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4년 2월 11일 일요일. 맑음
아들이 오면 그동안 두 노친의 숙원사업들을 해결할 기회가 된다. 보스코는 자기 컴퓨터의 문제들을 메모해 두었다 해결을 부탁한다. 나는 하루에 열 시간이나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그에게 금년 '영명 축일' 선물로 빵고신부에게 부탁해서 아주 값비싼 (손목을 돌리지 않고서도 붙잡는)마우스를 선물했다.
늘 다이소에서 5000원 짜리를 사주다가 그것의 스무 배 넘는 마우스를 움직이며 수도자다운 말투로 "너무 과한 것 아니야?"라고 내게 묻는다. "아뇨, 당신은 그보다 더 좋은 것도 받을 자격이 있어요." 내가 단호하게 하는 말에 그가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너무 짠순이어서 그가 손해를 보는 일이 많다.
본가 방문 와서 쉬면서 TV라도 보려던 빵고신부가 "엄마, 어떻게 이런 TV를 보셔요? 연결되는 프그램도 없고, 화면에 줄이 죽죽 가고 얼룩덜룩한데 이것 사신지 몇 년이나 됐어요?" 묻는다. 이 집을 짓고(1994) 샀으니까 한 30년은 족히 됐다. 내가 보고 싶은 방송이 별로 없어 작심하고 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들은 이리저리 만져 보다 한 60인치 짜리 스마트 TV 하나 사자 한다. 그러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최소한 윤가의 얼굴을 봐야 하는 고통은 못 견디겠으니 그자가 물러가기 전에는 안 사겠다고 했다.
그제 아침에는 그 동안 휴천재 숙원 사업이던, 마당에 차길로 쓰다가 야자 매트를 까느라 거둬낸 판판한 돌을 텃밭 창고 '미루네집' 앞에 실어다 까는 일. 우리 둘이 하려 해도 무겁고 힘에 부쳐 차일피일 미루던 참이었다. 한 시간 만에 판판한 돌바닥이 창고 앞에 개설되었다. 아들더러 "설이라고 쉬러 왔는데 일만 시켜 미안하구나." 했더니, "돈보스코 성인께서 살레시안의 휴식은 한 일에서 다른 일로 옮겨가는 거다 하셨어요." 란다. '살레시안 휴식'치곤 좀 과했던지 등에는 파스를 붙이고 진통제를 먹는다. 돌판들이 하도 무거워서 젊은이에게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점심을 먹고서는 휴천강가로 작은아들과 산보를 나갔다. 겨울이 끝나가며 청둥오리와 깃털이 아름다운 날새들이 한가롭게 휴천강에 떠다니며 물고기 사냥을 하고 있었다. 저것들도 봄철이 오면 추위를 피해 내려왔던 저 시베리아로 떼지어 돌아갈 테지. 휴천강 상류로 사냥을 갔는지 전날 보이던 수달 부부도, 함께 이동하던 두루미도 안 보인다.
토요일.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 11시에 세상을 떠나신 조상님을 기억하는 미사를 드렸다. 시댁과 친정의 부모님들과 그 위의 조상님들을 기억했다. 훈이댁도 부모님을 기리며, 함께 미사를 드린 소담정 도메니카도 돌아가신 집안 어르신들과 형제간들을 위해서 미사 지향과 예물을 올렸다.
설날 점심상을 차려 작은아들과 도메니카랑 함께 들었다. 빵고신부도 안 오고 이웃 도메니카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설날이 쓸쓸했을까! 이웃도, 아들도 귀하디 귀하다. 몇 해 전까지는 준이, 찬성이, 훈이 서방님들이 가족을 데리고 휴천재를 찾아와 설날과 추석을 보냈고, 어느 해부턴가 설날은 각자가 지내고 추석만 모였는데, 코로나를 지내면서 그 자리마저 없어졌다. 그러나 어제도 찬성이 서방님, 훈이 서방님이 전화로 설날 인사를 해오고 멀리 사는 큰아들 빵기네 가족도, 조카 해영이, 깡고와 심지도 화상통화와 전화로 설날 세배를 해 왔다.
휴천강 겨울새 (최상두)
점심을 먹고서 작은아들이 설 선물로 우리 둘을 남원 NH 시네마로 데려가 영화 구경을 시켜 주었다. 먼 옛날 TV도 없을 시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도 '설날의 영화 구경'은 커다란 호사였다. 설이나 추석이면 시골 동네에 '활동사진'이 찾아와 해 지고 나서 장마당에 높은 텐트 가림막을 세우고 가마니와 멍석이 깔렸다. 멍석을 빌려주던 집집은 두 장의 공짜표가 나왔다.
장마당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교장 사택에 살던 내게는 영화감상은 '그림의 떡'이었다. "한밤중에 무슨 기집애가 영화구경 가겠다는 희안한 꼴을 다 보겠네."하시던, 20세기 초반의 엄마와 나는 항상 말싸움을 벌였고 나는 결코 엄마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 추운 설날 밤 장터에서 들려오던 확성기 소음이 저녁 내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엄마를 원망하게 만들던 추억이라니...
어제 본 영화는 『찰리와 초콜릿공장』의 캐릭터 '윌리 웡카'의 젊은 시절을 다룬 작품 『웡카』였다. 설날이고 뮤지컬이고 가족 모두가 볼 수 있어 할머니와 너댓 살 손주까지 집안이 총출동한 모습들이었다. 우리마저 한몫 했으니 완죤 '가족영화'랄까. 그러나 나는 1도 재미없었다. 우리와 세대가 다른 빵고신부는 영상과 그래픽과 뭣뭣이 재미있었다 했고, 보스코는 아들이 재미있다니까 예의상 재미있단다. 차라리 윤희씨가 봤다는 『소풍』(우리 늙은이들 영화)이 더 나을 걸 했는데, 그건 빵고신부가 싫다고 했다.
오늘 일요일. 8시 집에서 미사를 하고 점심은 셋째딸 '귀요미'가 우리 두 노친과 설 휴가 온 '어쩌다 동생' 빵고신부에게 우아하고 걸게 설상을 차려 점심을 대접했다. 점심 후 빵고신부는 2시 30분 버스로 서울로 돌아갔다. 7시가 되니 그다지 밀리지 않고 관구관에 도착했다는 아들의 목소리가 편안하다. 이젠 수도원이 그의 집이다.
작은아들도 떠나고 남은 우리 둘은 앞산을 소리 없이 마주 보며 남겨져 있다. 요 며칠 동네 고샅을 가득 메우던 차량들도 대부분 떠나고 다시 고요가 마을을 찾아왔다. 자식들이 비록 떠났지만 우리 둘 만이어도 그리 외롭진 않다. 아직은 이 고요가 좋다. 둘 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충만하기 때문이리라.
휴천강 겨울새(최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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