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9일 일요일, 흐림


금요일 아침 드물댁이 찾아와 농협에 가서 소금을 좀 사달라 한다. 자기는 조합원이 아니어서 농협에서 소금도 살 수 없단다. 시어머님 돌아가시던 해까지는 논떼기라도 한 마지기 있어 100만원만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했는데, 시어머니께 쌀이라도 거둬드시라고 사준 땅을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시동생이 가져가버려 땅 한 평 없는 가난뱅이가 되었단다. 시골에 살면서도 조합원이 못된 사람들의 더 가난한 처지가 있음을 일러준다. 그러니 저런 아줌마가 도움을 청하면 모른 척하지 말고 얼른 돕는 게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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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초창기에는 잔디밭이 푸르고 좋았다. 시골에 살며 잔디밭을 꾸미는 일은 미친 짓이라고, 동네 아짐들도 쓸데 없는 풀키우지 말고 시멘트를 싹 발라버리라 충고하던 참인데다, 블루베리에 올인 하던 진이네와 그 집에 드나드는 택배 트럭에 잔디밭은 엉망이 됐다. 잔디밭을 복원하겠다는 생각이 꽂히면 기어이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보스코 때문에, 나는 엊그제 야자매트를 사오고 진이네는 자기네 차 바퀴 넓이에 맞게 매트를 깔고 죽은 잔디와 차 바퀴 사이에는 줄 잔디를 사다 심었다. 오늘 이 겨울비를 쫄딱 맞으며 일을 했으니 감기라도 걸릴까 2층에서 내려다보는 내가 더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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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에는 함양시민연대가 함양문화회관에서 문화행사가 있다고 보옥당 임회장님이 초대했다. 함양이라는 땅에서 시민운동을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기에 격려 차 참석하기로 하고 나갈 차비를 하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올 첫눈이다. 나이든 우리도 눈을 보면 첫사랑 가슴 태우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차창 위로 펑펑 쏟아지는 눈을 윈도브러시로 닦으면서 아무도 없는 하얀 밤길을 달리는 기분은 상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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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도 소년이 되어 싱글벙글공연장은 풍물패 여흥의 공연으로 신이 나게 막을 열었고 대부분 귀촌한 사람들로 자신들의 뜻과 꿈을 찾아 이곳까지 온 사람들이라 생기 있게 즐거움 넘치게 흥을 돋궈 차례로 나와 공연했다. 더구나 아이들까지 함께하는 분위기여서 보는 우리들까지 뿌듯했다일어나서 흔들고 춤추고 노래하고 두어 시간을 보내니 몸이 확 풀렸다. 전문적인 공연팀도 두 팀이 와서 격이 다른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미숙하고 실수를 해도 마을사람끼리의 학예회 잔치여서 또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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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전에는 우리 텃밭에서 먼저 거둘 무를 미리 뽑아 다듬어 차에 싣고 내일 전주에 갈 채비를 끝내고 보스코는 그 새 무청을 정자 그들에 널었다. 잘 마르면 좋은 시레기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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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백전 사는 정옥씨 시어머님이 소천 하셨다는 부고가 떴다단아하고 고고한 모습의 할머니인정이 많아 오는 이들의 끼니를 꼭 챙기시던 생전 모습이 눈에 선하다우리 서울집 5대 집사를 지낸 엽이의 친할머니 초상이고 그 아들 현승이도 무럭무럭 자란 건강한 모습이 반가웠다. 환절기 때면 노인들 초상이 배로  늘어나고 보스코가 '어르신반열'에 든 다음부터는 그의 건강에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보스코가 장례예식장에 가서 문상직전  화장실에 들리더니 심한 장출혈이 보인다고 내게 일러준다. 집에 돌아와 남원 김경일 선생님과 의논했더니 증세가 심상치 않다며 당장 남원의료원 응급실로 오라는 말씀. 이달 셋째 주일이라 본당 신부님이 저녁에 공소미사를 드리는 날이었지만 보스코의 처지가 급해 보이고 출혈량이 엄청나서 보스코를 싣고 남원으로 갔다. 문선생님도 의료원에 나와 있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달려와 줄 사람, 더구나 의료인이 가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의료원 사람들이 우리더러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아예 우리 주치의가 있는 서울 보훈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김원장님이 우리 차를 손수 운전하여 남원에서 서울까지 밤길을 함께 가면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는 우리를 안심시켜 가면서 중간중간 응급처치를 하는 병원들과 전화로 협의하셨다. 거듭된 내출혈로 이산 휴게소에선 보스코가 하혈로 인한 빈혈 때문인지 순간 졸도도 하고 119를 호출하여 의논도 했지만 그 일대 대학병원에도 담당의사가 없다고 서울까지 마저 가란다


나로서는 애가 탔지만 보스코가 깊이 잠들어 위기는 넘기고 요행히 보훈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밤 1130. 긴장했던 김선생님도 김두상 주치의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두 자녀가 기다리는 청파동으로 돌아가셨다.


보훈병원 응급실은 보스코 주치의의 연락을 받아 놓았는지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서 위장과 대장 검사를 내일 오전 입원하여 시술하기로 정하였다. 보호자에게는 딱딱한 의자도 하나 제공되었다. 아무러면 어떠냐, 남편이 대단한 혈변을 다섯 번이나 쏟고서도 무사히 생사의 갈림길에서 벗어날 의료시설까지 그를 데려다 놓을 수 있었으니! 모든 것에, 모든 이에게 감사할 뿐? 딸들이며 친지들, 수도원과 스위스의 아들들에게서 염려하는 전화가 빗발친다. 보스코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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