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4일 목요일. 흐리다 비
올해는 가을에도 비가 자주 내려 채소도 잡초도 그만큼 빨리 자란다. 휴천재 텃밭도 그렇지만 남호리 산비탈은 환삼덩굴이 밭 전부를 덮었다. 하는 수 없이 경모씨에게 예초기를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환삼덩쿨 잔가시에 다리를 긁히며 밭안으로 들어서니 윗편에 심은 네 그루에서 밤송이가 벌써 벌고 있다. 벌어진 사이로 밤색의 밤알이 빼꼼히 내다 본다. 귀엽기도 해라!
밤을 송이채 바구니에 따 담았다. 밤송이는 휴천재 축대에 땅굴을 파 제끼는 두더지영감네집에 접대용으로 쑤셔박을 생각이다. 두더지의 횡포로 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고 내 꽃밭 화초와 나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복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이 좀 심했느냐는 물음을 받은 소담정 도메니카가 나더러 “걱정 마세요. 땅 밑에 굴이야 그녀석들이 얼마든지 팔 테니까 두더지들한테 미안해할 것 까지는 없어요.” 란다.
요즘 와서 휴천재 마당 꽃밭에 큼직한 날개의 제비나비가 무지 많이 날아다닌다. 나비의 아름다운 날개의 화려한 무늬에서 낭만이 살아나야 하는데, 나는 잠자리채로 그걸 잡고 우리 동냥이들은 그걸 맛나게 받아 먹는다. 어린이들이 “빙빙빙빙 고추잠자리”를 잡으러 뛰어다닐 잠자리채가 우리 집에서 나비채가 된 사연이다. 보스코는 아름다운 생명이라며 나더러 그냥 두라지만 저것들이 배추나 무 잎에 알을 낳고 그것이 애벌레가 되어 잎을 갉아먹고 있어서 어제는 채소밭에 분무기로 약을 쳐야 했다.
어제 오후 읍내에서 늦게 돌아오는데, 어두운 고샅길에 밀차에 의지한 할메(94세)가 꺾인 허리에 달팽이걸음으로 공소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내 차 피하느라 조바심이 나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스러워 전조등만 켜드리고 10여분 기다렸다. 당신집 안골목 앞에서는 그분 집까지 헤드라이트를 돌려드렸다. 그 환한 조명 속에서도 당신 뒤에 자동차가 서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편안한 달팽이걸음이다.
오늘 추석을 앞두고 명절에 찾아올 손들을 맞이하기 위해 마을 대청소를 하자면서 이장이 동네사람들을 소집했다. 이슬비가 내렸지만 소강상태여서 나와 보스코는 대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휴천재에서 공소에 이르는 마을길을 쓸어내려갔다. 80대가 평균 나이인 아짐들은 걷기도 힘든 비틀걸음으로, 예초기를 돌리는 이장의 뒤를 따라 다니며 비질을 한다. 이제는 내 맘대로 몸이 움직여주는 아짐이 다섯 손가락에도 못 미친다.
마을 청소로 수고했다고 점심엔 이장이 마을 돈으로 동강마을 식당에서 오리불고기를 냈다. 허리는 기역자로 꺾였어도 아직 ’남의 살‘을 씹을 만큼 치아들이 성한 게 고맙다. 식당문 들어서는 계단도 내려오는 게 힘든 아짐들에게 내 어깨를 내어주며 몇 해라도 몸성히 그미들과 함께 하고 싶다. 빗방울이 동강 위로 크고 작은 원을 그린다.
오늘 ‘느티나무독서회’에서 읽을 책은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년대의 수필모음)였다. 저 옛날 70년대에도 읽고서 엄청 화가 났던 것은 같은 핏줄을 타고난 민족과 서민들에 대한 지독한 경멸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그 작가의 마지막 대담책 「마지막 수업」을 읽고 그의 초창기 책도 읽자는 아우님들의 말을 따라 깜빡 잊고 골랐는데 단락마다 자신은 한층 올라선 ‘결이 다른’ 인간으로서 사람과 사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예컨대, 책 '서장'에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을 지프차로 가는 얘기가 나온다. 좁고 평범하고 쓸쓸하고 가난한 그 고향길에 신작로를 걸어가는 촌로 부부에게 크랙슨을 누른다. 경적소리에 놀란 부부는 경황없이 손을 잡고 곧장 앞으로 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걸 다시 집으려 뒤로 돌아섰다 차에 치일 뻔도 한다. 미안해야 할 운전자는 도리어 화를 낸다. 누렇게 들뜬 검버섯, 공포, 당황해서 가축처럼 뒤뚱거리며 쫓겨가던 두 노인에게서 오리떼를 연상했다는 지식인 이어령의 짐승몰이에 오늘 저녁 회합을 가진 느티나무 회원들이 모두 분개심을 보이고 그의 글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빠져 있더라고,“단 하나도 건질 것 없는 책”이라고들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