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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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동쪽 하늘에 비둘기 모양의 붉은 구름이 뜨고 그 구름을 향해 해가 솟아오른다. 자연으로는 평화가 땅에 가득한데 지구에 저쪽 끝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인 수백만명을 다 죽이겠다는 기세로 폭격하고 전세계, 특히 그리스도교 세계라는 유럽은 그 극악무도한 민간인 학살을 팔장끼고 구경하고 있다


하느님도 싸움이 멈추었으면 하시겠지만 당신 선민(選民)’이라고 버릇을 더럽게 들여놓으셔서 끝장이 어딘지 모르겠다. 더구나 태극기에 성조기에 이스라엘기까지 흔들고 다니는 무리가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는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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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왕산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는 시각에도 비둘기 형상 구름이 달 위에 떠 있다. 해가 지고 달이 떠도 미국을 등에 업고 미국의 모든 무기를 원조받은 이스라엘의 인간 사냥이 그치지 않는 뉴스에 보스코처럼 눈꼽만큼이라도 의협심이 있는 남자 사람이라면 잠 못 이루는 밤이 밤으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런 남자 곁에서 쪽잠을 얻어 자야 하는 여자 사람 역시 지난 한 달 언제 깊은 잠을 잤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성경을 봐도 주 하느님께서는 남자 사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게 하시어 그를 잠들게 하신 다음여자 사람이 창조되는 것으로 나오는 터에...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차니 제발 밖에 나오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떠밀어도, 아내가 김장철을 맞아 부엌으로 텃밭으로 감동으로 쉴 새 없이 바스락거리니까 보스코도 아내 눈치를 보느라, 뭔가를 돕는 시늉을 하느라 좌불안석인가 보다. 그러나 그의 가사돕기(본인은 가사를 돌보는 틈틈이 공부를 하노라지만)는 늘 2%가 부족해서 주부를 당혹스럽게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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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캐고 도려낸 무청 시레기는 해마다 보스코가 정자에 걸어서 말린다. 보름 전 대나무에 걸쳐 널었던 것은 이번 서울 나들이 동안 지리산 새파람이 한 가닥도 안 남기고 다 날려 버렸다. 이번 김장에 생긴 무 시레기 너는 일에는 철학교수 다운 머리를 써서 대나무에 걸어, 노끈으로 감고, 시레기 앞뒤로 망사를 씌워 놓고는 자랑스레 나를 바라본다. 정자가 지붕채 날아가기 전엔 시레기 한 가닥도 날아가지 않겠다.


친구 아들은 백김치가 먹고 싶다는데 친구는 그런 김치를 담가줄 의사가 전혀 없는 듯해서 마음 약한 내가 김장에 남은 배추를 뽑아 절여 밤늦게까지 백김치를 담갔다. 내 오지랖을 지켜보는 보스코는 말려서 될 일도 아님을 50년쯤 익힌 터여서 그냥  놔두고 '잘한다 잘한다(brava! brava!)'로 그치면서도 좀 딱하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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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로 가톨릭의 '연중시기(年中時期)'는 끝나고 오늘부터는 성탄절을 준비하는 소위 '대림절(待臨節)'. 공소 제단과 휴천재 식탁에 '대림초'를 만들어 세우는 행사는 해마다 내 몫. 강 건너에 가서 편백나무 가지와 남천나무 열매를 꺾어왔다. 어젯밤 11시나 되어 작업이 끝났는데 오밤중에 공소까지 내려가 제대 앞에 놓았다


제대 앞에 꾸뻑 절을 하며 "예수님, 제가 좀 극성이죠, 이 늦은 밤에?"라며 쑥스럽게 웃으니, 그분도 "누가 널 말리겠냐?" 하시는 표정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예수님 탄생을 '하느님의 오지랖'(정확하게는 '하느님의 인간 체험' 내지 '하느님 외아드님의 가출')이라고 표현하신 적 있다. 남편은커녕 나를 만드신 분도 나를 말리시지는 못하고 그저 잘한다! 잘한다!’ 하실 수밖에 없으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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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림 첫 주일이어서 공소에서 임신부님 미사가 있었고 그 기쁨을 나누는 뜻에서 미사 후 나누는 아침식사는 여느 때처럼 서로가 정성껏 마련해 온 음식을 흐뭇하게 나누는 아가페가 되었다. 공소 안식구들마다 보스코의 훌쩍 여윈 얼굴과 쑥 들어간 배를 두고 한 마디씩 한다. 딸들도 여간 걱정이다.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올라오는데 구장댁이 읍내 사는 아들과 배추를 '빼고' 있다. 비료를 잔뜩 먹은 그 집 배추는 우리 배추 두세 배는 될 만큼 비만이다. 그미네 밭 무도 마찬가지. 구장댁은 보스코의 입원소식을 듣고  서울로 전화를 걸어 "아이고, 사모님, 교수님 어찌 된교? 괜찮으신가요?" 안부 전화를 길게 걸어온 이웃사촌이다. 작년에 그미의 남편이 간동맥의 파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그만큼 놀란 터였으리라. "교수님 같은 분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셔야 하는데..." 나에게 격려의 한 마디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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