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22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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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래층, 위층, 복도 거실이 온통 긴기아난 향기로 아찔하다. 용케 시간을 아는지 새벽 너댓 시부터 향기를 내뿜고 해가 한창인 오전은 절정에 이른다. 반면에 오후 서너 시면 시장 좌판을 걷고 자리를 정리하는 장꾼처럼 난의 향기도 슬그머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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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미물들이 어찌 시간을 잴까? 반면에 분꽃은 해가 뜬 낮 시간 종일 얌전하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봉우리를 열어 깜깜한 곳에서 현란한 향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분꽃을 '밤에 더 아름다운 꽃(la notte-più-bella)'이라는 구체적 이름으로 부른다.


하얀 학들이 하얗게 날아오르던 게발선인장이 다 져서 벽돌방으로 가져다놓고 막 피기 시작하여 향기가 가장 진한 긴기아난을 그 자리에 놓는다. 꽃 진 화분을 내갈 적마다 그 아름다운 꽃을 피워준 꽃나무에 감사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에서) 감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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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2시에 산청 '금수암' 앞에 있는 '자연바루'라는 곳에 초대받아 갔다. 사찰 요리의 대가 대안(大安)스님이 음식을 직접 마련하는 곳에서 김승임씨 제낭 강기훈 교수 부부의 초대였다. 김승임씨 부부와 두 부부의 오랜 벗으로 보이는 한 부부와 사찰음식을 먹었다. 늘 정갈하고 부담이 없어 식사 후에도 기분이 좋다. 주로 풀만 먹는 우리 식탁과 비슷하여 친밀감이 있다.


강교수 부부는 산청살이에 흠뻑 젖어 자연과 이웃과 공존하는 삶을 만끽하고 있다. 역시 아내가 좋아해야 귀촌생활에 성공한다는 말에 귀감이 되는 부부이다. 특히 처음 소개받은 성경모-정남수 부부도 이곳 삶에 푹 젖어 환경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며 자연에 취해사는 행복한 모습이다


사찰요리의 대가 대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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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에 어디서 누구가 오든 본인만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넉넉히 품어주는 듯하다. 그래서 긍정적인 사람들 주변에는 긍정적인 기운이 돌아 비슷한 심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따스하게 모여든다. 어제 받은, 우리가 애정하는 시인 임보 선생님의 시집 짚신과 장독에 실린 시구 그대로 모든 만남이 "억겁의 선과가 빚어낸 기적"임을 절감하는 지리산 속의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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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큰 사건인가?

천상의 두 별들이 만나는 것 못지않은

눈부신 기적이다.

자기가

서로 평생을 두고 내왕하는 건

생애의 소중한 시간들을

서로에게 할애하는 황홀한 자선이다....(임보, "만남의 기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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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산청 왕산 기슭에 있는 김승임 화백의 집에 들렀다. 그곳은 게르마늄이 그득한 백토가 흙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보통 흙을 퍼다 깔아가며 상자 농사를 짓고 꽃들을 무성하게 키우고 있다. 집안 가득 '겨울정원'을 이루고 있다.


들고양이가 겨울을 나기에 도움을 주려고 사방에 고양이 노숙시설을 만들어 놓고 먹이도 준다. 밤에는 퇴근해 집안에 들어와 자는 개 두 마리는 아침이면 '출근하는' 집을 따로 지어주었고, 그 개집 위에서 승임씨가 화실을 차리고 넘어가는 서양 해를 보며 그림을 그린다. 그 집에는 화가와 건축가가 상상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차와 과일을 먹고 두어 시간 놀다가 돌아오는데 좋은 친구들을 만나 보스코의 얼굴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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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강기훈 교수의 부친 강환섭 화백(1927~2011)의 판화와 유화들을 모아 만든 화집 강환섭. 생명과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모시는 사람들)을 선물 받았다. 한 시인이 걸어온 세월을 따라 그의 미술세계에 빠지기 꼭 참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잠자리에서 잠들기까지 드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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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이 무척이나 지친 얼굴이기에 그미의 큰딸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담낭에 돌이 있단다. 오늘 셋째딸이 와서 대구로 모셔갔는데 내일은 수술을 하고 며칠 쉬다가 온단다. '너무 지쳐 보이니 영양제라도 놔드리라' 했더니 지난번에도 두 번 놔 드렸단다. 그러고서도 '링거 맞았다'는 얘기를 안 하는 건 그 약 이름을 잊어서 일 게다.


오늘도 지리산에는 종일 비가 내리고, 우리 집사 안젤라가 띄운 사진에는 봄비가 서울집에선 눈이 되어 쌓인 나무가지가 황홀하다. 앞집이면 가서 눈구경이라도 하고 올 텐데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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