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일 일요일, 맑음


다른 해 같으면 지리산 휴천재에서 찬성이 서방님, 훈이 서방님네랑 함께 모여 한가위를 지냈는데 금년에는 서울에서 지내게 되었다. 설이든 추석이든 호천네서 잔치를 준비하는데, 우리가 중국여행에서 돌아와 힘들겠다고 막내 호연네서 추석잔치를 준비하고 장로인 호연이의 인도로 추석 추도예배를 보기로 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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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일 아침 7시반. 이웃 사는 오빠와 함께 차를 타고 화전으로 떠나 정릉 가까이에 갔는데 함께 중국을 다녀온 호천이가 전화를 해왔다. 감기 기운으로 열이 높아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단다. 호연 장로가 추석 지나자마자 동남아 여행을 계획한 터라서 만약 코로나 증세를 보이면 모든 게 허사였으므로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내 아우를 위해 형제간의 배려를 한 셈이다.


요즘 코로나는 감기보다도 안 아프다지만 코로나가 초창기의 악명으로 여전히 공포의 대상임을 알겠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대로 아직 여독도 안 풀린 터라 우리도 잔치 기분 없이 편히 쉬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자가 검진 키트로 검사해보니 우리 둘은 음성이었다.


추석날 오후에 빵고신부가 와서 집안의 모든 조상들을 추모하여 위령미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에게도 다음날 오라 미루고서 우리는 성당으로 추석미사를 드리러 갔다. 그 동안 동네 뒷산 '쌍문 근린공원'의 산보길이 한참 뒤바뀐 길로 걷다가 우이성당으로 시간 맞춰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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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이성당은 열심한 구교우가 많아 집집이 차리는 추석차례상을 대신하는지 모르지만, 아들 손자 며느리 다함께 '위령미사'를 바치는 풍속으로 성당이 가득했다. 여성분과에서 제대 앞에 마련한 과일 젯상 앞에 조상님들의 위패가 프린트 되어 쭈욱 붙어있었다.  


주임사제가 먼저 젯상 앞에서 분향을 하고 절을 올리자 뒤이어 모든 교우들이 거의 가족 단위로 줄지어 나와 차례를 드렸다. 기나긴 연휴라서 가족 단위로 외국이나 관광지로 떠난 터에 성당에 나와 미사로 조상을 기억하는 일은 퍽 양호한 효성이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우리 산 사람들이 해 드릴 것이라곤 추모나 기도뿐이니까.


강론에서 주임신부님은 마리아라는 여교우네 시집 얘기를 해주시며 넉넉하게 남을 배려하는 명절이 되어야 한다는 훈계를 내렸다. 당신이 아는 그 처녀는 엄마를 일찍 잃고 고약한 계모 밑에서 커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나와 온갖 고생 다했단다. 한 총각이 있었는데 엄마가 가출하여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단다. 외로웠던 이 총각 처녀가 마음이 맞아 결혼을 하고 맞은 첫번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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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네 조상님들을 위한 차례상을 차려 제사를 지냈단다. 차례가 끝나자 시아버지가  며느리한테 새로 차례상을 보라 하시더란다. 어리둥절 놀랐으나 맘씨 착한 마리아가 불평 없이 새로 상을 차리자 "이번엔 네 어머니와 네 조상님들을 위해 예를 올리자!” 하시더란다. 마리아가 얼마나 고맙고 기뻤을지는 짐작이 간다


추석이면 하늘에, 조상님들에게, 그리고 은인들에게 절절이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어제 가슴 저린 시를 읽었다. 박노해 시인이 (사형언도를 받고 8년여 옥살이한 뒤) 어머니께 감사드리는 사모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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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젊어서 홀몸이 되어 온갖 노동을 하며/ 다섯 자녀를 키워낸 장하신 어머니/ 눈도 귀도 어두워져 홀로 사는 어머니가/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 기도로 살아왔느니라/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 했느니라/ 아비도 없이 가난 속에 연좌제에 묶인 내 새끼들/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경우 바르게 자라나서/ 큰아들과 막내는 성직자로 하느님께 바치고/ 너희 내외는 민주 운동가로 나라에 바치고/ 나는 감사기도를 바치며 살아왔느리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오늘에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거리에서 리어카 노점상을 하다가 잡혀온/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판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것에 감사만 하면서/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거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민주화 운동 하던 다른 어머니의 아들 딸들은/ 정권교체가 돼서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어도/ 사형언도를 받고도 몸 성히 살아서 돌아온/ 불쌍하고 장한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고 살았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묵주를 손에 쥐고 흐느끼신다

감사한 죄

감사한 죄

아아 감사한 죄! (박노해, “감사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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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결혼 후 처음으로 보스코와 둘이서 단촐하게 추석을 보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오늘은 오랜만에 영심씨를 불러내서 우이천변 산책을 했다. 미국에 간 아들 상훈이가 40중반의 아저씨가 되고, 너댓 살이던 손주는 내년에 대학엘 간단다. 요즘은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하는데 너무 재미있다며 자기가 번 돈을 책상에 쫘악 펴 놓고 자랑을 하더란다. “엄마한테 맡기면 안 돌아오니까 내가 갖고 있다 할머니 맛있는 거 많이 사드릴 게요.” 하더란다


손주자랑에는 너나 없이 브레이크가 망가진다. 조상에 감사드리는 날은 일년에 겨우 하루 추석날이지만 자식들 걱정하는 날은 날마다요 손주들 자랑하는 날은 쉬는 날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추석날마저 부모된 우리 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닮아 오로지 '내리사랑'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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