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26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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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일 월요일. 여전히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장가계 대협곡(大峽谷)'을 걸었다. 대협곡 위에 걸쳐진, ‘세계 최장이라는 300m 길이의 유리 다리를 건넜다. 보스코는 워낙 고지공포증이 있었으나 다리 밑의 아득한 세계를 태연히 내려다보며 걸어갔고, 올케가 별로 건강하지 못한 심장이지만 걸음을 맞춰주는 가이드 염선생의 배려로 어려워하거나 눈치 볼 일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지도자가 발걸음을 맞춰주는 일은 우리 인생을 얼마나 살뜰하게  해주는가, 부모 자식간에도, 부부간에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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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4시간에 걸친 대협곡 길. 꼭대기에서 바닥에 내려오면서도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미끄럼틀을 타는 길이 아닌, 완만한 오른쪽 계단을 내려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곡 바닥에 내려왔다. 밑에서 올려다 보니 300m 높이의 다리가 아득하고 번지 점프하는 사람이나 오가는 사람이 개미만큼 작아 보인다


다리를 묶고 허공에 몸을 내던지는 이들은 인생에도 그렇게 투신할 용기가 있어 보인다. 호천이도 하고 싶다는 걸 올케가 말린다. "용인 어린이대공원 청룡열차도 무섭다는 사람이 뭔 말을 하슈!" 호천이도 이제는 나이(칠순)들어 더는 떼를 안 쓴다. 나로서는 의자에 앉아 계곡 반대편으로 미끌어 가고 거기서 물가까지 미끄럼을 타고 싶었지만 보스코가 말려 포기했다. 갈수록 '모험'할 기회도 용기도 준다. 


엘리베이터를 몇 번 갈아타고 내려오니 가파르고 좁다란 협곡에 데크로 잘 정비된 길이, 맑은 개천 따라 3.5km 가량 이어진다. 꼬리가 긴 터키색 아바타 잠자리’(?)가 예쁜 꽃 위에 날아다니며 짝짓기를 한다. 물속엔 뼈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추석이면 전국 고속도로가 무료여서 그날 움직이려고 기다리는 본토인들 덕분에 우리는 여유롭게 줄 안 서고 떠밀리지 않고 계곡을 거닐 수 있었다. 뱀사골의 열 배 길이의 협곡이다.


비룡폭포를 멀리서 올려다 보며 내려오는데, 널따란 동굴이 나타난다. 족히 한 부락은 살 만한 크기였는데 토적(土賊)의 근거지였단다. 모택동 이전의 중국 정치를 상기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연이 마련해준 거주지에서 생존을 부지했던 고단한 인생들... 지리산 뱀사골을 오르다 보면 빨치산들이 신문을 만들던 바위 밑 아지트가 있는데 그곳의 옹색함에 비하면 여기는 맨션이다. 그러나 둘 다 주는 느낌은 밝은 빛을 피해 사는 서글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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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물길 따라 구비구비 돌아나오니 신천호유람선 선착장이 있고 두세 척 배가 기다리고 있다. 배는 승선자들이 차야 떠난다는데 골짜기에서 사람들이 별로 없어 언제나 사람이 차나 걱정했지만, 창호지에 들이 친 물 스미듯, 어디선가 사람들이 떼지어 나타나 배를 채우고 떠났다. 처녀 뱃사공은 밧줄만 내리고 배는 노젓는 이 없이 혼자서 갔다. 이렇게 어제는 12,000보 정도 걸었으니 아주 양호하게 몸을 돌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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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가 넘어 점심을 먹으러 토가족 음식점에 들어갔다. 식당 개업일이 1973년이어서 우리가 결혼한 해에 연 50년 전통의 토가족 음식을 맛보았다. 음식으로는 닭국물에 끓인 메기탕, 싸리버섯 볶음, 느타리버섯 볶음, 두부 조림, 무말랭이 훈제 돼지고기 볶음, 벌 애벌레 고추 볶음 등을 가이드가 주문했다. 우리 운전기사가 토가족이어서 그들의 전통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었고 생소한 맛이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식당 이름이 '대대노어촌(大隊漁村)'이라는데 (지금은 재향군인회본부이기도 한데) 한때는 지역 군부가 주둔하던 시설이었고 특히 홍위병이 쓰던 건물인지 방마다 모택동의 대형사진과 어록이 걸리고 국공(國共) 전쟁 시절의 중국 인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오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염선생은 문화혁명’ (지금 사람들은 십년대란(十年大亂)’이라고 부른단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수십년 퇴행시킨 반란이었다고 평가받는다당시의 혼란상, 등소평이 이 지역군벌에게 피신하여 목숨을 건진 사연, 사인방이 제거된 경위도 얘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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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마지막 날. 천문산에 올라 '유리 잔도'와 '귀곡 잔도'를 걷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천자산(天子山) 봉우리들이 가느다란 손가락 같아 여성적인 아름다움이라면, 천문산(天門山)은 봉봉이 주먹 쥔 모습의 남성적인 산이다


우리가 나흘 묵은 호텔에서 짐을 싸들고 나와 차에 싣고서 장가계 () 도심에서 출발하는, 총길이 7.45km의 세계 최장(여기선 모두 세계최고가 붙는다) 케이블 카를 타고 천문산 정상에 올라 거기서 우여곡절을 거치며 하산하는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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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길 중턱에는 구름이 끼어 있었으나 정상에 이르자 구름 새로 언뜻언뜻 천문산 주변 웅대한 봉우리들이 바람 따라 자태를 보였다 숨었다를 거듭했다. 한 순간 세 쌍 무지개마저 나타났으나 순식간에 사라졌다. 귀신도 다니기 어려울, 수백 미터가 넘는 깎아지른 절벽에 철심을 박고 콘크리트 받침 위에 보도를 만들고는 잔도(棧道)’라고 부른다. 처음 50여 미터의 '유리잔도'(사람들이 오금이 조려 벌벌 떨며 걷고 있었다)와 한 시간 넘게 '귀곡잔도(鬼谷棧道)'를 돌며 구름새로 간간이 자태를 보이는 절경을 감상했다. 산경치 좋아하는 보스코는 '세계최고절경'이라고 거듭거듭 탄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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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천문산사(天門山寺)’라는 절이 1000여 미터 산 위에 지어져 있는데 절마저도 규모에서는 우리나라 절들과 비교가 안 되었다. 국공전쟁 때, 그리고 문화혁명 때 불타고 파괴되었다 중수한 사찰이었다.


구름에 묻힌 산들이며, 비행기도 뚫고 날아간다는 거대한 굴 '천문동(天門洞)'을 지났다(구름이 너무 짙어 본모습을 못 보았다). 그러고는 서울 전철 이대입구에 설치된 에스칼레이터의 두 배 길이인 에스컬레이터를 그것도 12개를 타고 산을 내려왔다. 바위산 속을 터널로 뚫어 만 든 에스컬레이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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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엘리베이터와 케이블 카를 번갈아 타고 천문산 입구, 그러니까 둘째날 저녁 뮤지컬 천문호선(天門狐仙)” 공연장에 도착했다. 삶이란 한 막의 연극이요,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서의 인생임을 다짐하고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는 무대였다. 늦 점심을 먹고 삭당 가까운 미술관에서 모래 가루로만 그림을 그리며 천자산과 천문산 일대의 산수와 토가족 옛 마을 풍경을 묘사한 그림들을 감상하고서 장가계를 떠났다. 다섯 시간 가량 달려, 인구 1200만이라는 장사(長沙)시에 돌아와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밤 10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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