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맑음
아침 일찍 우이동에서 서울대입구에 있는 치과병원까지 가려니 지리산 내려가는 짐을 밤중에 거의 다 실어놓았다. 갈 때나 올 때나 늘 짐은 트렁크와 뒷좌석을 가득 채운다. 제각기 다른 짐인데 보스코는 ‘쓰잘데 없는 물건으로 일톤 트럭 분은 실히 된다’고 늘 불평이어서 잔소리 듣기 전에 미리 차에 실어놓는다. 부동산 투기를 하는 복부인 아내를 둔 남편은 이사 가는 새 집으로 갈 때 행여 자길 버리고 갈까 봐 이삿짐 트럭 앞자리에 미리 가서 앉는다는데...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월요일 출근 시간인데도 한 시간 반 만에 '우정치과'에 도착했다. 보스코는 자기가 어디를 어떻게 앓는지 병원에 가서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 대학강의와 대중강연으로 지내온 남자가 말이다. 지난 50년간 병원엘 언제나 내가 보호자로 동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김경일 선생님이라면 나더러 ‘조용히 하시고 환자가 말하게 두세요.’ 할 텐데, 병원에 혼자 보내면 의사의 질문에 단답만 하다가 돌아오곤 한다.
나에게는 그렇게 엄살을 부리다 치과의사한텐 왜 입만 벌려주는지? 보다 못해 내가 나서서 왼쪽 아래 첫째 어금니와 둘째 사이에 음식이 끼고 아파서 요즘 식사도 피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그쪽으로는 안 씹던 어금닌데 지난 월요일 오른쪽 위 어금니를 빼고 나니 하는 수 없이 그쪽을 쓰고 있다는 말도 내가 했다. 본인이 설명하지 않고 돌아온 까닭을 물으면 ‘생각이 안 나서.’라나? 모든 여자들이 ‘혹시 남자는 단두엽(單頭葉) 동물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유도 된다.
의사는 2년전 위쪽 어금니를 임플란트로 교체하면서 사랑니를 뽑아서 아래 사랑니가 솟구쳐 그런다며 사랑니를 처리하자며 간단히 뽑아주었다. 지난 월요일 기초작업을 한 오른쪽 윗니 임플란트가 끝나면 그 옆의 사랑니도 빼버리자니 이번에 두 개의 ‘사랑’니가 사라진다.
아빠의 치료경과를 제네바에서 물어온 큰아들 말로는 “나이 여든에 뺄 이빨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아빤 행운이네요.”란다. 내 보기에도 보스코의 좁다란 잇몸에 큼직한 이빨들이 가득하여 앞뒤 세 줄로 서서 나오다 못해 송곳니 하나는 아직도 입천장에 숨어 누워 있으니 우리 시어머님은 뱃속 아드님 입에 이빨 배치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겠다.
돌아오는 길에 사망사고도 목격하고...
지리산으로 운전해 오는데 그는 마취 주사 때문인지 계속 비몽사몽. 그래도 뭔가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소염제도 복용할 것 같아 아침에 요세피나가 구워준 고구마와 두유로 요기를 시켰다, 그것도 어르고 달래서. 그러다 “여보, 당신과 내가 무슨 사이 같아?”라고 물으면 그의 즉답이 나온다! “베이비와 씨터!” 이탈리아말로 ‘치매’를 ‘림밤비토’(rimbambito: 다시 애 된다)라고 하는데, 늙은 나이긴 하지만 맑은 정신으로도 그는 (자기가 하는 공부 외에는 만사에) 어린애 같기만 하니...
열흘 만에 돌아오면 적어도 이층은 대청소다. 내가 방을 쓸면 보스코는 걸레질을 한다. 그런데 닦던 걸레가 더러워지면 내가 빨아줄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 순수하게 걸레질만 하겠다는 말인가 보다. 집안에 들여놓은 화분들은 주인이 열흘 가까이 집에 없어도 성하게 자라고 게발선인장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서울서 온 포인세티아와 어울려 마루를 환하게 장식하였다.
휴천재를 비운 사이에 텃밭은 배추와 무, 쪽파를 빼놓곤 된서리에 호박 넝쿨, 오이 넝쿨, 가지, 토마토, 고추는 잎을 접었다, 올해 그 많은 채소를 제공해 주고서(루콜라, 파, 상추, 파슬리, 아욱은 건재). 점심 후 서리걷이를 하러 둘이서 텃밭으로 내려갔다. 청량고추와 토마토, 가지를 따고 고춧대와 오이 줄기를 걷어내고서 텃밭 가장자리로 뻗은 호박넝쿨을 거뒀다. 멀칭한 비닐도 걷어서 말고 고춧대 등은 모아다 감나무 밑에 쌓았다.
배나무에 감아 올라가 열린 울콩을 거둬서 깍지를 까는 일은 내 몫. 까고 보니 바구니로 절반은 된다. 진딧물이 생긴 배추 세 포기, 작업하다 실수로 뽑힌 무 두 뿌리를 손질하고 파도 뽑아다 함께 절였으니 내일은 겉절이 만으로 맛난 점심을 먹겠다.
지난 밤 잠을 설치던 보스코가 여덟 시부터 졸고 있다. 팔레스타인 아녀자 1만여명이 학살당하는데 온 인류가 구경만 하는 세태에 울분하고 번민하느라 한번 잠이 깨면 다시는 잠 못 드는 우리 우국지사의 요즘은 반 세기 함께 살면서 겪어온 몇 번의 고비를 회상하게 만든다. 10.26 직전 남산 6국에 끌려가 조사 받던 한 달, 5.18 실상 보도(주로 ‘서울 주보’를 통해서)에 노력하다 두어 달 평택 어느 수녀원에 가족과 함께 숨어 지내야 했던 도피 생활, 그 직후 울분을 못 견디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권유하고 배려하여 떠나게 된 로마 유학 5년... 그러면서 우리의 삶도 이 나라도 많은 게 변했지만 보스코가 그리는 유토피아와는 멀기만 하다.
- [크기변환]IMG_6997.JPG (149.6KB)(1)
- [크기변환]20231113_120619.jpg (122.6KB)(2)
- [크기변환]20231114_153301.jpg (219.7KB)(4)
- [크기변환]20231113_183128.jpg (197.9KB)(1)
- [크기변환]20231114_152123.jpg (204.9KB)(3)
- [크기변환]20231114_192139.jpg (189.3KB)(5)
- [크기변환]20231114_153253.jpg (274.0KB)(1)
- [크기변환]IMG_7004.JPG (59.7KB)(4)
- [크기변환]IMG_7029.JPG (140.6K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