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7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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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산속의 맑은 공기 속에 깊은 잠에 빠져있다. 간밤에 너무 추어 자다가 일어나 옷을 더 입고 잤단다. 지친 도시 생활에서 잠시 떠나 대자연의 위로를 받으며 치유받는 시간을 찾아 내려온 산속에 친구가 있고 쉴 공간이 있다는 게 다행이란다.


어제 아침을 먹고나서 한목사와 나는 2003년 개천절에 노고단에서 있었던 여성 종교인 노고단 기도회에서 한목사가 인연을 맺은 실상사의 수지행을 만나러 외출했다. 점심을 대접 받고 실상사 연밭의 연잎 차, 수징행이 키워 만든 바질 페스토 등 여러 선물도 받고, 실상사를 돌아보며 잔잔한 이야기가 오갔다. 오후 독서 삼매경에서 눈을 드신 도법 스님도 만나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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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정재철 작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개인적인 해석과 방식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였단다. 살아 생전 이사 가는 집마다 살펴, 버리고 간 식물을 주워다 살리고 키웠단다. 그분이 돌아가시자 그 식물들이 갈 곳이 없자 그것을 가져다 실상사 한 켠에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짐승으로 친다면 하나같이 비루 먹은 강아지몰골이었지만 버림받은 어떤 식물도 살아남을 권리가 있음을 깊이 깨우쳐주는 스님들의 배려였다. 그 보잘것없는 정원이 주는 느낌이 그래서 남달랐다. 어떤 존재도 소중하다는 아름다운 느낌이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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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30분쯤 임실 치즈 마을 뒷쪽 김원장님댁을 방문했다. 김원장님네 동산의 산속 집을 둘러보고 들어가니 김원장님 부친이 전주 가서 재봉틀을 고쳐 오시는 길이란다. 93세의 아버님이 운전해서 전주까지 다녀오시고, 동갑의 어머님이 재봉틀을 고쳐다 재봉질을 하시는 광경이 놀랍다. 더구나 어머님은 갈수록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재미 지고 이쁜 게 많아 인생이 고맙기만 하다하시니 '우리 젊은이들'이 20여년 후 저런 모습일지 새겨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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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님과 문선생님 내외가 전주 예수병원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하며 평생을 그 병원에서 뼈를 묻겠다는 결심으로 장만한 뒷동산 첫 집은 지금 도서관과 음악 감상실이 되어 오가는 손님들이 쉬어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김원장님은 홍범도 장군이 가셨던 카자흐스탄 여정을 답사하러 여행을 떠나고 없었다).


우리 세 여자는 그간 그 두 사람이 이뤄 놓은 임실의 산중생활을 둘러보았다. 김원장님이 여행을 떠난 뒤라서 텃밭은 주인의 손길이 더 필요했다. 그 부부가 보통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매우 다른 생활 방식을 가졌기에 우리는 그 두 사람을 최애하고 흥미롭게 바라본다. 한 목사는 퇴임 후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힘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헤쳐가는 중이다. 문섐도 그 면을 높이 사서 오늘 만남을 갖게 됐다. '고통 총량의 법칙'에 따라, 우리 셋 중 하나가 그토록 힘들게 살기에 지금 내 짐이 이리도 가볍다는 미안함에서랄까?


책 쓰는 일로 정신없이 바쁜 중에도 문섐은 정성스레 저녁을 준비했다. 서로 할 얘기도 많고 들을 얘기도 많아 밤이 깊었다. 한목사는 많이 피곤한지 잠을 깊이 자는데, 잠자리가 바뀐 나는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남의 집에서 잠자는 일이 최근에는 도통 없었기 때문이리라.


김용택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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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요일 아침 회문산 자연휴양림을 걸으러 갔는데 시설을 정비 중이라 해서 되돌아 나와 섬진강 김용택시인 문학관엘 갔다. 진메마을 건너편 섬진강변도 거닐었다. 한때 많이 좋아하던 시인이었기에 그의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촬영지인 구담 마을도 둘러보았다. 한국전쟁 영화 촬영지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징하게많이 몰려 온다지만 오늘은 주중이어서 우리 세 명만 그 고요로운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길가에 피어난 봉숭아가 사람들을 맞고 또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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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목사는 임실역에서 3시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고, 나는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보스코가 모처럼 혼자서 하루 세 끼를 찾아 먹으며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 나이 되어도 여자는 주부라는 사랑의 굴레에서 하루 이틀 놓여 나기가 그토록 힘들다. 9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한 한목사의 전화가 있었다. 오랜만에 차 타고 드라이브 실컷 했고, 얘기도 많이 나눠 좋았다는 인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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