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17일 일요일. 흐리다 맑음


[크기변환]IMG_5091.JPG


금요일.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한방엑스포를 한단다. 비는 내리고 흥은 안 나고 게다가 만원씩 참가비를 줘도 갈까 말까 한데, 입장료를 만원씩이나 받는다니... 과연 누가 오고 흥행이 될까 옆동네 사는 내가 걱정스럽다. 더구나 엑스포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미루네 약초시장까지 과연 손님이 와서 콩고물이라도 떨어뜨릴까?


그래도 미루네 매장에서 안셀모가 병아리빵을 만들어 판다고 들어 격려차 찾아갔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 삼우제에 가고 없는데 김이사랑 불쌍한 두 남자가 빵을 굽는다니 호기심에 가 보았는데 밀가루 반죽이 내일이나 도착한다는 소식. 앙꼬는 장만했다니 안셀모는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고, ‘찐빵 없는 앙꼬를 병아리빵이라고 팔아야겠다. 내가 드물댁을 데리고 간 터라 안셀모가 옆집의 쑥 찰떡을 사오고 레몬에이드를 상품으로 내놓아 나한테서 마수로 팔았다. 여자(이 사내 경우는 엄마인 미루) 없이 뭘 시작하려면 늘 이렇게 일이 처음부터 꼬인다는 걸 남자들은 알까?


[크기변환]20230915_153238.jpg


함께 간 드물댁은 그 쑥떡을 꿀떡처럼 맛있게 먹는다. 그래도 축제에 가자고 빗속에 데리고 나온 참이라 그냥 함양으로 돌아가기가 서운하던 차에 다행히 약초시장 건너편 군민체육센터에 차려진 혜민서에서 한의무료진료와 각종 의료기기를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아줌마가 병원 가기는 싫은데 온갖 안마기에는 관심이 있어 마치 어린이 공원의 모든 놀이를 타고보 싶어하듯 아줌마는 모든 안마기에 차례로 누워 보았다.


[크기변환]20230915_143528.jpg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식당채 문앞에 고구마 줄거리가 놓여 있다내가 서울 간다니 뭐라도 들려보내려고 드물댁이 뜯어다 놓은 거다아침을 먹고서 고구마 줄기를 까겠다 마음 먹고 느즈막하게 내려왔더니 그새 드물댁이 다시 와 까놓고 갔다고맙다고 전화를 하니 서울가는 준비로 바쁠 것 같아 자기가 깠단다동호댁은 잘생긴 호박 두 개를 갖다 놓았다. “서울 가면 언제 오시오빨리 좀 오시라요사모님댁에 불이 꺼져 있으면 마음이 안 좋다구요.”


[크기변환]20230915_152731.jpg


어제 오전 억세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리 텃밭 호박과 호박잎, 부추, 쪽파, 고추, 상추, 가지를 몽땅 땄다. 별거 아니지만 서울 가면 다 돈이다. 여기서는 지천이지만 대처에 가면 귀한 몸이다. 처음엔 뭘 그렇게 싸가느냐고 야단치던 보스코도 딸네집에 간다면 아무 소리도 안한다. 열무 김치를 담그고 있자 귀요미도 주라고 먼저 나서는 걸 보면 역시 딸들은 이쁜가 보다. 푸성귀라도 싸들고 가면 반길 사람이 있다는 건 시골사는 아낙에게 커다란 기쁨이다. 하느님도 당신 은총을 받아갈 인간이 있다는 보람으로 사실 게다.


[크기변환]20230915_100528.jpg


동네에 빈 집이 늘지만 자손들은 세 주거나 팔 생각이 없다. 군청에서도 이장들에게 빈집에 외지사람이라도 들이라고 성화다. 예컨대 우리집 아래아래 용산댁도 새집을 지어 몇 해 안됐는데 용산댁이 요양원으로 들어가자 자손들이 일년에 한두 번 찾아오면서도 팔지도 세놓지도 않는다. 지붕부터 무너져 가는 빈 집을 보는 마음은 누구나 아프다.


[크기변환]IMG_5157.JPG


비가 온다고 예보한 날인데 오늘 일요일 해가 반짝 손을 흔드는 모습이 13월 보너스 같다. 엊그제 비 내리는 날 해놓은 빨래에서 쉰내가 집안에 가득하여 서울 갔다 와서 하겠다던 데, 빨래를 해 널고 집안 정리를 말끔히 하고나니 떠날 차비가 끝났다. 보름 이상 집을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깨끗이 치워지고 정리된 집안을 보면, “역시 내 집이 최고야!” 하지만, 돌아온 보금자리가 부엉이굴 같으면 다시 나가버리고 싶을 게다.


930분에 휴천재를 떠났는데, 3시가 넘어 빵기네집에 도착했다 300Km를 세 시간에 왔는데 서울 들어가는 마지막 30Km를 가는데 또 세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불합리하고 계산으로나 머리로도 이해가 불가능한 동네가 서울이다. 서울 관문에 이르면 당장 돌아서서 가버리고 싶은 곳이 서울이다.


[크기변환]IMG_5162.JPG


교통체증이 심하면 네비는 하남에서 의정부로 해서 우이동엘 데려다 준다.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그리고 북한산이 차례로 우릴 맞는다. 서울을 에워싼 4대명산의 위용은 우리 여정의 피로를 가시게 만들고 40년 가까이 살아온 우이동 계곡으로 우리를 품어준다. 내려가면 지리산, 올라오면 삼각산이 우릴 품어주는 인생이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시구 그대로다. 


집에 들어서니 새로 온 집사(7) 안젤라가 정원부터 시작하여 집안 살림을 기름이 흐르듯 매끄럽게 해 놓아 집이 이제야 제대로 된 임자를 맞은 듯하다. 이층까지 청소해 놓고 식탁에 맛있는 약과도 사다 놓아 우리를 환영했다. 


5시경 큰딸이 잠깐 다녀가고 우리는 우이성당 오후 6시 청년 미사에 갔다. 전제덕 신부님은 떠나고 박준호 신부님이 새로 부임했다. 좋든 싫든 가톨릭 성당은 길어야 5, 짧아야 3년이면 주임사제가 바뀐다. 교구장 명령 하나에 정든 본당을 묵묵히 떠나는 가톨릭 사제들의 초연한 삶은 참  보기 좋다. 새 신부님은 강론 중에 남을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말씀에 뒤이어 남진의 미워도 다시 한번을 열창했는데, 유행가가 이렇게 설득력 있는 설교가 될 수도 있구나 싶어 듣기에 아주 좋았다.


[크기변환]20230917_18222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