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1일 화요일. 맑음


월요일 아침, 응급실의 어수선함과 소란스러움은 없다. 좋은 병원일수록 사람이 북적이고 복도에까지 환자와 보호자로 뒤섞여 아수라장인데... 이산 휴게소에서 만난 119 아저씨 말대로, 지방도시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도 엠블란스로 데려가 입원시킬 병원이 없단다. 응급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어 나이들수록 의존해야 되는 병원을 찾아가자면 도시로, 서울로 몰려가야 한단다. 늙어서 자연과 평화롭게 살려는 소망은 꿈일뿐. 그러나 서울도 응급실 지나서  병상을 차지하려면 병원에 빽줄이라도 있어야 특실, 1인실부터 시작하여 일반 병실에 도달한다나. 이탈리아 생활 15년에서 병실잡기 제일 쉬운방도가 응급실인데...


보스코 침대 옆에는 요도에 돌이 끼어 밤새 신음하던 할아버지도 토요일 아침에 들어와서 꼬박 이틀 밤을 응급실에서 끙끙거리는 중이었다. 아프려면 주말을 피해서 아파야지 자칫, 의사도 병실도 없이 병원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수준이랄까? 보스코는 일요일 자정에 와서 응급실에서 하루밤 새우고 9층 병동으로 입원실이 났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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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늦게 위장과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 80대 영감에게서 느닺없는 대량 내출혈의 원인을 찾아야 했기에 날짜를 두고 일일이 검사를 거쳐야 하나 보다. 며칠 후 목요일 대장과 12지장도 조사할 예정이다. 그가 받은 스턴트 시술 후 콜레스테롤이 낄까봐 아스피린과 와파린를 오래 먹어 와서 혈관이 약해져 터지거나 응고되지 않아도 이번같은 일이 일어난다나? 몇 해 전 코피도 이번 하혈도 머리 속에서 터지지 않은 게 행운에 해당한다는 김원장님 부부와 도미니카의 의료적 총평.


오늘은 한국-바티칸 수교 60주년을 맞아 바티칸 외무장관 대주교가 축하차 방문하여 서소문 성지에서 순교자 미사를 드리고 저녁에 명동에서 서울대교구장 주최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다. 보스코는 제10대 주교황청 대사(2003~2007)였으므로 만찬에 초대받았는데 어제 오늘의 의료사고(?)로 참석 못해 미안하단 전화를 해야 했다. 정밀 인간사는 밥 한 끼니도 인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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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대사로 부임하던 2003년은 한국-바티칸 외교관계 40주년이었다. 그곳 인사들과 안면이 넓던 보스코는 부랴부랴 행사를 준비하여 로마 한인성당에서 성대하게 축하식을 열었다. 교황청 국무장관(총리) 소다노 추기경과 한국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님이 축하미사를 주례하셨다 특히 콜로라토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과 바리톤 고성현 교수가 파리 공연을 취소하고 내려와 미사 성가를 불러주어 70여명 주교황청 외국대사들을 놀라게 해내주었다. 벌써 딱 20년전 일이다.


우이동 집에서 보훈병원까지, 병원에서 수도원으로, 거기서 다시 병원으로, 병원에서 집으로 가는게 오늘 베이비시터 행선지다 서울의 모든 도로는 밤낮으로 차들이 물밀듯이 밀려다닌다. 차를 작게 만들어 머리에 이고 다니거나 지하철이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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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응급실에 가고 입원해 있면서도 자기가 하던 노트북과 USB를 챙겨 나서는 사람은 보스코 뿐일 꺼다. 그는 마음이 바쁘다. 죽기 전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상해를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와이파이가 안 되는 병실에서 저 노인을 우리에 갇힌 야수처럼 서성거리게 한다, 와아파이가 안 된다고. 하고 싶은 일 다하고 죽는 사람 누가 있길래? 보다 못해 내가 노트북과 핸폰을 빵고신부에게 가져가 데이터 테더링을 해달라고 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들이 1.9기가를 얻어 채워 주기도 했다


아빠가 피를 많이 쏟아 수혈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서 작은아들은 헌혈증서를 40장이나 모아놓고 있었다! 아빠 같은 사람 다섯 명은 수혈하고 남을 게다. 다행히 주치의가 헤모글로빈 수치가 수혈할 만큼 떨어지지는 않았으니 우선 기다리란다. 그 헌혈증서는 꼭 필요한 사람을 더 기다릴 꺼다.


운전에 지치고 무척이나 졸려하는 나를 보다 못해 빵고신부가 간이침대를 펴주며 엄니가 쓰러지면 안되니 자요. 엄마는 맘마말가리타니까 보스코를 끝까지 지켜야 하니까요”라는 핑계였다.덕분에 아들 사무실에서 한숨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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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정말 내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귀요미 말로는, 나이 들어 늙은이 둘이 사는 게 절대 바람직하지 않단다. 건강할 때는 꿈같은 생활이지만 하나가 무너지고 상대를 돌봐야 한다면 한계가 오고 둘이 함께 무너지는 게 예사더란다. 나처럼 여자가 한참 어리고 건강하면 해 볼만 하지만 미국 사는 자기 시숙처럼 여자를 남자가 돌봐야 하면 대책이 없더란다. 철학자의 말 아니어도 죽음은 전적으로 미지의 것이고,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며, 전적으로 피동적이기에 우리 인간으로서는 알아서 대처할 것이 못된다, 전혀. 그리고 그것만은 하느님이 알아서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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