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27일 화요일, 큰


어제 장마비가 쏟아지기 직전 갑자기 어두워지는 저녁, 산비탈 도랑 가에 흰 물체가 움직이는 듯했다. 저녁 9시가 다 되는 늦은 시간, 아무리 하지(夏至)가 엊그제였고 장마 직전이라 마음이 바쁘다 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 한남댁이 벼 대신 고추를 심어 논에서 밭으로 변한 땅에서 일손을 보고 있었다. 구장 남편을 보낸 지 한 해가 됐는데도 '아직 혼자 일하기엔 손이 설다'고 한탄한다. 남편 장례 치르고 처음 두세 달은 세동 사는 혼자된 언니가 자신의 어렵던 나날이 생각나 매일 찾아와 도와주었는데 지금은 농사철이라 더는 못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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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고추고랑에 부직포 깔던 핀상자와 망치를 길가에 버려두어 비가 쏟아지기에 내가 들어다 우리 차고 앞에 놓았다. 큰비에 종이상자가 젖고 핀과 망치도 내리는 비에 녹슬까 싶어.


오늘 비 내리기 전 고추, 부추, 푸성귀를 챙겨 도시 사는 지인에게 택배를 보내려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드물댁이 마루 끝에 앉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비도 오는데, 동네 관광 갑시다." 하는 내 초대에 "그럽시다" 반기며 핸폰을 전대에 넣어 허리에 두르고 차에 오른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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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마을 지나, 동호마을, 서주를 지나 화계와 유림으로. 농협 사무실에도 따라 들어와 내가 택배 부치는 동안 드나드는 사람들 얼굴 구경도 하고. 내가 사준 새우깡 한 봉지 우적우적 씹으며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휴천강 건너편 농로를 택했다. 산청군 방곡, 운서, 동강마을을 지나 한남마을로 다리를 건넜더니 "물 귀경이 겁나 좋구만. 산에 걸린 구름도 우리동네랑 똑같네." 연신 감탄이다.


오가는 차에서 내가 드물댁에게 물었다. "임실댁 돈을 내가 대신 줄까요?" "어데예. 죽은 사람 돈 받으면 그 돈에 귀신이 따라온닥고 옛날 소장댁이 절대 받지 말라카데." 죽은 사람에게 야박하게 하지 말라는 속담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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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라 마을회관에서 수제비를 한다기에 그미를 내려주고, 거기 와 있던 한남댁한테 "어젯밤 논가에 두고 간 핀 박스랑 망치 우리 차고에 있으니 가져가요."했다. 내 말에 거기 있던 아짐들 모두가 반색을 한다. '차 있는 사람이 망치조차 남짝 가져가부렀다'고 한남댁이 낙심하고 있던 참이란다한남댁은 고맙다며 마을회관에 들고왔던 울콩을 반되는 실히 되게 내게 건넸다


배밭 주변에 울콩을 심어 배 따고 나면 늦가을에 배밭에 올라간 울콩을 거둘 생각에서 콩씨를 찾던 중이기도 했다. 오늘 아침 배나무 등걸 옆으로 세 알씩 심었으니 올가을 한 됫박은 거둘 게다. 겨울에 늙은 호박과 범벅을 하던지, 호박죽을 쑤어 마을회관 아짐들과 잔치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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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 부부는 오래 살다 보면 관심 대상이 비슷해진다. 보스코가 데크 밑에 민트가 실하게 자랐더라며 꺾어 들고 오는 모습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이라도 바치는 표정이다. 꽃다발을 받아 든 여인은 흐르는 물에 씻어 소쿠리에 담가 물을 빼서 사내에게 건네준다. 그는 끈으로 다발을 묶어 벽돌방에 거꾸로 넌다. 2~3일 꾸덕하게 말려 잘게 썰어 그늘에 말리다 해 좋은 날 두어 시간 바짝 말려 병에 담으면 민트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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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손님이 온다는데 내 밭에서 나올 채소가 먹음직하게  자라 오르려면 닷새는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이웃 창원마을에 사는 김석봉 선생(녹색당 당수) 댁에 여유가 있다 해서 오늘 얻으러 갔다. 그 집 주부는 넉넉한 성품대로 오이, 고추, 가지, 호박, 브로콜리, 양배추, 양파, 파까지 한 바구니 가득 채워 준다. 넉넉하게 농사를 지어 주변에 푸짐하게 나눠 준다. 땅에 뿌리내리고 욕심 안 부리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 그대로가 그분의 아름다운 녹색당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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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가야산 정회장이 마늘을 한 상자 보내왔다. 작년 가을에 마늘 심을 때를 놓쳤는데 그분이 내 몫까지 이렇게 살뜰히 농사지어 보냈다. 김장거리 심어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 나의 도리였음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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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 전 보스코가 배봉지를 싸긴 쌌는데 봉지 밖에 매달린 배가 더 크고 실하고 숫자도 많다. 올봄에 때 맞춰 배를 솎지 못한 결과다. 점심을 먹고 보스코가 미처 봉지에 못 싼 배알을 잘라버리는 수작업을 하는데 아주 실하게 자란 배는 차마 못 따고 다시 봉지로 싼다. 저러다 올해 배농사가 강으로 가나 산으로 가나 궁금해진다


어제 오늘 이틀간 쏟아진 장마비로 휴천강이 크게 불었다. 자정이 다 된 이 시각에도 천둥 번개와 호우에 산골짜기가 요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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