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19일 화요일. 흐림


[크기변환]20230918_134034.jpg


9월 18일 월요일. 이른 아침 북가좌동에 사는 호천네 집으로 가서 내 차를 두고 걔 차로 파주 하늘나라 공원엘 갔다. 서울 서북쪽 기독교 공동 묘지다. 아버지 묘 자리에 온 가족이 함께 쉴 묘소를 만들었다. “전문규 장로-조정옥 장로 가족묘라고 새겨진 묘비 뒷면에 새겨진 스물 두 명 자손들의 명단에 두 딸과 두 사위 그리고 외손주들과 외증손주들 이름도 포함되어 있지만 묫자리는 두 딸에게는 할당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여자가 시집가면 성까지 남편 성을 따르지만 친정 묘지에 묻힐 권리는 살아 있는데...


[크기변환]IMG_5176.JPG


[크기변환]IMG_5249.JPG


하기야 보스코는 장성 삼서 선산에 큼직한 봉분을 마련해 두고서 시부모님과 우리 둘, 자기 세 아우네 부부와 조카들 뼈단지를 모조리 한 방에다 집합시키겠다는 야심이지만 난 단연코 싫다 했다. 어두컴컴한 땅속에 늙은 남자들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 영원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오싹하다.


지리산 이웃에 사는 지인은 남편이 생전에 산속 집 초입에 자기 유골을 묻어 달라더란다. 농담이려니 했는데 남편이 60도 안돼 갑자기 떠나자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그 부탁을 유언으로 여기고 그대로 해주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그 자리에서 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노지심같이 듬직한 체구였던 남편은 겨울 빼고는 늘 꽃으로 피어 홀로 남은 아내를 지켜본다.


[크기변환]IMG_5172.JPG


나는 보스코더러 당신 유골은 내 맘대로 처리하겠노라고 공언해 둔 터다. 내가 맘속으로 찍어둔 곳에 그의 유골을 뿌리고 나 역시 그곳에 뿌려지고 싶다. 어제 간 공원묘지에 새로 붙은 간판 ’이 말하는 그대로, 봉분이나 비석 없이 수목장으로 자취를 끝마치고 싶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어머니 모니카 말마따나, “세상 종말에 그분이 어디에서 나를 부활시켜야 할지 모르실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오직 한 가지 부탁이니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라는 당부를 두 아들 두 손주에게 남기고 싶다.


[크기변환]IMG_5181.JPG


[크기변환]IMG_5187.JPG


작년 돌아가신 엄마는 애초 화장을 했지만 1985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곳 공동묘지에 40여년 누워 계시다 이번에 유골을 수습 화장해서 모시는 참이었다. 두 분 다 새로 장만한 묘지에 남기시는 것은 몇 줌의 뼈 가루가 전부다. 막내 호연이가 뼈 가루를 손으로 만지며 우리 아부지다.” “우리 엄마다.” 라고 외쳤지만 내게는 전혀 실감이 안 들었다.


두 분의 유골은 흙과 섞여져 흙 속으로 부어지는데 아버지는 장남인 오빠가, 어머니는 장녀인 내가 부어드렸다. 이어서 모든 자손들이 꽃삽으로 한 삽씩 흙을 덮어드리는 것이 것이 의식 전부였다. “왜 두 분을 함께 묻지 않는가?” 물었더니 누군가 불쑥 대답. 울 엄만 아부지 별도 안 좋아 하셨거든.” 엄마가 40년 더 사시다 아버지를 만나시면 뼈 가루로도 섞이고 끌어안기가 좀 서먹하실까?


[크기변환]20230918_105649.jpg


[크기변환]IMG_5201.JPG


[크기변환]20230918_110636.jpg


나머지를 흙으로 메우고 비석을 얹었다. 비석 사이의 공간을 잔디 말고 예쁜 흰자갈을 10센티 가량 덮자고 제안했다. ‘출가외인인만큼 친정 일에 참석하고 의견은 내지만 결정권은 없다는 걸 안다, 여기는 대한민국이니까. 마지막으로, 두 분이 창립하신 일산교회의 부목사님 주례로 고별예배를 드렸다. 빵고신부는 외갓집 일이요 개신교 의식으로 치러지는 예식에 묵묵히 참례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무덤을 에워싸고 예배를 올리는 아들딸, 며느리사위, 그리고 손주들이야말로 두 분이 하느님 앞에 드리는 예물이요 보람이리라.


[크기변환]IMG_5247.JPG


[크기변환]20230918_112837.jpg


이렇게 두 분을 잘 모신 자식들은 만족스럽다는 마음으로 함께 점심을 들고 홀가분한 심경으로 헤어졌다. 나머지 다섯 쌍의 묫자리는 현장에서 주인을 지명했지만 들어오는 순서야 알 수 없으리라, 그게 인생이니까.


오늘은 나에게 2년에 한번씩 하는 국민건강검진 지정일이었다. 아침 8시, 오랫동안 다니던 '한일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다. 눈이나 귀, 몸무게, 혈압 등은 거의가 내가 아는 그대로였다. 그냥 그걸 확인받는 절차 같다. 일반검진을 총평해주는 여의사가 비만은 아닙니다.”라는 평결을 내려 그건 나도 아는데.”라는 혼잣말 대꾸에 여의사도 피식 웃는다.


[크기변환]IMG_5239.JPG


[크기변환]IMG_5243.JPG


아래층 집사 선영이가 지리산으로 전화를 한 적 있다. 서울집 앞집이 밤이 와도 오랫동안 불이 켜지지 않아 걱정스럽단다. 나도 가슴이 철렁 했다. 아줌마가 3년전에 큰 아픔을 겪은 터였다. 시집간 딸이 외국으로 가족여행을 나간다고 한참 들떠 있었단다. 출발하기 전날 가족이 전부 핸드폰과 전자기기를 충전하던 중 전기과열로 불이 났단다. 사위는 직장에, 시어른은 외출 중이어서 화를 면했지만 안사돈과 딸, 두 손주를 한꺼번에 화재로 잃은 일로 아줌마가 그 아픔에서 헤어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천주교 신앙을 가져 아드님을 앞세우며 십자가 밑에 버티고 계시던 성모님을 의지하며 상처가 치유되어갔다.


[크기변환]IMG_4152.JPG


그러니 한 달 가까이 인적이 안 보였다는 불꺼진 창을 바라보는 나는 가슴이 철렁할 수밖에. ‘동네통신망이라 할 구멍가게 유미 엄마를 보러 내려갔다. “강원도 바닷가에 조그만 아파트 한 칸을 마련해 가슴이 답답하면 바다 가서 보낸다더라구요.” 라는 말에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식 앞세운 죄인이 그런 호강을 한다고 욕할까 그 일마저 숨기고 싶어 하더란다. 집사로 살면서 앞집에 혹시 무슨 일 있나 염려하는 선영이가 이쁘다. 들고 나는 동해 바닷물에 그 깊은 슬픔일랑 실어보내고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오길 기도한다.


 [크기변환]IMG_525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