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15일 목요일. 비바람


창밖엔 비가 주룩주룩. 입춘이 지났으니 봄비겠지? 봄을 데리고 찾아오는 고운 발걸음에 뜰에 수선화 순들이 뾰족뾰족 얼굴을 내민다. 낼모레 영하로 내려가면 고생해서 밀어올린 예쁜 꽃송이들이 얼어서 떨어질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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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기도를 하는데 찬성이서방님이 전화를 했다. 동서 병원 치료 문제다. 내가 큰며느리다보니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면 의논해 온다. 동서도 오랫동안 폐암이었는데 수술할 만한 병세가 아니어서 7,8년 미뤄 오다가 이제야 수술이 가능하게 응집한 상태에 이르렀단다. 그런데 연세대병원에서 중성자치료설비를 준비 중이라 그 치료를 받아보려고 한단다. 한번에 5000만원! 암덩어리만 표적 삼아 태워버리고 환자에게는 별 고통이 없다나? 그런데 3월에 설비시설이 완료된다더니 4월이나 5월 언제일지 모른다고 하더라나? 그렇게 한번 조사(照射)로 깔끔하게 해결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몰릴까?


동서 나이가 80이니 암을 그대로 놔둬도 지금까지의 진행속도로 보아 5~7년은 더 살 텐데. 수술을 해서 몇년을 더 살지 모르지만 항암에다 방사선 치료를 보태면서 7년을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을 위해, 지금의 상태로 지내는 게 낫겠고, 그러다 10, 15년도 더 살 텐데. !’이라는 한 마디가 주는 충격이 온 가족을 뒤흔들고 경제적 부담을 얼마든지 쏟겠다는 자세로 전환시키는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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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는 결정하는 부담을 자녀들에게 떠맡기지 말고 부부간에, 남편이나 부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부부가 0촌인 이유는 둘이 한 몸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배우자가 갈지자로 흔들리면 자녀는 효도라는 짐을 져야 해서 모든 희생을 불사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기 십상이다.


한번 의사를 정하면 믿고 모든 걸 의논하고 맞기는 게 우리 부부의 투병 원칙이다. 보스코도 폐암 진단이 나왔을 때 담당의가 삼성이나 서울대 병원 등을 소개해 줄 테니 가려면 가시라했지만 주치의보다 더 잘 알고 더 정성껏 돌볼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믿고 맡겼다. 그 다음은 하늘에 계신 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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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드물댁이 한길에 서서 창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0여년 전, 문상 마을에 두 남매가 살러 왔다. 부모가 이혼하고서 시골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한테 두 남매를 맡기고 아빠는 도시로 돈 번다고 나가 소식이 끊겼다나? 두 아이는 등교 때마다 우리 집 뒤 언덕 비탈에서 진이 진호 오누이가 엄마 아빠랑 오손도손 밥 먹는 광경을 부러운 눈으로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드물댁을 들어오라 해서 장에 좋다는 무차를 한 잔 건네고 함께 산보하자 권했다.


먼 옛날 세 남동생은 고아원에 맡겨지고 큰아들인 보스코만 홀어머니 곁을 지키며 살던 초등학교 시절. 점심 도시락은커녕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 골목길을 나오면 같은 반 친구집이 골목 끝에 있었단다. “기주야, 학교 가자!”부르면 기주 아침 먹는다. 들어온나.” 할머니가 부르시면 들어가 온 식구가 밥 먹는 옆에 앉아 기다렸단다. 보스코네 사정을 아시던 할머니는 당신 잡수시던 쌀밥을 큰 숫갈로 덜어 당신의 국그릇에 말아보스코 앞에 내미셨고, 보스코는 염치 없이  얼른 받아 맛있게 먹었다던 추억담도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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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네 할머니의 그 따순 밥상을 잊지 못하던 보스코는 그로부터 60여년 지난 2017년 수소문해 찾아낸 그 친구를 제주에서 만나 점심을 대접하며 할머니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문상마을 그 어리고 외롭던 오누이는 할머니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두 초딩이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다 서울 사는 고모가 와서 할머니도 두 아이도 데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지금쯤 어엿한 총각 처녀가 되어 잘 살고 있으리라.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0517


드물댁이랑 동네 고샅길을 걸어, 휴천강 다리를 건너, 맞은편 공작 키우는 집으로 올라가 정자에 앉아 있다 돌아왔다. 나로서는 평소 산봇길 반쯤만 걸었지만 아줌마가 힘들어해 자주 쉬었다. '내일 콩나물밥 해 줄께 달래나 캐다가 달래장하자니 반색을 한다. 낼모레는 냉이를 캐서 된장찌개도  해먹잔다. 아짐들 밭에는 달래 냉이 노랗게 꽃핀 꽃다지가 가득하다. 매화나무도 며칠 새 몽우리들을 떠뜨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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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요일, 아침엔 날씨가 맑아 보스코 서재의 유리창을 밖에서 닦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돌풍이 불며 소나무 언덕을 뒤흔든다. 미친듯 몸을 흔들어대는 솔숲을 보며 내 속에 앙금으로 가라앉은 '속없는' 생각들을 신나게 날려버린다. 마음 무게가 가풋해진 만큼 몸도 가지런히 개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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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엔 무차를 만들려고 예냉고에 보관 중인 무 열 개를 꺼내다 크게 썰어 건조기에 넣었다. 내일은 다 마르면 구수하게 덖어 겨우내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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