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13일 목요일. 큰비


어제 아침 8. '큰딸' 엘리의 남편 '이서방'이 수술을 한다고 자매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해준다. 크고 작은 일에 귀 기울이고 가슴을 열어 서로들 품어주는 모습이 아름답다. 내가 전생에 무슨 선업을 쌓았기에 늘그막에 네 딸의 효도를 받고 있고, 앞으로 무슨 선공을 쌓아야 이 사랑스런 딸들의 정성에 가 닿을지 모르겠다. '로사리오 산보'를 갈 적마다 그미들을 위해 한 단을 바친다.


위아래 층으로 쪼르르 오르내리는 작은손주 발걸음 소리, 조용하기만 하던 서울집이 생기를 얻었다. 그래도 아침이면 두 손주의 늦잠에 우리 부부는 따로 아침기도를 하고 양승국 신부님의 복음묵상을 읽고 티벳 요가를 하는 여유를 갖는다. 애들이 아직 안 깬 평온 속에 이층에 아침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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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과 며늘아기가 올라오면 커피를 더 내리고 빵과 과일을 큰접시로 옮긴다. 모처럼의 사람 풍요를 누리다 보름쯤 지나 빵기네가 떠나버리면 다시 한두 해 기다려야 지금의 생기가 돌아온다.


보스코처럼 말이 적고 조용한 사람이 손주들의 활기를 그렇게나 반기는 모습이, 피붙이에 대한 남자들의 당당한 '거느림'을 실감케 한다. 오늘도 작은아들이 다니러 오자 이층 소파에 '성씨 남자들'을 한데 불러 모아 기념 사진을 찍는 그를 보며 '아내'라는 직함을 가진 순란과 '며느리'라는 직함을 얻은 지선이라는 여인이 친정에는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되어 성씨 집안을 일으킨 공적을 새삼 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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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인간 아담을 '찾는 사람'으로, "여자를 찾아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는 사람"으로 정의한 분(베네딕토 16세,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1항)도 있지만, 부부의 연()으로 한 사내를 곁에 붙잡아 두고서 자기 몸으로 낳은 자녀들을 먹여 살리는 수고를 끼치면서 아이들에게 사내의 성()을 붙이는 것으로 가름하는 여자 인간들의 슬기를 본다. 엊저녁 우이천 산봇길에 청동오리 암컷이 새끼 오리 여섯 마리를 부지런히 보살피는 모습과, 제법 한가로이 따로 떨어져 깃털을 다듬고 있는 수컷을 관찰하면서 확인한 사실이기도 하다.


어제는 아범이 2층 테라스에 에어컨 물 빠짐 배관을 두꺼운 스티로폼 파이프로 싸는데, 얼마나 꼼꼼히 해치우는지, 큰아들이 어느 새 쉰 나이지만 이럴 때마다 "역시 아들은 낳고 봐야 혀!"를 입에 달고 사는 문정리 한동댁을 떠올린다. 오늘은 회사를 다녀와서는 3층 다락 올라가는 층계 난간을 설치하느라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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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엔 이웃 동네에 사는 대학선배 언니를 찾아갔다. 형부가 얼마 전 심하게 아프셨는데, 많이 좋아지셨다. 아들과 함께 살겠다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갔었는데 사람들도 모르고, 구멍가게 하나 없고, 교회는 멀고, 다니는 길마저 낯설어선지 형부가 갑자기 자식들 얼굴도 이름도 잊는 치매를 보이더란다. 부랴부라 수십년 살던 우이동집으로 돌아오자 목사님이 골목에 떨어진 낙엽도 쓸고, 잊었던 아들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언니의 탄식. 모름지기 늙어서는 사는 곳을 갑자기 옮기는 게 아니다. 거의 강제로 양로원이나 요양원으로 옮겨진 노인들의 심리적 충격을 짐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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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식사 후 작은손주와 며느리를 데리고 우이천 산보를 갔다. 물속에 들어가 텀벙거리는 시우가 부러워 나도 당장 따라 들어갈 것 같았다. 언제쯤? '좀 더 나이 들면.' 모래가 쌓인 곳에는 아주머니들이 간간이 물속의 모래를 밟으면서 족욕을 하고 있다.


아범의 중학굣적 친구 희석이가 아범을 집에 데려다 주러 왔다 엊저녁 잠시 들렀다. 성당 친구로 사귀던 어릴 적 모습이 나와 반갑기도 하다어느 대기업의 부사장까지 됐다니 중후한 외모가 기특하기도 하다. 아이들은 커지고 부모는 작아지면서 세대가 교체되는 인류의 생태가 고맙기만 하다.


오늘은 두 번째 목요일, '느티나무 독서회' 모임 날이다. 손주들 고국방문을 핑계로 서울에 와 있어 참석을 못하니, 독후감이라도 써 보내야 했다. 나태주 시인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는 시집을 읽기로 한 날이다. 나로서는 좋아하는 시인들이 따로 있지만(특히 '우이동시인들') 그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걸 보면 나름대로 끌리는 점도 분명 있다. “오직 너는라는 시.


많은 사람 아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너는 한 사람

우주 가운데서도 빛나는 하나의 별/ 꽃밭 가운데서도 하나뿐인 너의 꽃

너 자신을 살아라, 너 자신을 빛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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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쉬운 글이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만 쪼그라들어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섬세한 시인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닫는다. 시인(詩人)이란 범인들이 나이 들어서야 감잡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우쳐 주는 특별한 분들이다. 그리스 시대부터 시인은 인생과 역사의 지혜를 신탁(神託)받는 선지자(vates)로 불렸다나?


엊그제 화요일 보스코 생일 잔치에 참석 못했던 작은아들이 오늘 저녁에 오겠다고, 더구나 포르투칼에서 개최될 세계 가톨릭 청년 대회에 청년들을 인솔하고 떠나야 할 처지라 조카들 얼굴이라도 보러 들른다고 해서 오후엔 스파게티 소스, 마늘 빵을 만들고 치커리나물, 양파구이를 준비하며 보냈다밥상이야말로 인류가 모계사회(matriarcha)임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자리겠지만 일곱 식구가 한데 모여 앉은 식탁은 얼마나 풍요롭고 고마운 자리인가


바쁜 중에 가족을 보겠다고 달려왔던 작은아들이 아버지 생신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서 빗속에 떠나고, 아직도 호우로 쏟아지는 밤비 소리에 지친 어미의 몸에 잠이 무겁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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