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4일 화요일. 장마비
잔디깎이를 몇 년간 안 썼더니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는다. 오일도 듬뿍치고 열심히 쓰다듬어 주었건만 소용이 없다. 지난번 예초기 오일이 샐 때 고쳐준 사람, 화계 농기계 고치는 아저씨에게 가져갔다. 그 집은 '완죤 워터월드'다. 고치려는 기계, 고치고 있는 기계, 고친 기계, 고치는데 쓰일 부속 등 모든 관련 물품이 벽이고 바닥이고 마당이고 사방에로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주인이 저걸 다 알아서 찾아서 쓰는 게 신통하다. 그리고 무지무지 무식한 인상을 줘 저런 사람에게 수리를 맡겼다간 ‘완전 망가지겠다’ 싶은데도 ‘기막히게 잘 고친다’고 소문났다.
황소가 뒷걸음치다 개구리 잡는 수준일지도 모르겠지만 근방에 하나밖에 없는 수리가게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무튼 어제도 그 가게로 잔디깎이를 고치러 갔다. 가는 길에 드물댁더러 ‘화계 구경시켜 주겠다’니까 마을회관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 안 보이기에 어딜 갔었냐 니까 "참나무지 애물단지가 다리가 아파 들깨밭을 못맨다고 엄살을 해 내사 칡넝쿨 다 걷고 풀 매주고 왔고마. 내 동갑내기면서 자긴 못하면서 욕씸은 넘쳐 온가지를 다 해 달라꼬 성가시게 한다."고 푸념한다. 상대를 '애물단지'라 부르면서도 부탁하면 거절을 못하는 고운 심성이다.
마을회관에 모인 아짐들 숫자는 토방에 세워진 ‘지팡이+ α’로 계산된다. 한남댁이나 본동댁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 발로 걷는다. 어제도 빗속에 꿉꿉한 아짐들이 '각자 만원씩 추렴하여 유림 가서 오리고기를 먹자'고 하더니 드물댁더러는 "니는 돈 내지 말고 그냥 따라와서 묵어라." 하더러나? 하지만 엊그제 통닭 먹을 때도, 아구찜 먹을 때도 얻어만 먹었는데 어제까지도 따라가 얻어먹기가 불편했나보다. 면에서 하는 '노인일자리'에 나가 한 달에 40만원씩 받을 때는 눈치 안 보고 살았단다.
"아줌마 나하고 더 맛난것 먹읍시다" 했더니 짜장면을 먹잔다. 그야말로 '제이썅거다' 유림 중국집에서 내 접시에서 절반은 덜어주었는데도 쏘스까지 뚝딱 맛나게 든다. 나이 들어서 벗어날 수 없는 빈곤은 노인들을 더 힘들게 한다. 짜장면을 먹고 잔디깎기를 고쳐서 유림을 벗어나는데, 그제야 오리백숙을 주문했을 아짐들이 유림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린다. 한남댁 하나 빼곤 모두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다.
그래도 농사일을 줄이고 남는 시간에 면소재지 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는 일은 그미들에게는 큰 호사다. 아짐들을 볼 적마다 창을 내리고 인사하는 버릇이 든 내가 차창을 내리려하자 "모르는 체하고 얼름 갑시다" 드물댁의 채근에 차창 내리던 손을 멈추고 쌩~하니 돌아왔다. 이렇게 드물댁과의 짜장면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 되었다.
큰비 속에서도 휴천재 뜨락에는 히비스커스와 노랑백합이 화려하다
"여보, 김원장님이 빌려준 전동가위도 있으니 내일 새벽에 남호리 축대에 남은 찔레를 토벌하고, 거기 갖다 놓은 사다리 분해해서 토마스더러 집으로 실어다 달라 합시다. 서울 가기 전 주목 손질할 겸..." 보통 이런 일은 내가 채근해야 겨우 움직이던 '성나중씨'가 전동가위 전통톱에 꽂혀 나무 전지에 재미를 붙였나 보다. 김 원장님 말에 의하면, 전동가위만 잡으면 뭘 자를까 두리번거리게 되더란다.
지금 대한민국은 가위질도 못하는 사람 손에 전동가위를 들려준 형국으로 돌아간다. 경제도 외교도 교육도 인권도 싹뚝싹뚝 잘려져 나가는데다 기레기들이 무조건 "얼쑤 얼쑤!" 장구를 두들기니 선무당 춤사위가 가관이다.
새벽 7시부터 두 시간 걸려 축대에 난 찔레를 다 잘라내고 나니까 도합 사흘 노동으로 남호리 밭의 축대가 말끔해졌다. 다음 단계로는 축대 밑에 능소화를 옮겨다 심어 아름다운 능소화 담을 만들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9시에 일이 끝나자마자 일기예보대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 풀이 빨리 자란 터라 경모씨에게 연락을 했더니, 저녁에 온 소식으로는, 오늘의 엄청 쏟아진 폭우 속에 남호리 밭 풀을 싹 벴단다. 고마운 일이다
비가 종일 내리고 별반 할 일도 없고 날씨까지 선선하면, 과자굽기 딱 좋은 날. 곧 만날 우리 손주들을 위해 오후 내내 스콘을 구웠다. 집안에 달콤하고 고소한 과자 냄새가 퍼지면 눅눅한 날에도 아늑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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