생활을 들었다송총각이 결혼하여 낳은 세 아이 예준,하준, 막내딸 하은은 하늘과 땅의 축복 속에 곱게 잘 자라고 있었고,부인 선영씨는 목사 사모로, 난산교회 주일학교 교장으로 남편과 함께 새 일을 성심성의껏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돌아오며 차 속에서 바치는 로사리오로 우리 서울집을 둥지로 삼다가 자기들의 세계로 떠나간 집사들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기도해주었다.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 주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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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에서 돌아오는 길에 임실에 들러 김경일, 문정주 섐을 만나 새해와 보름 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며 그간에 주변에 생긴 일들을 나누었다. 친구 일을 당신네 일처럼 염려하고 이끌어 주는 그 섬세한 우정에 고마울 뿐이다


돌아오며 보니 오늘 아침에 지리산과 덕유산을 신비경 속에 꾸며준 눈은, 남원을 거쳐 지리산 휴계소를 지났는데도, 어디에도 흔적을 보이지 않을 만큼 다 녹고 없었다. 모든 아름다움은 시간과 함께 '봄눈 녹듯' 소멸하고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의 추억과 꿈으로만 영원히 살아 숨 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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