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6일 목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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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간밤에 비가 많이도 왔다. 휴천재 열린 창으로 들리는 휴천강 물소리가 바로 앞마당에서 나듯 시끄럽다. 우리집은 강으로부터 500m쯤 떨어져 있어 평소에는 아주 멀리서 작은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하지만 큰물이 지고 나면 한 일주일간 귀에 이명이 들리듯 시끄럽다.


그러나 꼭 시끄러운 것만은 아니다. 집 옆에 지어진 감동옆 도랑의 물까지 거들어 위대한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흠뻑 빠지게 되는데, 이때는 특별히 다른 음악이 필요 없다. 보스코더러 물소리가 저리 크니 송문교 다리로 물구경 좀 가자했다. 아직도 덜 떨어진 빗방울이 한두 방울 몸을 터는데도 우린 아침 물구경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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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강 '배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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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큰비에 물이 늘어 물살이 세지면, 송문교 다리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려오는 쪽으로 물살을 내려다 보면 난간끝이 물위를 마구 달리는 배가 되고 흘러가는 쪽을 내려다보면 내가 탄 배가 급하게 뒤로 달리는 착시가 온다. 이렇게 한참 배를 타고 나면 멀미까지 나는데, 우리는 휴천강에서 무료로 배를 탄 기분을 맘껏 누리는 셈이다.


집에 돌아올 때 쯤엔 해가 가끔 고개를 내미는데 하나도 더운 느낌이 안 난다. 해님도 빗 소리에 잠들었다 마악 눈을 뜬 듯 부스스한 얼굴이다. 보스코는 공부한다고 서재로 올라가고 나는 장마비에 몰라보게 훌쩍 커버리는 토마토와 고추, 가지에 더 큰 키의 지줏대를 세워주고 끈으로 올려 묶어주었다. 한 없이 넝쿨만 키워가는 오이도 가지치기를 해주고 복수박 가지도 40cm를 두고 잘라주었다. 깻잎, 쑥갓, 고추, 가지, 오이, 익은 토마토를 따고 보니 바구니로 하나 가득. 늙은 오이는 적발하여 점심상에 노각 볶음을 했다. 낼 모래 서울에 가면 저걸 다 사 먹어야 한다 생각하니 밭 채 떠갈 수도 없고... 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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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후엔 가지구이를 해서 올리브유에 쟀다. 기름 없이 노릇하게 구워, 올리브유, 다진 파슬리, 다진 마늘, 마른 땡초 가루 조금, 소금을 섞어 켜켜이 재우면 한 일주일은 놓고 먹을만한 이탈리아 요리. 그제는 작은손주 시우가 좋아하는 스콘을 구었는데, 어제는 큰손주 시아가 좋아하는 생크림 머펀을 구었다. 칼로리가 너무 높아 보스코의 간식에선 퇴출되었던 것이 손주들이 와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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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면 빨래가 문제. 빨래를 해도 마르고서도 늙은 홀아비처럼 궁상맞은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놓아뒀다 빨면 냄새는 두 배로 고약하다. 오늘 모처럼 해가 난다니 침대 시트랑 수건을 모두 빨아 빨래건조대 가득하게 넌다. 오후에 아직 해가 있을 때 걷으면 바삭하게 마른 빨래에서 나는 햇볕과 바람 냄새를 한참이나 얼굴 묻고 맡는다기분이 너무 좋다


요즘 서울 아파트에 사는 내 지인 대부분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층으로 겹쳐 놓고서 빨래를 건조기에서 꺼내며 자랑하는데, 해님이 몹시 서운해 할 것 같다. 그미들에게 이 기분을 햇볕 냄새 바람 냄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우리 어머니 대()에서 태양의 이 향기는 끝났다고 본다. 땅집에서 아파트로 올라가며 우리가 잃어버린 게 어디 이 냄새들 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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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에는 우리 '은빛나래 단' 멤버 중 미루, 보스코, 이사야, 셋의 생일과 축일이 모여 있어 매해 축하 행사를 함께 한다. 모처럼 비가 멈추며 남강물도 맑아져 오늘은 산청 단성 청계리로 가서 청계호 옆 돌담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산청요’로 돌아와 그 카페에서 후식을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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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해 형부가 있어 끝없는 재담을 날리니, 우리는 만반에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정말 구성이 잘 된 모임이고 총무인 미루가 야무지게 챙겨 늙고 병든 우리(보스코, 파스칼, 봉재언니 세 팔순 노인이 다 큰 병을 앓았다)를 행복하게 해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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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산청요의 민영기 도예가 선생님 부부도 자리를 함께 해주셨다. 더구나 부인이 정성껏 마련한 팥빙수를 원 없이 한 개씩 받아 안고 즐거워하는 노친들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그 욕심 때문에 음식을 버리거나 남기는 걸 죄악으로 아는 불쌍한 우리 임신부님은 남는 것을 모조리 먹어치우느라 배가 터질 뻔했으리라. 그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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