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10일 일요일. 맑음


[크기변환]20230910_181634.jpg


금요일 아침. 얼마 전부터 휴천재 뒤꼍의 대추나무가 자꾸 대추잎을 낙엽으로 물들이더니 한꺼번에 떨어뜨린다. 식당 채 지붕 위로는 붉히지도 못한 채 떨어진 자잘한 대추 알과 잎들이 흡사 부모를 떠나 할머니 손에 맡겨진, 이주민들의 가여운 아이들처럼 시들하다. 긴 장마와 이상한 기후에 몸살을 크게 한 모습이다.


못난 대추지만 보스코가 장대로 털어내면 나는 소쿠리에 주워 담았다. 단맛도 떨어지고 크기나 질도 떨어지지만 힘든 기후 속에서 몸살을 견뎌낸 게 대견해 하나하나를 쓰다듬어 준다.


[크기변환]20230908_112646.jpg


  IMG_5120.JPG


[크기변환]IMG_5128.JPG


금요일은 '이주여성인권센터'의 후원행사가 있는 날인데 내가 이사이면서도 참석을 못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거침없이 세상을 넘나드는 여성들'이라는 타이틀로 연 후원 행사였다. 그러나 내가 온종일 걱정한 것과 달리, 저녁에 한목사가 들려준 얘기로는 선주민보다 이주여성들이 더 많이 참석하고 주인이 되어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다. 이제는 손을 놓아도 될 듯하다.


[크기변환]사본 -FB_IMG_1694352528347.jpg


[크기변환]FB_IMG_1694352521759.jpg


그날 저녁에는 남해 형부가 독일여행에서 돌아와서 환영할 겸, ‘은빛나래단을 보고 싶다 하셔서 벙개팅을 가졌다. 산청에서 만나 사천까지 내려가서 냉면 한 그릇씩 먹고 금방 헤어졌지만 서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노친들이다.


[크기변환]1694372386062.jpg


금요일 저녁 찬성이 서방님이 전화를 했다. 막내 시이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다시어머님네는 네 자매였는데 보스코가  막둥이이모’라고 부르던  마지막 어르신이 93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이다. 그 이모님이 당신네 네 자매 가운데 셋째딸에 해당하는 우리 시어머님이 젤로 예뻤고 당신은 그중 물짜게 생겼노라'고 소개하신 적 있어 우리 동서들끼리는 '용전 물짠이모'라고 불러왔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1056


[크기변환]20230909_112131.jpg


우리 측 삼형제 모두 '막둥이 이모님'(영안실에도 '김막순'이라는 신주가 세워져 있었다)의 사랑을 받은 터여서 우리는 지리산에서, 막내 서방님은 평택에서, 찬성이 서방님은 함평에서 광주 용전의 상가에 모여 문상을 했다. 찬성이 서방님이나 훈이 서방님을 엄마 없이 '징그랍게 짠한 놈들'로 아껴주시는 이모님댁을 자주 찾았단다.


11시에 상가에서 문상을 하고, 입관식까지 여유가 좀 있어 보스코네 삼형제는 방림동에 있는 어머님 산소로 성묘를 갔다. 금년 추석 성묘가 힘들 것 같아 날짜를 앞당긴 셈이다. 전날 찬성이 서방님이 칡과 가시나무가 한 길로 자란 비탈길을 예초기로 정리해 놓아서 묘소에 당도할 수 있었고, 지난 여름 심한 폭우로 좀 상한 봉분을 삼형제가 다듬고 벌초하고서 여섯이 위령기도를 바쳤다


[크기변환]사본 -1694372561830.jpg


[크기변환]사본 -1694372562393.jpg


[크기변환]20230909_132036.jpg


[크기변환]20230909_134029.jpg


방림동의 이 언덕은 해방 전부터 광주 지역 기독교 공동묘지였지만 언제부턴가 어느 교회 부지가 되면서 다들 이장해가서 1957년에 쓴 어머님 묘지만 남아 있다. 산소를 쓰던 외삼촌들이 어머님이 월산 친정집을 바라보게 묘를 써서 아들들이 아직도 그 자리로 성묘를 한다. 사람이 귀해선지 모기가 단체로 환영파티를 여는 바람에 치마 입은 나와 막내동서는 톡톡히 헌혈을 해야 했다.


상가로 돌아와 3시 입관식에 참석했다. '남묘호렌게쿄'를 믿어온 이모님이 극락에서 이모부님과 재회할 때 예뻐 보이라는 뜻이겠지만, 시신에 가한 진한 메이크업은 평소에 화장을 않으시던 안노인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라면 오랜만에 보스코를 만나러 가더라도 저런 치장은 안 하고 싶다.


[크기변환]20230909_160608.jpg


상주들과 헤어져 나와 가까운 영락공원에서 영면하고 있는 준이서방님도 찾아보고 삼형제가 짧은 기도를 올렸다. 서방님 장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 전이다. 떠나는 사람도 홀연히 갔지만 그보다 더 빠른 게 산 사람들에게 잊히는 세월이다.


살아남은 우리 3형제 가족은 인근에서 저녁을 먹고서 지리산으로, 평택으로 헤어졌다,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죽음과 우리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내게 닥칠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 내 것도 아니기 때문이려니.


[크기변환]1694343969893.jpg


오늘 일요일. 아침 공소예절 대신에 오랜만에 스.선생 부부랑 본당미사에 갔다. 미사 후 함께 점심을 들고 산삼축제가 열리는 상림을 걷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지자체가 막대한 예산을 정부에서 따다가 벌이는 저런 축제는 갈수록 초라해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떨어지는 분위기다. 씁쓸한 기분에도 그래도 상림 그늘에 지천으로 핀 꽃무릇이 좀 위로가 된다.


저녁에는 이사야씨의 어머니 '이야무(요안나) 여사'께서 106세로 하느님 품으로 떠나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임종이라는 기별에 몇 차례나 산청과 서울을 오르내리던 미루네 부부는 낼 아침 다시 상경해서 많이도 기다리셨을 아버님과의 기쁜 해후를 어머님께 축하드릴 게다. 많은 경우 장례가 축제(祝祭)이기도 하다, 특히 후세와 영생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크기변환]20230909_07144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