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2일 일요일. 맑고 무더운 여름 더위


금요일. 아직도 비가 오락가락한다. 아침기도가 끝나며 보스코가 '김원장님네 본지가 오래되었는데, 비가 오니 집고치는 일도 안 할 텐데, 어디서든 만나자고 전화 좀 해봐요.'한다. 일정기간 못 보면 그리운 게 친구다. 김원장님도 흔쾌히 만나자고 화답했다. 10시 반에 남원 ‘LH 시네마에서 만나 영화 한 프로를 보고 점심을 먹잔다. 지리산 속에 사는 노인들에게 확실한 문화생활을 시켜주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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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영화는 딱 보기에도 저예산에 화려한 출연진으로 나머지를 다 커버하는 그런 종류의 영화 같았다.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제목인데, 처음부터 화면이 액자로 구성되었고 글쓰는 작가, 해설자, 극중 장면을 종횡으로 오가는데 이런 영화는 처음 보는 터라 우리 부부는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머리가 어수선했다. 꼭 지금 '아메리카 합중국'의 꼴 같은 영화였다.


우리는 서로 만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영화가 별로라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월남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예전에 갔던 '풍년제과 하정동커피'라는 카페에서 무려 네 시간 담소를 나누다 다시 쉬이 만나리라는 기약을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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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원장님댁  동산의 나무와 풀을 전지하는 얘기를 나누다 김원장은 당신이 쓰는 전동가위가 둘이니 하나를 우리에게 빌려주겠다고, 택배로 휴천재에 부치겠다더니 아예 오늘 일요일 전동가위 용법을 설명해주겠다며 휴천재까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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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친한 아이들이 함께 놀다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 바래다 준다며 두 집을 오락가락 하던 우정 그대로다. 우리 부부가 기계치(機械痴)에 가까워 어찌할까 염려스러워 의리의 사나이답게 전동가위와 전동톱을 직접 들고 와 단기교육과 실습까지 친절하게 시켜줬다. 의사로서 인턴과 레지던트에게 직접 해보게 하는 모습은 그분 몸에 밴 자세다. 이래서 친구가 좋고 이웃이 사촌보다 가까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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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님은 점심을 함께 한 후 전동가위와 전동 톱 사용법을 가르쳐주고서 부지런히 임실로 가고 우리 둘이 실전에 투입되었다. 휴천재 마당에 심은지 25년 된 은목서를 시원하게 이발해 주었다. 5미터 넘는 키에 바람 들어갈 새도 없이 꽁꽁 싸매고 둥글게 자라온 은목서! 마른가지, 겹친 가지, 휜 가지를 쳐내는데 무려 3시간 작업이었다! 전동가위로 자르다 보니 너무 잘 잘려나가 보스코는 신나게 가지들을 쳐냈다. 앞으로 얼마 동안은 집주인 보스코가 그 가위를 들고 나오면 휴천재 뜨락의 나무들이 공포에 떨겠지. 권력이 전동가위고 나무들이 힘없고 빽 없는 민초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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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은목서의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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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에 빵기네가 서울에 도착했다. 1년만에 온 여름 가족휴가다. 우리 부부가 서울 오르내리는 수고를 한 차례 면해줄 생각에 공항에서 직접 시아 외갓집으로 갔단다. 온가족 귀국이든 아범 혼자의 출장차 귀국이든 처가와 본가 체류 날자를 정확히 반분하는 빵기여서 금년에는 처가 체류를 먼저하고 10일 이후 우리집에들 오기로 했다! 누가 아들 하나 참 잘 키웠다! 


어제 토요일 저녁. 둘이서 문상마을을 돌아 내려오는 산봇길. 보름을 품은 달이 와불산 위로 청정하다. 비에 씻긴 하늘이 티 없이 깨끗하다. 그 맑은 지리산 공기 속에 사위가 고요하다. 여국현 시인의 글귀대로 "어둠과 달과 구름과 별빛에 깃든 영혼들의 낮은 한숨소리"를 들으며, 그러니까 지리산 골골에 아직도 서려 있는 민초들의 억울한 신음소리며 한반도 시국을 염려하는 속깊은 이들의 깊은 한숨을 로사리오 알로 굴리고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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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오르는 달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

구름 뒤에서 숨바꼭질하며 재잘대는 별들의 소리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며 소곤대는 바람 소리

두물머리 두 강물 수줍은 듯 몸 섞는 소리....

어둠과 달과 구름과 별빛에 깃든 영혼들의 낮은 한숨소리...

들리나요? (우리 에 실린 여국현 시인의 들리나요중에서)


매달 첫주일 미사가 공소에서 있었고, 참석자가 적어 오늘은 우리집에서 신부님 일행과 아침식사를 나누었다. 계속되는 장마비에 불루베리가 물러터져 오늘처럼 개인 날에 수확을 서두르느라 나머지 교우는 주일을 궐했을 게다. '()하다'라는 말은 해야 할 일을 빠뜨리는 것을 형용하여 가톨릭에서만 쓰는 게토 언어인데 고백성사에서 "생각과 말과 행실이나 궐함으로 지은 죄를" 고백하노라는 곳이 천주교다. 


만년 실업자 대열에 오른 보스코가 미사해설을 하고, 임신부님 오누이를 차로 모셔온 미루네 부부, 한남마을 엘리사벳과 나. 모두 일곱이란 조촐한 숫자가 주일미사와 애찬을 나눈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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