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일 화요일. 흐림


뒷집 연립이 지은지 20년도 못 됐는데, 옥상에서부터 지하실까지 온전한 데가 없다. 비가 내리면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보다 그 집 옥상에서 상철 홈통 바닥으로 쏟아지는 물소리가 더 요란스러워 잠을 깬다. 주인 하나가 사는 단독주택이라면 벌써 고쳤을 곳도 서로 바라다만 보고 손도 못댄다. 공동주택일수록 이기심과 개인주의가 발휘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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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도 그 빗소리에 눈을 떴다. 지리산에서는 며칠 전에 기온이 내려가 동네 아짐들이 무 배추를 다 뽑았는데, 교수댁은 뭐하냐고 성화란다. 드물댁에게 전화해서, 내가 내려가자마자 김장할 테니 정자에 매달린 마늘을 까달라 부탁했다. 지리산에도 비가 온다니 텃밭에 무 배추도 얼었으면 그때까진 다시 녹기 기대한다.


어제 오전에 이엘리가 체칠리아씨와 다녀갔다. 지리산에 내려가기 전 아부이가 얼마나 회복되셨나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명목이니 참 갸륵하다. 한 시반쯤 전규자 목사님이 두손치료를 하러 남편과 도착했다. 청송에서 새벽부터 달려왔으니 그 정성만으로도 보스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어야 한다. 두 시간 반을 부드럽게 온몸의 혈을 찾아 만져 주고 풀어주고 갔다. 전번에는 명현반응으로 당일 밤은 전혀 잠을 못 자더니 이튿날은 이틀 분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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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두 번째여서 더 나을 듯하다. 목사님은 당신 몸도 불편한데 불편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니 그게 불쌍한 사람을 가엾이 여기는, 다정불심(多情佛心)이다. 겨울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길을 멀리 청송에서 와서 김포로 떠나는 전목사님 부부를 보며 부부 동심이 아니면 못할 일이다 싶다.


우리 서울집 초대집사(2009-2011)에 해당하는 송총각이 서울에서 오랜 부목의 과정을 보내고 드디어 김제의 난산교회 당회장 송면규 목사님으로 초빙받아 온 가족과 떠나는 반가운 소식이 왔다. 더할 나위 없이 충실한 목회자로 살아가실 분이라 함께 즐겁다. 총각 하나를 다섯 식구로 불려주신 주님을 참 잘 섬길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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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밥을 먹고 났는데 느닷없이 전기가 나간다. 참 오랜만이다. 고장신고도 안 받고 와이파이가 안 터지니 인터넷도 볼 수가 없다. 얼마 후 마을 입구부터 깜깜한 밤길을 걸어 올라온 안젤라 얘기로는 저 아랫동네는 단전이 복구됐다는데 우리 동네는 깜깜하다.’는 소식.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아파트 주민은 이럴 때 평균 15, 심지어 30여층을 걸어 올라가려면 힘 좀 들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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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두우니 하늘의 별까지는 아니어도 전깃줄에 목메단 보름달은 엄청 잘 보이더라나. 회사를 힘들게  퇴근한 안젤라는 촛불을 켜고 밥을 먹다 분위기가 그럴듯하다며 맥주 캔을 딴다. 역시 젊은이들은 멋을 즐길 줄 안다. 나갔던 전기는 두어 시간 후 들어 왔는데, 대도시의 정전은 없을 땐 그토록 아쉽다 다시 들어오면 시장 갔다 돌아온 아내 만큼 시큰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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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빨리 내려가려 아침 일찍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9시에 떠나나 10시에 떠나나 11시에 떠나나 서울을 벗어나는 시각은 똑같이 12. 지구상에서 이렇게 복잡하고 사람들이 늘 무엇엔가 쫓기듯 몰려다니는 도시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우리가 이번에 병원 응급실을 찾아 남원에서부터 미친 듯 달려 서울엘 왔는데, 지방 도시의 ‘응급의료시스템의 붕괴가 사람들을 이리 당황케 하는 줄 예전엔 몰았다. 사람은 늙을수록 자연을 바라보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 속에 살고 싶은데, 보스코가 몸에 다시 이상이 생긴다면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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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에서 의정부로 돌아 중부선으로 서울을 벗어나고 대전을 지나 대진고속도로에 들어서면 차량은 절반으로 아파트 군상이 사라진 자리에 산들이 우뚝우뚝 줄을 선다. 산들을 마주하는 순간 오랜 동지의 어깨에 손을 언듯 가슴은 벅차 오른다. ‘그래, 급해서 서울 가다 도중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지리산은 떠나지 않겠다.’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휴천재에 도착하니 다른 집 텃밭의 무는 모조리 뽑혀 김장이 되었거나 땅 구덩이에 묻혔다. 드물댁이 마늘을 까놓고, 텃밭 쪽파도 뽑아 다듬어 놓았다. 저녁에 마늘 생강을 갈고, 젓갈은 끓여 받히고 침실로 올라오니 밤11


다섯 시간 운전을 하고서도 김장채비까지 해낼 체력을 주신 울 엄마가 새삼 고맙다. 경기도 그 강추위에 해마다 혼자서 150포기씩 김장하시던 엄마가 천국에서 날 내려다 보시며 혀를 쯧쯧 차시겠다. "그깐 40 포기 하면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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